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로봇이 트랙을 따라 움직이다가 잠시 멈춘다. 팔을 뻗어 앞에 놓인 부품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다. 로봇은 들어 올린 부품을 등으로 옮긴다. 그리고 등 위에 짊어지고 있는 정교한 구조물과 결합시킨다.
이 작업이 끝난 후에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앞에서 한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로봇이 일하고 있는 라인이 수 나노미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로봇이 들어 올리고 있는 부속품은 ‘아미노산(amino acids)’이다.
로봇이 만들고 있는 것은 작은 ‘펩티드(peptide)’다. 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펩티드 방식으로 결합한 화합물을 말한다. 아미노산이 2개일 때는 ‘디펩티드’, 3개일 때는 ‘트리펩티드’, 4개는 ‘테트라펩티드’, 더 많은 아미노산을 연결한 것을 ‘폴리펩티드’, 혹은 ‘단백질’이라고 한다.
맨체스터 대에서 ‘분자기계’ 조립 중
지난 주말 '네이처' 지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화학자 데이비드 리(David Leigh) 교수 연구팀이 펩티드와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로봇을 개발 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 로봇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분자기계(molecule-scale machine)’ 가운데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분자기계’이란 나노 차원의 정교한 기계를 말한다. 세포 내에서 여러 가지 단백질들이 기능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조종할 수 있다고 해서 ‘분자 기계’란 이름을 붙였지만, 정확히 번역하면 ‘분자 크기의 기계’란 의미다.
리 교수 연구팀이 이 기계를 통해 모방하려고 하는 단백질은 ‘키네신(kinesin)’과 ‘리보솜(ribosome)’ 기능 이다. ‘키네신’이란 미세소관(微細小管, microtubule)을 이용해 세포 내 물질들을 이동시키는 단백질 기능을 말한다.
분자들을 결합해 ‘키네신’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분자 기계’을 만들겠다는 것. ‘리보솜’ 기능을 가진 기계도 함께 만들고 있다. 세포 내에서 단백질생합성의 장소가 되는 ‘리보솜’을 ‘키네신’과 연결해 스스로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연구팀은 지난 25년간 ‘키네신’과 ‘리보솜’을 결합한 로봇(기계)을 조립하기 위해 나노 크기의 막대, 링, 톱니바퀴, 프로펠러와 같은 부품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마치 나노 크기의 ‘레고(Lego)’ 조각들을 조립하는 것처럼 ‘분자로봇’을 조립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이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분석화학(analytical-chemistry) 장비가 발전하고, 여러 가지 반응 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대형 생체분자(organic molecules), 즉 분자기계를 만들어내는 일이 매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분자 기계’ 개발이 급진전되고 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벤 페링가 교수(화학)는 “지금 ‘분자 기계’ 용 모터를 50~60종 만들었으며, 구태여 또 다른 모터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은 ‘분자기계’ 연구의 성숙기”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과학자들의 축제 ‘고든 리서치 컨퍼런스(GRC·Gorden Reaserch Conference)'에서는 사상 최초로 ’분자 기계‘ 연구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 적용 가능성을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와이즈먼 연구소의 라팔 클라인(Rafal Klajn, 화학) 박사는 “지난 15년의 세월의 연구를 거쳐 지금 ‘분자 기계’ 연구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연구 결과들이 화학, 물질디자인(materials design)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분자 기계’을 완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인공 근육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은 수십억 개의 ‘분자 기계’들이 물질 변화를 위해 미세한 부분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계 컨트롤 장치를 더 수월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하며, 또 각각의 ‘분자 기계’ 들이 움직이는 것을 중단하는 일 없이 지속적으로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분자 기계’ 연구를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신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분자 기계’ 연구를 통해 개발한 여러 기능들을 과학기술 다른 분야에 적절히 적용할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약물이 신체 내부 암 세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미사일 요법(targeted drugs)’을 수행하는데 있어 ‘분자 기계’에 적용하고 있는 ‘광 스위치(light-activated switches)’ 같은 기술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자 기계’ 연구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91년이다. 당시 노스웨스턴 대 프레이저 슈토다르트(Fraser Stoddart, 화학) 교수는 단순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는 반지 모양의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옥스퍼드대 곡스 수 플루크(Gokce Su Pulcu) 교수 연구팀에 의해 걸어 다니는 분자가 그 역사적인 나노미터 크기의 첫 걸음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금 맨체스터 대 데이비드 리 교수 연구팀에 의해 단백질을 만드는 ‘분자 기계’가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달 초에는 일본의 국립 R&D법인 '물질재료연구기구(NIMS)'에서 매우 작은 에너지로 분자머신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독일화학회 저널 ‘앙게반테 케미’를 통해 발표됐다. 불가능할 것 같은 ‘분자 로봇’이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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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9-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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