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명량’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이후, 개봉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한국 영화 사상 최단기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영화 ‘명량’이 인기 가도를 달리는 가운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비범한 용기와 뛰어난 전략 전술로 대첩을 이룬 이순신 장군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부각되고 있다. 이 여세는 임진왜란 역사의 현장이었던 진도 앞바다의 울둘목에까지 미쳐서 최근 들어 이 곳을 직접 보고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이 울둘목에서는 명량대첩(鳴梁大捷)이 있었다. 정유재란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하고 있었고, 원균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과의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 제해권을 잃은 상황이었다.
조선 조정은 급박해진 전황을 타개하고자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앉히지만 판옥선 등의 전선은 고작 12척만 남았고, 초반에 전투 경험을 쌓은 소중한 선임군사들도 대부분 사라져 절망적인 위기감에 몰리고 있었다.
선조대왕은 수군제도마저 폐지하려고 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는 역사적 어록을 남기고 투지를 불태우는 장계를 올렸다. 그리고 통제사 이순신은 남해안 일대에 흩어진 군사들을 불러 모아 다시 수군 재건에 안간힘을 썼다.
드디어 제해권을 건 결전의 순간은 다가오고 군선과 수군 숫자 등에서 20배가 훨씬 넘는 전력을 보유한 일본 수군은 보무도 당당하게 진도 앞바다의 울둘목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왜 일어날까?
옛날부터 독일의 라인강변에 있는 로렐라이(Loreley) 언덕에는 하나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요한 라인 강의 로렐라이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처녀가 고운 머리를 빗으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오고가는 뱃사공들을 유혹해 바위에 부딪혀 조난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과학적으로는 신빙성이 없는 전설일 뿐이다. 사실은 이 강의 바닥 지형이 험해서 물살이 워낙 빠르고 수로에는 구불구불한 협곡이 많아서 여기에 부딪힌 물살이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암초도 많아서 소용돌이에 휩쓸린 소형 선박들이 좌초하기 쉬웠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이나 바다의 소용돌이(Eddy)는 조류 또는 해류 등의 물살과 지형이 원인이다”고 지적한다. 즉, 빠르게 흐르는 물의 흐름이 구불구불하게 돌출된 지형을 지나가게 되면 굽은 지형에서 더욱 유속이 빨라지고, 강벽에 부딪히면서 회전에너지가 강해져 갑자기 소용돌이로 변할 수 있고 이 소용돌이 물살은 본류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스스로 회전한다는 설명이다.
또 소용돌이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소용돌이 관광으로 유명한 일본 나루토의 경우, 이곳의 해저 바닥의 독특한 좁은 폭 주변에서 세토 내해와 태평양 사이의 많은 양의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로 교차할 때,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여기서는 통상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1∼2시간 정도 소용돌이 물살이 관찰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형의 소용돌이는 조수의 차와 계절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또 국립해양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남 해남군 진도대교 근처에 있는 울둘목의 경우는 해수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지형의 굴곡이 심하고, 응회암의 노두가 잘 발달돼 있는 데다가 해저의 경사도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남군 우수영의 해저 경사도가 심하고 암반층의 돌출 부분이 많아 소용돌이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좁은 해협을 빠져나가는 빠른 조류가 경사가 심한 해저 지형 위에서 암초와 부딪힐 경우, 강하게 역류하면서 소용돌이를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해마다 조류가 센 6월에는 이곳에서 진풍경이 벌어진다.
순조에서 역조로 바뀌며 대혼란
해마다 6월이 되면 전남 진도군 진도대교 밑 울둘목 해안가에는 낚시꾼들이 몰려드는데 그들의 낚시도구는 일반적인 릴낚시가 아니라 뜰채다. 목포와 완도의 중간에 위치한 울돌목 해협 30여m 구간 폭이 700m에서 460여m로 좁아지는 이 지역에서 오후 6시 30분쯤 썰물 때가 되면 조류 속도가 최고 11노트로 국내에서 가장 빨라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이 좁은 해협으로 강한 물살에 떠밀리듯이 숭어 떼가 몰리게 되는데 빠져나가던 센 조류가 튀어나온 해안의 바위벽에 부딪히면 갑자기 역류하며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때 썰물과 함께 숭어 떼들도 역류하는 에너지에 의해 명량수도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게 되는데 낚시꾼들은 이들을 뜰채로 뜨면 되는 것이다.
1597년 음력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은 이 길목에서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도도 다카토라 그리고 와키자카 야스히루 등 일본 수군의 명장들이 지휘하는 333척의 일본 대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수군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순조류(順潮流)를 타고 울둘목으로 순항하고 있었다.
서로를 발견한 두 함대는 곧 치열한 함포 사격과 불화살, 조총 탄이 난무하는 공방전을 벌였다. 양측간에 사상자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12척의 조선 수군은 수적 절대 불리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독려로 용기를 잃지 않고 응전했다.
시간이 흐르고 조류의 방향이 역조류(逆潮流)로 바뀌면서 일본 수군에 큰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선회 각이 큰 일본 전선은 좁은 해협에서 역류에 의한 소용돌이가 발생하자 배를 조종하기 힘들어졌고, 선단의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효과적인 집중공격이 어려워졌다.
이 호기를 놓치지 않은 이순신 장군은 기함에 총공격을 명하는 깃발을 올렸다. 판옥선의 현측에 장착된 현자총통과 지자총통에선 불을 뿜었고, 불화살들이 허공을 갈랐다. 몇 시간 후, 전투가 끝나자, 불리한 전력을 지형지물로 극복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위대한 승리로 드러났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4-08-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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