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빈곤층을 위한 기술인 ‘적정기술’이 진화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적정기술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개발되어 왔다. 이를테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집까지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아프리카 주민들을 위해 고안된 ‘큐드럼(Q-drum)’이나,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는 제 3세계 주민들의 위생을 위한 ‘라이프스트로(Life Straw)’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최근의 적정기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IT 및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기술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물리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던 기존의 적정기술이 스마트폰이나 태양광 시스템 등과 결합하여, 신속하고 간편하게 의료 및 식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적정기술로 거듭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IT와의 융합을 통해 시력검사 간편해져
첨단기술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는 시력검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실명을 하는 사람들이 허다하게 존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 중 2억 8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안구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환자들 중 80퍼센트(%)는 제 때에 시력검사를 받아 치료를 한다면 실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환자들의 90퍼센트가 저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시력검사를 받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보통 시력검사를 하려면 검안경이나 카메라 등 다양한 검사 장비들이 필요한데, 이런 장비들을 저소득 국가로 옮기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들 장비를 가져가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피크비전(Peek Vision)은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에 갇혀있는 이들을 위해 개발된 어플리케이션 형태의 적정기술이다. 제품 이름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피크비전사의 연구진은 시력검사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고, 결국 휴대하기 편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결과적으로 피크비전은 시력검사 과정을 어플리케이션으로 대체하여 그동안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 했던 비용 문제를 해결했고, 더불어 휴대하기 편한 스마트폰을 들고 환자의 집에 직접 방문하여 진료할 수 있는 편의성까지 제공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피크비전을 통해 의료진은 단순한 시력검사인 색맹 테스트나 근시 등의 확인은 물론, 백내장과 같은 심각한 질환까지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내장된 카메라와 플래쉬 기능의 응용을 통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안구의 반응까지 살필 수 있다.
피크비전을 사용하여 현지인들을 진료한 의료진 중 한 관계자는 “이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기능 구현에만 그치지 않고, 수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현재 아프리카 케냐 지역에서는 의료진들이 피크비전과 고가의 시력검사 장비를 비교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진료 결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피크비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피크레티나(Peek Retina)가 선을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피크비전이 백내장 검사와 같이 안구 질환을 검사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면, 피크레티나는 망막사진까지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한층 더 정교해졌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은 스마트폰의 고성능 카메라로 찍은 것이어서, 의료 판정을 내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피크레티나로 찍은 사진은 기존 검사용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와 거의 같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크비전사의 연구진도 촬영 이미지를 의사에게 보낸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진단이 나올 정도의 선명한 수준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10억 명의 고통을 해결해 줄 휴대용 태양광 식수장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안구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2억 8000만 명이라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10억 명에 이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는 있으나, 급격한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에 따라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어떤 환경에서도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탈염 장치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적정기술 관련 소셜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www.indiegogo)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태양광을 이용한 휴대용 식수장치다.
이 장치는 태양광에너지로 작동하기 때문에 별도의 에너지원이 필요 없고, 크기도 작아서 가정에 한대씩 설치하기에 적당하다. 당초에는 바다 근처에 살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되었지만, 바닷물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물을 식수로 바꿀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휴대용 태양광 식수장치의 작동 원리는 사실 기존의 해수담수화 장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을 끓인 후, 이를 다시 응결시켜 바닷물을 비롯한 다양한 물을 식수로 바꾸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역삼투압 방식 대신 증발 방식을 택한 이유는 빈곤층 사용자들을 위해 필터 교체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증발 방식은 효율이 부족해 대량의 식수를 만들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러나 최근의 기술개발을 통해 기압을 낮추고, 열에너지를 다시 회수하는 방식의 고효율 증발 방식 탈염장치 제조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이제는 적은 태양광 에너지로도 상당한 바닷물을 식수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연구진의 관계자는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는 매우 쉽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주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전하며 “이 휴대용 식수 장치의 개발 의도가 염분 농도가 높은 물을 기술적으로 탈염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저렴한 장치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식수를 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태양광 방식을 택한 이유 역시 같은 의도”라고 밝히며 “전력이 들어오지 않거나, 혹은 전력을 구매하기에는 너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에너지원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에서도 빈곤층을 위한 다양한 적정기술이 개발되고 있는데, 특히 최근 들어서는 겨울철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에너지 분야에 집중되고 있는 추세다. 철판과 드럼통으로 만든 화목난로와 태양열 온풍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기에 힘입어 전북 완주군은 지역 내에 로컬에너지센터를 세우고, 향후 10년 간에 걸쳐 85억 원의 자금을 지원 할 계획이다. 또한 충청남도도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적정기술 에듀파크’를 개설하여 적정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교육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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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1-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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