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천문학계의 관심은 화성에 쏠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의 우주개척 프로젝트는 화성과 관련이 있었다. 화성의 비밀을 하나씩 밝히고 있는 탐사선 큐리오시티나 화성에 우주인을 정착시키는 ‘마르스원(Mars One)’ 프로젝트, 그리고 화성까지 우주인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오리온 우주선 등이 대표적인 화성관련 이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동안 천문학계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금성과 관련한 탐사 프로젝트가 발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최근 새로운 금성 유인탐사선의 컨셉(concept)을 공개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유인탐사선은 지표가 아닌 공중에서 활동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링크)
지옥 같은 금성의 온도로 유인탐사 어려워
금성은 달이나 화성에서는 볼 수 없는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장점은 바로 중력이다. 금성의 중력은 지구의 90퍼센트(%) 정도로서, 거의 지구 중력과 비슷하다. 이는 지구와 금성의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만약 금성에 사람이 간다면 중력만큼은 쉽게 적응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금성은 달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천체다. 따라서 우주 식민지 개척에 나선다면 금성은 접근성 면에서 볼 때 비교적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평균 거리만을 생각할 때 지구에서 금성까지의 거리는 4500만 킬로미터(km) 정도인 반면에, 화성은 5600만 킬로미터로 훨씬 더 멀다.
더구나 지구 보다 안쪽 궤도를 도는 덕분에 현재의 추진 시스템을 가진 우주선으로 왕복할 경우 화성은 780일 정도가 소요되지만, 금성은 584일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따라서 유인 탐사에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금성이 유인 탐사 대상지로 부적합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옥 같은 기후조건 때문이다. 표면 온도는 평균 462도(℃)에 이르고, 기압은 무려 지구의 92배에 달한다. 92배란 수치는 바다를 기준으로 1000미터(m) 아래의 심해에서 받는 기압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납도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거운 고온·고압의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거대한 화산들과 산성 구름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행성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유기체도 무사히 생존할 수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커녕, 인간이 금성에 착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금성의 대기층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사가 발표한 관측 자료에 따르면 지표로 부터 약 50킬로미터 상공 위의 금성은 지구보다 약간 중력이 낮은 수준이고 온도도 견딜만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50킬로미터 상공의 금성 대기층 평균 온도는 평균 75도 정도로서 같은 위치의 지구 최고 온도보다 약 17도 정도 더 뜨거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두터운 대기 덕분에 방사능 수치 역시 지구처럼 낮은 편이라는 것이 나사 측의 설명이다.
이런 금성의 대기가 가진 특성에 주목한 사람은 나사의 존 글랜 연구센터에서 활동하는 제프리 랜디스(Geoffrey Landis) 박사다. 화성 탐사 로봇 계획에도 참여한 바 있는 랜디스 박사는 행성 탐사를 위해 우선 인간이 꼭 지표에서 거주해야 한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랜디스 박사는 지구보다 두터운 금성의 대기에서 해결방안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두터운 대기는 밀도가 높기 때문에 헬륨으로 기구를 띄웠을 때 지구보다 더 큰 부양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성에서는 지구와 비교해 볼 때 작은 헬륨 풍선으로도 더 큰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을 랜디스 박사는 강조했다.
이 같은 랜디스 박사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나사는 마침내 기발한 개념의 금성 유인탐사선 컨셉을 최근 공개했다. 하복(HAVOC)이라 명명된 이 유인탐사선은 금성의 지표가 아닌 고도 50킬로미터 상공에서 유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표가 아닌 대기층을 무대로 하는 유인탐사선
나사가 최근 공개한 하복의 동영상을 살펴보면, 우선 특수 제작된 우주선이 금성의 대기층에 진입하면서 낙하산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선체 내부에 장착된 튜브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거대한 비행선으로 변신한다. 마치 지구에서 떠다니는 비행선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금성의 대기는 지구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만큼 고고도 비행선 제작에 있어 훨씬 유리하다. 또한 금성의 높은 하늘에서는 고온 및 고압의 대기나 번개와 화산 등의 위험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나사의 관계자는 “비행선이 탐사 초기에는 유인탐사선의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류가 거주하는 일종의 ‘하늘 도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만약 이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승인된다면 2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워 30일간 금성을 탐사할 계획이고, 탐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점차 탐사 기간을 늘려가면서 인류 거주지를 형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금성의 대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유황산화물과 같은 유해물질들의 압박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비행선에 부착된 태양열 집열판 등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하복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금성에서도 인류의 삶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하복 유인탐사선의 프로젝트 승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금성 탐사선 비너스익스프레스호가 작동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최근 비너스익스프레스와 더 이상 교신을 할 수 없게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06년에 궤도에 안착한 뒤 지금까지 9년간 관측 임무를 하고 있는 비너스익스프레스호는 당초 예정돼 있던 임무는 이미 완료한 상태로서, 지금까지 연장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연료와 장비의 노후화 등으로 우주선의 수명이 끝나가고 있음은 이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올해 6월에는 궤도의 고도를 크게 낮추고 금성 대기의 상층부에 돌입하는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비너스익스프레스호가 감행한 테스트는 대기의 저항에 따라 제동을 걸어 궤도를 바꾸는 대기감속(aerobraking) 조종 기술이다. 어찌 보면 우주선의 목숨을 건 마지막 작전이었던 만큼, 이번 테스트에서 확보한 데이터는 이어지는 금성 탐사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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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12-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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