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과학자는 과연 몇 명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성 과학자는 마리 퀴리(Marie Curie)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20세기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여성과학자는 마리 퀴리를 제외하고도 9명이 더 있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여과총) 교육홍보출판위원회는 최근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과학자’ 시리즈를 출간했다. 치열한 연구성과 경쟁과 일·가정양립의 어려움 속에서 선배과학자가 걸어간 길을 제시하고, 그들이 과학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현역 여성과학자를 보며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과학자’ 시리즈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 분야의 큰 획을 그은 여성과학자 4명의 삶을 재조명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작은 거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권 ‘로봇의 세계’는 소셜 로봇 연구 분야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여겨지는 신시아 브리질의 이야기를 담았다. 감정지능 로봇 ‘키스멧’을 만든 신시아 브리질은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의 벗이 되는 친근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단절된 관계 등의 부작용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시아의 철학은 그가 제작한 로봇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아기처럼 웃고, 찡그리고 옹알이를 하는 키스멧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또 친구처럼 행동하는 로봇 ‘레오나르도’는 대화 내용을 기억했다가 자신에게 친절했던 사람에게 다정하게 답하고, 눈을 맞추면서 시선을 유지한다.
신시아는 인공지능 로봇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영화 컨설턴트로도 활동했다. 2001년에 개봉한 ‘에이아이(A.I.)’에서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도와 자신이 제작한 키스멧을 친근감 있는 소재로 활용해 영화를 홍보하기도 했다.
2권 ‘유전자 사냥꾼’은 신경심리학자 낸시 웩슬러가 주인공이다. 신경심리학자인 낸시는 엄마와 외삼촌이 헌팅턴 병에 걸려 고통을 겪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성장기를 보냈다. 헌팅턴 병은 경련, 비틀거림, 기억 장애, 우울증 등을 겪다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퇴행성 유전질환이다.
유전적으로 헌팅턴 병에 걸릴 가능성을 갖고 있는 낸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베네수엘라에 1979년부터 매년 찾아가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1993년 수십 년의 연구 끝에 헌팅턴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했으며, 현재까지도 현팅턴 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3권 ‘기후를 예측하다’의 주인공인 기후학자 이네즈 펑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준 멘토들의 조언을 새겨들었다. 그는 MIT 졸업을 앞 둔 시점에 윌럼 말커스 교수에게서 기상학을 공부하라는 조언을 듣고 최초의 기상학 분야의 여성 박사로 성장한다.
그는 논문지도 교수인 ‘줄 차니’ 교수와도 함께 연구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간다. 이네즈는 컴퓨터 기상예측 선구자인 줄 차니를 두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 분’이라고 말한다. 질문을 던지고, 관련된 문제들을 명확히 나타내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이네즈는 기후를 예측하는 독보적인 기후모델을 만들었으며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핵심 설계자가 됐다. 그는 탄소 배출과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입증해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2004년 미국 지구물리학회로부터 지구과학에 탁월한 업적과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인 레빌상(Revelle Medal)을 받았다.
4권 ‘목성 너머’는 행성 천문학자 하이디 해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이디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로 인해 화목하지 못한 가족들 사이에서 늘 긴장감을 느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가두는 틀을 깨고 나와 MIT에 진학해 자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천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하이디의 놀라운 집중력과 탐구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해왕성의 대암점의 특이성을 발견하게 했고, 1994년 ‘목성-혜성 대충돌 촬영’ 프로젝트의 수장으로 이끌었다.
하이디는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능력도 탁월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는 그의 열정은 대중들을 매료시켰고, 하이디는 ‘과학과 대중의 소통’과 관련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네 명의 여성과학자는 각기 전공분야와 살아온 배경이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네 명 모두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봤기에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도, 내면의 목소리와 주위에 있는 멘토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겼다. 이러한 자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자기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어쩌면 우리는 여성과학자를 위인전 속에서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하루하루 연구에 매진하여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과학자들에게 네 명의 작은 거인이 주는 응원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 조아름 객원기자
- areum_press@naver.com
- 저작권자 2017-01-10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