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화학자 3000여 명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 모였다. 화학계의 최대 행사인 세계화학대회(45회)가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8월 9일 오후 개막식을 시작으로 14일 낮 폐막식까지 6일 동안 열리는 이 행사에는 노벨상 수상자 네 명이 포함된 저명한 과학자 9명이 기조연설을 하고 분야별로 나뉘어 화학의 최신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9일 오후 개막식에는 서병수 부산시장, 김재춘 교육부차관, 김명수 대회조직위원장, 마크 세사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 회장 등 1500여 명이 참석했다. 개막식 뒤에는 IUPAC 차기회장인 러시아 멘델레프화학기술대 나탈리아 타라소바 교수의 기조강연이 이어졌다. ‘화학: 세계의 요구에 부응하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타라소바 교수는 "이산화탄소 증가와 수질오염 등 지구촌의 위기를 진단하고 이제는 화학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화학자 3000여 명 모여
이번 대회의 모토 역시 ‘똑똑한 화학, 더 나은 삶(Smart Chemistry, Better Life)’이다. 인류에게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환경오염을 대가로 요구했던 화학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10일부터 본격적인 학술행사 일정이 시작됐다. 오전에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그레이엄 플레밍 교수가 '광합성의 빛수확 메커니즘'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플레밍 교수는 기존 화학 메커니즘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던 광합성의 높은 효율을 '양자결맞음'이라는 양자역학 현상을 도입해 해석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플레밍 교수의 결과는 인공광합성 연구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 베리 트로스트 교수가 새로운 합성법에 대해 기조강연을 했다.
11일 조직위원회는 젊은 화학자 가운데 뛰어난 연구성과를 낸 10명을 ‘젊은 화학자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미국이 5명, 중국이 2명, 한국과 독일, 이탈리아가 각 1명씩이다. 유일한 우리나라 수상자는 올해 34세인 윤효재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지난해 3월 부임했다. 윤 교수는 물질 표면에 코팅을 해서 새로운 전기적 특성을 띄게 하는 연구를 하는데,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 등에 응용될 가능성도 있는 기초연구다.
이날 오전에는 그래핀 연구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가 '반데르발스 헤테로구조'라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 최근 재료과학이나 나노과학 분야는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있다. 진행을 맡은 홍병희 서울대 교수는 그래핀을 쉽게 대량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해 유명해진 화학자다. 홍 교수는 가임 교수의 라이벌인 미국 콜롬비아대 물리학과 김필립 교수와 공동연구를 많이 했다.
이제는 '녹색화학'이 대세
오후에는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미하엘 그라첼 교수의 기조강연이 이어졌다. 그라첼 교수는 1980년대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를 개발해 유명해진 화학자로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빛을 받은 염료분자가 전자를 내놓아 전기를 만드는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는 투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응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그동안은 비용 문제 때문에 상용화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 효율이 높고 수명이 긴 새로운 재료가 속속 개발되면서 이곳저곳에서 상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라첼 교수는 염료감응형과 함께 최근 수년 사이에 급부상하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도 소개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결정구조의 이름으로 2009년 일본 연구진이 태양전지에 쓰일 수 있음을 처음 보였다(당시 효율 3.8%). 그 뒤 그라첼 교수팀과 성균관대 박남규 교수팀이 효율개선에 뛰어들어 현재는 20%에 이른다고 한다. 그라첼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제조비용이 많이 드는 현재의 실리콘단결정 태양전지를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조연설이 끝난 뒤에는 각 분과별로 나뉘어 최신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이어진다. 11일 오후에도 11개 분과에서 동시에 발표가 진행됐다. 한 시간 동안 그라첼 교수의 강연을 듣고 머리가 아파진 필자는 화학교육 분과 발표장을 찾았다. 첫 발표에 나선 미국 뉴리버커뮤니티칼리지 신시아 윈 교수는 과학교육이 성공하려면 학생과 교사 사이의 유대가 중요하다며 몇 가지 지침을 소개했는데 청중들의 호응이 높았다.

특히 ‘유머를 사용하라(Use humor)’라는 지침에서 소개한 일러스트를 보고 사람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원자 사이의 대화로 한 원자가 “난 전자를 하나 잃었어(I lost an electron).”라고 말하자 상대 원자가 “그런데도 괜찮아?(Are you positive?)”라고 묻고 있는 장면이다. 물론 화학자인 청중들은 이 말이 “그럼 양전하겠네?”라는 의미임을 알고 말장난에 웃은 것이다.
한편 10일과 11일에는 구두발표와는 별도로 포스터 발표도 진행됐다. 구두발표는 발표자 숫자가 제한돼 있고 대부분 교수가 연구팀을 대표해 연사로 나서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포스터발표가 자신들의 연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포스터 발표장에 가보니 이곳저곳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오후 6시 반부터 공식적인 일정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마침 외국인 두 명이 포스터를 붙이고 있어 가보니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이다. 아누야 나젠디란이라는 대학원생이 만든 촉매를 갖고 조엘 말름그렘 박사가 화학반응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공동연구로 반응 조건이 굉장히 온화하다. 즉 기존의 화학반응 대부분은 유기용매를 써서 고온에서 반응해야 하는데 비해, 이 촉매를 사용하면 수용액에서 40도 정도로도 반응이 일어나는 것. 지금은 '녹색화학'이 대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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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8-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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