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이나 채소를 씻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이 약간 시릴 정도의 찬물에 씻는다. 어째서 손이 편하도록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에 씻지 않고 찬물에다 씻을까? 아마도 차가운 물에 씻어야 싱싱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근 들어 ‘기적의 세척법’이라 불리는 과채류 세척 방법이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찬물이 아니라 목욕탕의 온수보다도 더 뜨거운 물로 채소를 세척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지만, 이미 일본에서는 이 세척 방법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다. 바로 ‘50℃ 세척법’이다.
신선 상태로 돌아가고 보관 기간도 늘어
50°C 세척법이란 말 그대로 50°C의 뜨거운 물에 채소를 씻는 것이다. 대중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온수의 온도가 대략 40°C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50°C 물은 상당히 뜨겁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뜨거운 물로 과일과 채소를 씻는다면, 표면이 물러지거나 상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고정관념일 뿐이다. 오히려 과일과 채소의 신선 상태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50°C 세척법을 고안한 히라야마 잇세이(Hirayama Issei) 회장의 설명이다.
히라야마 회장은 현재 일본 ‘스티밍(steaming) 조리 기술 연구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증기 기술 전문가다. 그는 과거 근무하던 식재료 공장에서 증기 온도를 낮추는 실험을 하던 중, 50°C 온도의 증기에서 찐 채소가 생기가 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50°C 온도로 찐 채소가 가장 생기가 돈다면, 같은 온도의 물로 씻어도 똑같은 효과가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실험을 거듭하여 50°C 세척법을 고안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50°C 세척법의 원리는 세포의 기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채류는 수확을 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을 점점 잃게 되기 때문에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하여 스스로 기공을 닫아 버리는데, 이 상태에서 뜨거운 물이 닿게 되면 열에 의한 충격으로 기공이 열리면서 수분을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히라야마 회장은 “기공을 통해 순간적으로 물을 빨아들인 과채류는 잃어버린 수분을 보충하기 때문에 싱싱하게 되살아난다”고 설명하며 “이처럼 50°C에 씻은 과채류는 신선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어서 채소의 보관 기간도 더불어 길어지고, 불순물도 잘 제거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같은 주장은 그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의 실험을 통해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50°C 세척법으로 과채류를 세척한 결과, 짧은 시간 동안 수분함량이 30~40%까지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수분을 흡수하는 동안 과채류가 함유하고 있는 유효성분이나 맛을 내는 성분은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오직 수분만 보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전통 문화인 온천수 세척에서 영감 얻어
50°C 세척법을 히라야마 회장이 고안한 것은 맞지만, 엄밀하게 따진다면 그가 태어난 고향인 벳부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세척 문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온천 지역인 벳부에서는, 식재료를 뜨거운 온천수로 씻는 전통이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
독특한 방식이기는 했지만, 세간의 주목을 끈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지역 전통문화로 남아있던 이 세척법은 히라야마 회장의 근무 경험과 접목되면서 최근 들어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가 쓴 ‘기적의 50°C 세척법’이라는 서적이 발매 이후 일본에서만 열흘 만에 14만부가 팔렸을 정도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 이후 히라야마 회장은 50°C 세척법의 전도사로 불리며 일본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 통하고 있다.
왜 물의 온도를 50°C에 맞춰야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책 속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 아래인 40°C 내외는 세균같은 미생물이 증식하기 좋은 온도이고, 그 위인 60°C 내외는 단백질 변성과 함께 세포막이 익는 현상이 나타난다”라고 밝히며 “따라서 그 중간인 50°C가 최적의 온도다”
원리는 복잡하지만, 세척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세척에 앞서 주의해야 할 점은 채소나 과일 등 식재료에 따라 물에 넣어 씻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상추처럼 잎이 얇은 채소의 경우는 1~2분 정도 세척한 후 물기를 살짝 닦아주면 좋다.
과일은 딸기나 포도같이 작은 것은 1~2분, 오렌지나 감, 사과처럼 크기가 있는 것은 2~3분 정도가 적당하고, 바나나 같이 껍질이 두터운 과일은 4~5분 정도를 씻어준다. 씻고 난 뒤에는 바로 냉장 보관하여 신선도를 높인다.
특히 딸기 같은 경우는 50°C 세척법으로 세균이나 농약 등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 맛까지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맛이 별로인 딸기를 샀을 경우는 이 세척법을 적용해볼 만도 하다.
이 세척법이 놀라운 것은 비단 채소뿐만 아니라 고기나 생선을 비롯한 모든 식재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육류와 생선의 경우 채소류처럼 1~2분 동안 세척하면 세척 전보다 훨씬 윤기있고 싱싱한 상태를 만들 수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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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6-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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