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기초·응용과학
박솔 객원기자
2016-02-16

국내 최고(最古)의 자작 커뮤니티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자작 커뮤니티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을 찾아가봤다. 최초가 아니라 최고인 까닭은 2011년 초, 용도변경보다 반 년 정도 먼저 만들어진 ‘해커스페이스 서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커스페이스 서울은 지금 자취를 감췄고, 같은 해 여름 만들어진 ‘용도변경’이 가장 오래된 자작 커뮤니티로 남아있다.

자작 커뮤니티가 뭘 하는 곳인가는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DIY(Do It Yourself)’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스스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DIY 활동이 개인에서 단체로 확장된 것이 바로 자작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많이 들어봤을 법한 자작 커뮤니티의 예는 전국 과학관에 설치된 ‘무한 상상실’이다.

용도변경은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공유공간 ‘벌집’의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벌집처럼 용도변경 역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자작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용도변경 페이스북 페이지 )

공유공간 '벌집'내에 위치한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 운영자 김성수씨
공유공간 '벌집'내에 위치한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 운영자 김성수씨 ⓒ 박솔 / ScienceTimes

용도변경의 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온갖 공구들과 3D프린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들이 보인다. 벽에는 포스터와 캔버스에 그려진 독특한 미술작품이 걸려있다. 긴 이름의 첫 번째 단어인 ‘무규칙’이라는 말처럼 온갖 것들이 무규칙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용도변경에 있는 김성수씨의 작품들. 오른쪽의 주황색 로봇은 의뢰를 받아 제작한 로봇이다. ⓒ박솔/ ScienceTimes
용도변경에 있는 김성수씨의 작품들. 오른쪽의 주황색 로봇은 의뢰를 받아 제작한 로봇이다. ⓒ박솔/ ScienceTimes

용도변경 벽에 걸린 예술작품. 단순한 그림같지만, 프로그래밍을 통해 그림 속 여자가 콧물을 흘리도록 만든 작품이다. ⓒ 박솔 / ScienceTimes
용도변경 벽에 걸린 예술작품. 단순한 그림같지만, 프로그래밍을 통해 그림 속 여자가 콧물을 흘리도록 만든 작품이다. ⓒ 박솔 / ScienceTimes

용도변경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김성수씨는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쓴 소설가 박민규씨가 스스로를 가리킬 때 쓰는 “무규칙 이종결합 소설가”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성수씨가 단순히 소설가 박민규씨의 표현을 따와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니다.

이종결합이라는 말은 토마토와 감자를 접목시킨 ‘토감’이나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새끼인 ‘노새’처럼 서로 다른 종(異種)끼리 결합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건축이나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인을 통해 단순히 미적으로 뛰어난 것 이상의,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다음에 오는 용도변경이라는 말은 해킹의 본래 의미인 ‘개조한다’는 뜻이다. 즉, 서로 다른 종류의 것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이다. 용도를 변경하는 데 있어서 정해진 규칙은 없다. 원하는 대로 원하는 것들을 가져다 붙여 만들어보면 되는 것이다.

김성수씨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스로도 전공분야가 아닌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스스로 공부해서 얻었다. 이처럼 용도변경에서는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지식이 모여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용도변경’을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독학하고 공간까지 마련했다고 하지만, 그에게 용도변경은 ‘취미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김성수 씨의 본업은 제품 서비스 개발 전문회사인 ‘what to make(왓 투 메이크. www.whattomake.co.kr, blog.whattomake.co.kr)’의 대표다.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의 운영자이자 왓투메이크(what to make)의 대표 김성수씨 ⓒ 박솔 / ScienceTimes
무규칙 이종결합 공작소, 용도변경의 운영자이자 왓투메이크(what to make)의 대표 김성수씨 ⓒ 박솔 / ScienceTimes

김성수씨처럼 많은 ‘메이커’들이 본업이 따로 있음에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자작 활동을 계속 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가지는 매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는 메이커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물이 얼마나, 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보다 만드는 사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용도변경을 통해 초심자들을 위한 워크샵을 여러 번 열기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탄산음료를 담는 페트병과 수액세트를 이용해 더치 커피 제조기를 만들어보는 워크샵을 꼽았다. 이 때 참가자들 거의가 자작 활동이나 프로그래밍은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커피에 대한 관심으로 청주에서 대전까지 자발적으로 찾아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자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수액세트와 페트병으로 만든 더치 커피 메이커 ⓒ 김성수, 용도변경
수액세트와 페트병으로 만든 더치 커피 메이커 ⓒ 김성수, 용도변경

“이제는 스펙의 시대가 가고 포트폴리오의 시대가 온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내가 진짜로 할 줄 아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바로 메이커”라며, 자작 활동에서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이제 공장의 거대한 기계들로 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시대는 끝났다. 만들어진 결과물이 무엇이냐보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의 다양성과 즐거움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스스로 만드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고,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 또 이들이 모여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용도변경과 같은 자작 커뮤니티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박솔 객원기자
solleap91@gmail.com
저작권자 2016-02-16 ⓒ ScienceTimes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