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해체 수순에 들어가게 됐다. 고리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30년 설계 수명이 끝났지만 10년 더 수명을 연장한 상태였다.
고리1호기는 2017년 6월 가동이 중지되고,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역사상 처음으로 원전 폐로가 이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과정과 원전 해체 기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원전 해체 기술, 선진국의 70% 수준
원전 해체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40년까지 원전 400기가 해체되고, 그 시장규모는 1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원전 해체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은 미국, 유럽, 일본 정도다. 미국은 원전 해체 및 부지 복원까지 15기 이상의 해체 완료 경험을 갖고 있고,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폐로 경험을 활용해 후쿠시마현 하마도리 폐로 산업 타운을 구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갓 걸음마를 띤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해체 기술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해체 준비 기술과 폐기물 처리 기술은 80% 가까이 확보돼 있지만, 핵심인 제염 기술은 70%, 절단 해체 기술은 60%에 불과하다.
원자력시설 해체를 위해 필요한 핵심기술 38개가 필요한데, 이 중 우리가 확보하지 못한 기술은 ▲준비 ▲제염 ▲절단 ▲폐기물 처리 ▲환경 복원 등 21개 기술이다. 해체 관련 인력 및 인프라도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한 상태여서 인력 확충과 대형 원자력 시설 해체에 필요한 실증시설 구축 등 연구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지난 2012년 해체 핵심 기반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원자력 시설 해체 핵심 기반기술 개발 계획’을 확정하고 원자력 해체 기술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로봇’으로 오염된 원자로 해체…가상시뮬레이터 개발
실제로 일부 분야에서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해체 작업 수순인 절단 분야에서는 가상현실로 공정을 사전 검증하고 세계 최초로 원격 절단 작업을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술 등이 개발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염해체연구부의 최병선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원전 해체용 실감형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원자로의 실제 해체 작업 과정에서 가상현실로 공정을 사전 검증하고 원격 절단 작업을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원전 해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으로 작용하는 요소는 바로 '안전성'이다. 방사성물질을 다루는 작업이 까다롭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전이 수명 만료 결정을 받으면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제거하고, 오염제거 과정을 거쳐 철거작업에 돌입한다. 철거작업의 핵심은 원자로 압력용기 절단이다. 평균 두께가 30㎝인 압력용기를 수십 개의 조각으로 잘라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자는 방사선 피폭을 피하기 어렵다. 방사선의 노출을 피해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해체하는 것이 관건인 셈. 연구팀은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고민을 하다가 2012년 3월부터 3D 시뮬레이터 개발을 시작했다.
최병선 박사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원전 해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선도형 기술이 필요했다”며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ICT 기술을 활용하면 최상의 방법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향후 2년 동안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제성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최적인 시나리오를 찾아 이 값을 정량화하고, 국내의 원전 해체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선진국들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계획이다.
“원자력 해체 연구개발(R&D) 센터 설립 서둘러야”
나머지 원전해체기술을 확보하고 해외진출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개발(R&D)를 담당할 ‘원자력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설립이 시급하다.
원전해체센터는 국내외 원전 해체 시장에 대비해 핵심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전문연구기관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2019년까지 1400억원을 투자해 센터를 설립하고 2022년까지 38개 주요 기술의 개발과 검증을 마칠 예정이다. 고리 원전 1호기의 경우 2017년 영구정지 되면 5년의 냉각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실제 해체작업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리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2020년대에만 총 11개의 국내 원전이 설계수명 만료를 맞는다.
원전해체센터를 둘러싼 지자체 유치경쟁도 치열하다. 원전해체센터 유치는 현재 경상북도(경주)와 부산시(기장), 울산시(울주) 등 8개 지자체가 유치 의향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부지선정을 마치고 센터건립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가 늦어지면서 당초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자력 분야의 한 전문가는 “원전해체센터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늦어질 경우 자체기술로 고리1호기를 해체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물론,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원전해체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기술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백나영 기자
- 저작권자 2015-06-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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