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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법칙에서 본 ‘세월호’ 사고 서해훼리호의 사전 징후들과 유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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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전 징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 ‘하인리히 법칙’이다. 미국의 보험사 직원이었던 허버트 월리엄 하인리히는 업무상 수많은 산업재해 사고 통계를 접하면서 사고에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즉 한 건의 큰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그 전에 29건의 소형 사고가 일어나고, 소형 사고 발생 전에는 비슷한 원인에서 비롯되는 300번의 사전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인리히 법칙은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1931년 그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이후 이 법칙은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 등과 관련된 법칙으로도 확장 해석되고 있다.

1912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혁신적인 기술이 접목되었던 타이타닉호가 첫 출항 때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에서도 하인리히 법칙처럼 수많은 사전 징후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승선 인원 초과, 선박 설계상의 오류, 빙산 충돌 위험경고를 무시한 과속 항해, 당대 최고의 배라는 선장의 과신 등의 허점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승선자 2천208명 중 1천513명의 희생자를 낸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로 기록됐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최대 규모 여객선인 세월호의 침몰 사고에서도 이 같은 사전 징후 및 비슷한 소형 사고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3주 전인 지난달 28일 인천에서 백령도로 향하던 396톤의 여객선 데모크라시 5호는 어선과 충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짙은 안개 탓에 늦게 출발한 데모크라시 5호의 충돌 사고로 인해 인평 피해는 없었지만 승객 141명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난해 2월에는 제주도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6천322톤급의 여객선 오하마나호가 고장으로 인해 옹진군 대이작도 인근 해상에서 5시간가량 표류했다. 이 사고로 오하마나호는 6시간이나 늦게 인천항에 입항했으며, 승객 중 일부가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을 벌였다. 데모크라시 5호와 오하마나호 모두 이번에 사고를 일으킨 세월호와 똑같이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이다.

세월호의 여러 가지 위험한 사전 징후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에 소속되기 전 일본 ‘마루에페리’사 소속의 여객선이었다. 그런데 이 해운회사에 소속된 아리아케호가 지난 2009년 11월 미에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사고를 당했다. 아리아케호는 세월호보다 더 큰 7천910톤급의 여객선이었지만, 높은 파도에 의해 화물고정장치가 풀리면서 대형 컨테이너가 한쪽으로 쏠려 복원력을 상실해 침몰했다.

선박이 처음 기울어지게 된 원인은 달라도 컨테이너 등의 화물이 쏠리면서 복원력을 상실하는 과정은 세월호와 거의 비슷하다. 더구나 아리아케호도 세월호와 똑같이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세월호와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선박이다.

이밖에도 세월호는 침몰하기 전에 여러 가지 위험한 사전 징후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출항하기 전 해상에 깔린 짙은 안개가 그 전조였다. 세월호는 원래 15일 오후 6시 30분에 인천항을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그로 인해 오후 9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출항했다.

이처럼 출항이 늦어지자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던 한 신혼부부는 선박 측에 하선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배에 실은 승용차를 빼줄 수 없다는 말에 결국 내리지 못했고, 이 신혼부부는 침몰 사고 후 실종되었다.

세월호가 건조된 이후 두 번에 걸쳐 개조된 정황도 밝혀졌다. 1994년 6월 일본에서 처음 건조됐을 당시 세월호의 총톤수는 5천997톤이었다. 그러나 한 달 뒤 개조되면서 총톤수는 6천586톤으로 늘어났다.

2012년 10월 한국 청해진해운에 매각된 이후 세월호는 또 한 번의 구조 변경이 이루어졌다. 승객과 화물을 더 싣기 위해 총톤수는 239톤 늘어난 6천825톤이 되었으며, 정원은 117명 늘어난 921명이 된 것.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흘수선이 높아지고 복원력이 취약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세월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자료에 의하면 사고 당시 세월호는 평소처럼 완만하게 선회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남서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선적되어 있던 컨테이너와 차량 등의 화물이 이탈하면서 복원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복원력이란 외부의 힘에 의해 선박이 기울어졌을 경우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을 말한다. 하지만 구조 변경 시 높아진 흘수선과 느슨하게 결박한 화물 등이 이탈하면서 급선회 때 세월호는 복원력을 잃은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적인 전통을 훼손시킨 대리 선장

대리 선장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은 신모 씨이지만 휴가를 가는 바람에 이준석 선장이 대타로 나선 것. 2급 항해사 면허 보유자인 이준석 선장은 승객들을 그대로 둔 채 제일 먼저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사고 있다.

선원법에 의하면 선장은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준석 선장에 대해 선장이 배를 마지막까지 지킨다는 세계 선박 운항 관리 전통을 훼손시킨 수치스런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세월호의 이 같은 사전 징후들은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서해훼리호의 침몰사고 때와 놀라울 만치 똑같다. 서해훼리호 역시 출항 전에 파고가 높고 돌풍이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예고가 있었다. 항해하기에 무리가 있는 기상상태였지만, 서해훼리호는 출항을 강행했다.

더구나 사고 당시 서해훼리호는 최대 적재화물 기준보다 6.5톤을 초과해 실은 상태였다.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항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고가 높아지자 큰 각도로 우회전하는 순간 배의 뒤편에서 오는 파도를 맞아 순식간에 전복됐다. 화물 및 정원 초과 등으로 무게중심이 올라가 복원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합동조사반은 만재흘수선을 부적합하게 지정한 것도 사고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선박의 복원성 규칙에 따른 만재흘수는 1.912m가 적절했으나 해운항만청이 2.311m로 지정했던 것. 그로 인해 서해훼리호는 기준보다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만재흘수선을 지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휴가를 간 항해사를 대신해 갑판장이 운항하다가 사고를 당한 점도 세월호와 아주 유사하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4-04-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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