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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013-02-20

남극 빙저호에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 독자적으로 진화한 생명체 발견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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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세계적인 과학 잡지 ‘사이언스’는 2013년에 과학계에서 주목해야 할 영역 중 하나로 ‘남극의 빙저호’를 꼽았다. 빙저호(氷底湖)란 호수 위로 빙하가 뒤덮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남극처럼 기온이 매우 낮은 대륙에만 나타나는 지형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1월 29일 미국 연구진은 남극의 훨런스(Whillans) 호수를 뚫고 내려가 채취한 담수와 지층의 샘플에서 미생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남극 서부의 로스빙붕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훨런스 호수는 800미터 두께의 얼음 밑에 위치해 있어 영구적으로 햇빛이 도달하지 않았던 곳이다.

연구팀은 호수를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주문 제작한 청정 열수 드릴기로 시추해 2미터 깊이의 호수를 발견했다. 애초 지진조사를 통해서 추정한 훨런스 호수의 깊이는 10~25미터였지만, 그보다 훨씬 얕은 것으로 밝혀진 것.

▲ 남극 대륙의 빙저호 중에서 가장 큰 보스토크 호수. ⓒNASA

연구팀은 호수에 카메라와 샘플링 장비를 집어넣어 며칠 동안 30리터의 담수와 호수 바닥 여덟 곳에서 지층 샘플을 채취했다. 이렇게 수집한 샘플을 현장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담수 1밀리미터당 약 1천 마리의 박테리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배양접시에서 매우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박테리아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체인지 아니면 새로운 생명체인지의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 연구진은 DNA 염기서열분석 등의 여러 실험을 통해 이 박테리아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는데, 적어도 1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기본적인 사항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지질학자 존 프리스쿠(John Priscu)는 “훨런스 호수에는 확실히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남극의 빙붕 밑에 활동적인 미생물의 생태계로 이루어진 거대한 습지가 존재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연구결과는 남극을 보는 관점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극 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습지

사실 훨런스 호수보다 최근에 더 기대를 모았던 곳은 영국 연구진이 지난해 12월부터 탐사를 추진했던 엘스워스(Ellsworth) 호수이다. 길이 12킬로미터에 넓이 3킬로미터, 깊이 150미터인 이 호수는 미생물을 찾는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적합한 장소이다.

엘스워스 호수의 얼음은 온도가 약 -30℃로서, 보스토크 호수의 온도보다 두 배 정도 따뜻할 뿐더러 그 얼음의 두께도 1킬로미터 정도 얇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엘스워스 호수는 샘플을 채취하기에 훨씬 쉬운 곳이다.

영국 연구진은 5단계의 정수 시스템을 통해 적외선으로 소독한 순수한 형태의 물 6만 리터를 준비하고 5미터 길이의 실린더 티타늄 탐사기를 시추공으로 내려보내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엘스워스 호수를 덮고 있는 얼음을 약 60미터쯤 파고 들어갔을 때 문제가 생겼다. 얼음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온·고압 제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보일러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그만 물을 끓이는 보일러가 말썽을 일으킨 것. 이로 인해 연구진은 철수한 상태이며, 엘스워스 호수의 시추는 미루어졌다.

빙저호 중에서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모았던 곳은 지난해 2월에 시추된 보스토크(Vostok) 호수이다. 남극 빙하 3천768미터 아래 위치한 보스토크 호수는 길이 250킬로미터, 넓이 50킬로미터로 세계 최대급의 담수호이다. 더구나 이 호수는 1천500만~3천만년간 빙하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예상돼 독자적으로 진화한 미생물의 발견 가능성이 높다.

▲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이 보스토크 호수이다. ⓒNASA

보스토크 호수는 1977년 처음으로 그 존재가 확인된 이래 러시아 연구진에 의해 시추 작업이 계속되었지만, 당시의 시추 기술로는 호수가 오염될 수 있어 130미터를 남겨 놓은 지점에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 연구진은 마침내 20여 년간의 시추작업 끝에 얼음을 뚫고 호수 표면의 물을 채취했다.

당시 그 작업을 주도한 러시아 과학자가 “이번 작업의 성공은 인류의 달 착륙과 맞먹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힐 만큼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연구진이 보스토크 호수에서 채취해 냉동 상태로 보관된 샘플에 대한 임시 분석에서는 그곳에 원래 존재하는 미생물이 없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연구진은 보스토크 호수의 상층에는 생명체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러시아 연구진은 다시 보스토크 호수에 내려가 좀 더 많은 샘플을 채취할 계획이다.

지구온난화 연구에 대변혁 일으킬 단서 존재

과학계가 이처럼 남극의 빙저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극저온에 빛도 양분도 없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도록 독자적으로 진화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같은 미생물이 발견된다면 얼음으로 덮인 태양계 안의 다른 천체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보스토크 호수의 환경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광합성은 햇빛이 없으면 불가능하므로 월런스 호수에서 이번에 발견된 박테리아는 다른 원천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박테리아는 호수 바닥의 광물과의 화학적인 반응이나 호수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와의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그 같은 에너지원을 밝혀내는 것도 흥미로운 연구이다.

설사 빙저호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을 경우, 그것으로도 엄청난 성과가 된다. 지구나 태양계의 다른 지역에서 생명체를 제한하는 요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빙저호 바닥의 퇴적물은 과거 기후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 기후 기록을 찾게 된다면 지구의 가장 큰 현안인 지구온난화 연구에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고기후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극의 빙하 밑에 존재하는 빙저호는 380개 정도 발견되었으며, 얼음을 뚫을 수 있는 원격 레이더, 인력 측정 및 지진대 조사를 통해 남극의 호수 지도가 작성되었다. 고대에 생성된 이 호수들은 지하의 지열과 남극 빙하가 녹아서 형성되었는데, 인력과 얼음의 압력으로 녹은 물이 흐르게 되었으며 남극의 빙하 밑에 존재하는 대륙의 빈 공간과 계곡 지역에 모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남극 대륙 아래에서 윤활유처럼 작용하는 빙저호에 대한 연구는 남극해의 화학적이고 생물학적 활동성에 영향을 주는 광물의 배출 현상이 이루어지는지의 여부도 알려주게 될 것이다.

훨런스 호수의 탐사를 주도한 존 프리스쿠는 “남극에 숨겨진 빙저호에 대한 탐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3-02-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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