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는 세 가지 종족의 전쟁을 다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세 가지 종족으로는 테란과 프로토스, 그리고 저그가 있는데, 저그의 경우 각종 생명체의 몸을 분해하여 그들의 DNA를 조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뛰어다니는 토착생물로부터 추출한 DNA를 조합하면 언덕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저그가 될 수 있고, 군단에 합류하길 원하는 변방의 여왕벌레로부터는 수많은 알을 부화할 수 있는 유전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능력을 가진 생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미생물의 한 종류인 담륜충(bdelloid rotifers)이 다른 미생물의 DNA를 훔쳐 오랜 기간 동안 생존을 유지해 왔다고 보도하면서,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단세포 생물 진화의 비밀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무성생식인데도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보유
후세에 자손을 남기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이 있다. 두 방법 모두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지만, 고등생물일수록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유전자를 교환하여 보다 생존에 유리한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열등해서 짝짓기를 못한다거나, 운 좋게 짝짓기를 하더라도 이를 위해서 많은 에너지와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점은 유성생식의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자기복제를 통해 끊임없이 후손은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를 공급받지 못해 세대가 거듭될수록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담륜충의 경우는 이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8천만 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면서 환경에 적응해 왔다. 오히려 이 시간동안 400여종으로 늘어나는 번성까지도 누렸다.
이런 현상에 의문을 가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앨런 터나클리프(Alan Tunnacliffe)’ 교수는 담륜층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고,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담륜충의 유전자 중 10% 정도가 다른 생물로부터 전해졌음을 확인한 것.
터나클리프 교수는 “담륜충에 어떻게 다른 유전자가 옮겨왔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라고 언급하면서 “아마도 자신보다 작은 박테리아나 단세포 조류(algae)를 먹으면서, 그들의 유전자를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이 원시적인 생물이 어떻게 다른 생물체의 DNA 중 유용한 것만 가려내서 이를 정확하게 자신의 유전자에 삽입하고, 이를 후손에게까지 전달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조류 DNA를 흡수해 자신도 광합성을 하는 민달팽이
담륜충처럼 다른 생물로부터 DNA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것은 아니다. 에메랄드 푸른 민달팽이(Elysia Chlorotica)가 또 다른 사례인데, 이 생물은 광합성을 하는 조류를 먹고 자신도 광합성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 사우스플로리다대의 ‘시드니 피어스(Sidney Pierce)’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광합성을 하는 조류인 황녹조류(Vaucheria litorea)를 대상으로 이들의 유전자 중 일부가 푸른 민달팽이로 전이되는 과정을 조사했다.
그 결과 민달팽이가 황녹조류를 먹게 되면, 이들의 세포는 대부분 파괴되지만 일부 DNA가 플라스미드(plasmid) 형태로 살아남아서 민달팽이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피어스 교수는 “이는 진핵생물들 간에 이뤄지는 DNA 교환 현상”이라고 밝히면서 “부모에게 유전자를 물려받는 대신 다른 생물에게서 공급받기 때문에 수평적 유전자 전이(Horizontal Gene Transfer)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연구진은 표시해 놓은 유전자가 전이되는 과정을 추적해서 민달팽이가 먹이인 조류로부터 엽록체를 흡수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유전자를 공급받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피어스 교수는 “놀라운 점은 다른 생물로부터 공급받은 DNA의 일부가 자손에게도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강조하며 “이 같은 유전자 전이 방식을 좀 더 연구한다면 앞으로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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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4-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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