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헬기(KUH) ‘수리온(Surion)'이 하얀 눈가루를 흩날리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지난 2월 7일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의 알래스카 설원에서 수리온 헬기는 힘찬 웅비의 날개를 펼치며 긴 시험평가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달 29일 방위사업청은 “지난 2006년부터 1조3천억 원을 투입해 벌여온 한국형 기동헬기(KUH) ‘수리온’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수리온은 군에서 운용 중인 UH-1H, 500MD 등 노후화된 기동헬기를 대체하는 최첨단 기동헬기다. 수리온의 비상은 우리나라가 세계 11번째 헬기 개발 국가가 됐음을 알리고,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기본훈련기 KT-1 개발에 이어 헬기까지 만들어낼 능력을 보유, 한국이 이제 항공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됐음을 의미한다.
고정익 항공기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회전익 항공기 즉, 헬리콥터는 개발과 시험평가에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자본을 투입한 한국형 헬기 수리온역시 긴 시험평가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수리온 그 내부에는 과연 어떠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뛰어난 안정성과 자동비행
큰 로터(Rotor)와 긴 블레이드를 회전시켜서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 양력과 추력을 얻는 헬리콥터(Helicopter)는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불리한 공기역학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헬기가 고정익 항공기가 갖지 못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지 상태에서의 이륙과 제자리 비행((Hovering)이다.
헬리콥터는 정지된 대기(풍속 1.5m/s) 안에서 지면효과(헬기가 지면에 접근하면 헬기 밑의 공기가 쿠션 작용을 해서 떠받치는 효과)가 없는 모든 고도에서 사이클릭 피치(전후좌우 조종간)를 미세하게 움직여 기체를 정점 상에 유지할 수 있는 제자리 비행 성능이 요구된다.
미군용 헬기 블랙호크의 경우, 특공대원들을 원하는 목표지점 바로 위에 레펠 하강시킬 수 있고, 공격 헬기 아파치(Apach)는 정지 상태에서 지상의 탱크를 미사일로 격파할 수 있다. 또 구조헬기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표류하는 조난자를 크레인과 윈치로 끌어 올려서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호버링 비행 덕분이다.
한국 지형에 맞게 개발된 수리온은 공기가 희박한 백두산의 고도(약 2,750m)에서도 제자리 비행이 가능한 최첨단 헬기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이 자랑하는 '블랙호크(Black Hawk)'에 맞먹는 능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자리 비행(하버링)은 헬기가 갖는 능력이지만 사이클릭 레버(전후/좌우 조종간)와 컬렉티브 피치 레버(상승/하강 조종간) 그리고 방향 페달(rudder) 등의 조종간을 세밀하게 조합해서 조종해야 하는 어려운 조종술이다”고 설명한다.
컴퓨터로 정밀하게 제어되는 수리온의 경우,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4축 자동비행 조종 장치를 채택, 조종사가 조종간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후, 좌우, 회전 및 상승 및 하강 등의 4축에 대해 조종을 할 수 있고, 헬기의 방향, 속도, 고도, 자세 등을 잡을 수 있어 안정성이 매우 큰 헬기다.
영하 40도에서도 이상 없다
엄청난 투자와 긴 개발 과정, 오랜 기간 동안의 수많은 시험평가 등은 헬기 개발의 난맥상을 대변한다. 방위사업청은 “헬기 개발은 통상 10년 이상 소요되지만 T-50 개발에 적용했던 설계 기술과 동시공학 설계(시제기 생산과 설계를 컴퓨터 시스템에 따라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방법)기술을 적용, 짧은 기간에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산고를 거쳐서 수리온은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UH-60 헬기와 비교해 최신 3차원 전자지도, 통합헬멧시현장치, 4축 자동비행조종장치 등을 장착, 주·야간 악천후에도 전술기동이 가능하며, 비행조종컴퓨터를 통해 모든 방향(전후, 좌우, 회전 및 상승/하강)에 대한 자동제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수리온은 자동비행장치, 통합 디지털 계기판넬(Glass Cockpit) 등을 탑재, 각종 비행 및 임무 정보를 통합 시현함으로써 조종사의 부담을 줄였고, 항공기의 유압, 로터 등 주요 구성품에 센서를 장착, 감시하는 장비(HUMS : Heath & Usage Monitoring System)를 장착했다. 이는 조종사가 조종이외에도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승무원과 조난자의 생존성을 배가시킨다.
주야간 악천후에도 안정적인 전술기동을 할 수 있는 전천후 헬기로서 수리온의 로터 블레이드는 유리섬유와 탄소섬유를 적층 및 압축 후, 경화시켜서 무게는 가볍지만 금속과 맞먹는 경도를 갖고 있으며, 군용이라서 내탄 능력을 갖고 있다. 블레이드에 총격으로 여러 개의 구멍이 나도 30분 동안 비행을 유지할 수 있는 것.
한편 수리온은 모든 국내 시험평가를 마치고, 마지막 관문인 저온시험을 위해 지난해 12월 24일 북극의 나라 알래스카로 날아갔다. 올해 2월 7일까지 저온 환경에서의 운용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영하 40도에서 12시간 이상 항공기를 노출시킨 후, 진동, 하중 등 50여 회의 비행시험을 거쳐 드디어 총 121개의 항목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저온운용능력에 이상 없음을 확인했다. 수리온의 비상으로 한국의 항공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열고 있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3-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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