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성큼 다가온 23일 저녁. 따뜻해진 날씨를 뜨거운 학구열로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오스재단에서 진행하는 총 10회의 ‘뇌과학 강연’, 두 번째 시간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퇴근하고 온 듯한 직장인, 교복을 입고 온 학생,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뇌를 알기 위해 한 곳에 모여들었다.
두 번째 강의는 ‘인간의 뇌는 과연 특별한가’ 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 뇌의 두드러진 차이점이 무엇인지, 뇌과학자의 강의로 차근차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강연자는 한국뇌연구원 원장인 DGIST 김경진 교수였다. 김경진 교수는 “뇌 과학은 결국 뇌를 통해 마음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마음의 미래는 곧 뇌과학의 미래”라고 운을 떼며 강연을 시작했다.
인간 뇌의 특별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 김경진 교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강연을 선보였다. 하나는 인간 뇌의 발달에 대한 ‘발생학적 접근’이었고, 또 하나는 ‘문화적 접근’이었다.
“모든 것은 발생학적 선택을 합니다. 이에 대해 신경과학에서는 실제로 ‘발생학적 선택’ 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결국 뇌의 발생과정에서 다른 동물의 뇌와 두드러지 차이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 뇌를 이해하려면 다섯 가지 중요한 관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크기’, ‘구성’, ‘에너지 소비량’, ‘혈류량’, ‘좌우 비대칭’ 등입니다. 인간의 뇌는 멜론 비슷한 크기의, 체중의 2.5% 달하는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총 1천억 개 신경세포와 1천조 개 시냅스가 있어 소우주라고 하기도 하죠. 인간 에너지 소비량의 20%를 소모하는 ‘에너지 먹보’ 인데다가, 혈류량도 750 ml/min라는 엄청난 양을 갖고 있으며 좌우 뇌가 비대칭적으로 기능합니다. 뇌에 대한 아주 기본적이지만 발생학적으로 중요한 정보인 셈입니다.”
인간의 뇌는 사춘기까지 성장한다
위의 정보들은 인간 뇌가 갖는 객관적 지표이자, 다른 동물들과의 객관적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뇌는 총 세 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때 긴 진화과정 속에서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뇌 층이 차례로 추가됐다고 과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뇌 진화를 살펴보면 고등생물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단계가 균형감각과 호흡, 심장박동 등 생존에 필요한 생명활동을 조절하는 역할이고 2단계는 감정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3단계는 인지 기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입니다. 이 중 1단계는 파충류의 뇌이고 2단계는 포유류의 뇌, 3단계는 인간의 뇌입니다. 뇌 진화 단계에서 알 수 있듯 발생학적 측면에서 인간 뇌는 차이를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주목 되는 게 대뇌피질이다. 출생 전 태아의 뉴런은 분단 2만5천개의 속도로 매우 빠르게 증식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출생 후 침팬지는 뇌 성장이 멈추지만 인간은 그와 달리 두 살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성장이 진행되는 것이다. 김경진 교수는 “태어난 이후에도 여러 신경 세포의 변화가 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 뇌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출생 후에도 뇌는 끝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태아의 뉴런 성장이 지속되고, 출생 후 태아는 두 살 때까지 매우 활발하게 뇌 성장이 이뤄집니다. 뉴런 성장속도도 어마어마해요. 분 당 2만5천개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큰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시냅스 형성속도는 초당 일정 면적에서 약 3만개의 시냅스가 만들어진다. 천문학적인 증가 속도죠.”
사실 최근까지도 태아의 뉴런은 초기에 발생한 후 증식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의 실험과 관찰에 의해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공명촬영(MRI) 연구에 의해 청소년 뇌가 사춘기까지 발달하고 성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김경진 교수는 뉴런의 가지치기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신경의 신호전달속도를 높일 수 있는 ‘수초형성’은 청소년 시기에도 이어진다고 했다. 수초형성이 끝나는 시기는 성인이 되고 나서인데, 특히 이 시기에는 고등 인지기능을 처리하는 전전두엽의 수초형성이 마무리 된다.
김 교수는 인간 뇌의 발생학적 특징과 함께 문화적 특징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바로 언어다. 인간의 언어는 인류 진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인간의 마음이 언어를 발달시키고 언어의 발달이 또 다시 마음을 발달, 즉 인간을 변화시켰다고 이야기 했다.
“마음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언어의 진화가 마음의 진화를 야기했다는 것도 사실이고, 소통하면서 마음의 진화가 발전했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를 잡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관찰은 있었죠. 영국 과학자들이 발달장애와 언어장애 있는 사람의 가계도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 결과 인간 FOXP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언어활동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FOXP2가 언어 유전자라고 결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는 생각할 수 있겠죠.”
김경진 교수의 강의가 끝난 후에는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패널 토론에는 김재상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교수와 선웅 고려대 의대교수가 자리를 함께 했다. ‘동물의 뇌와 인간의 뇌, 그리고 AI’, ‘AI의 미래; 딥러닝 VS 커넥텀’, ‘뇌의 윤리학’ 등에 대해 담론을 나눈 이들은 뇌과학 연구의 현재와 알파고로 인해 화두가 된 AI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언급했다.
뇌 강연 이후에는 참석자들의 기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뇌를 다른 사람 몸에 바꾸면, 둘이 맞지 않아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는지’, ‘AI가 주는 자극에 의해 인간 뇌가 현재에서 더 진화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고, 참석한 패널과 김경진 교수는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청중과 과학자들이 함께 뇌과학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김경진 교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나는 내 마음이 있다’ 고 이야기 한다면 현대 신경과학적 관점에서는 ‘나는 내 커넥톰이다’ 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며 강의를 마무리 했다. 한편 다음 강의는 ‘기억’ 이라는 주제로 세 번째 시간을 맞을 예정이다.
- 황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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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3-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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