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센다이에는 외벽이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건물이 있다. 색상에 따라 태양빛을 흡수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열을 흡수해 표면 온도를 높이는 검은색과 그 반대 효과를 지닌 흰색을 교차해 배치한다. 그러면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기압 차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작은 공기 흐름이 형성돼, 내부 온도가 내려가는 원리다. 여름철에 통풍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온도를 5℃ 낮춰 20%의 에너지를 절감한 바 있다.
이 두 건물의 공통점은 자연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전자는 스웨덴 건축가 안데르스 나이퀴스트(Anders Nyquist)가 얼룩말의 줄무늬에 착안한 것이고, 후자는 믹 피어스(Mick Pearce)가 흰개미 둥지에서 영감을 얻어 건축했다.
비단 건물 뿐만이 아니다. 로봇, 접착제, 수영복 등 자연을 본떠서 만든 제품이 많이 개발됐고 상용화됐다. 이에 대해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세미나에 강연자로 나와 “자연 전체가 연구 대상인 만큼 그 활용 범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다”고 말했다.
동·식물 모방하는 ‘청색기술’ 각광
강연 서두에서 이 소장은 용어의 뜻부터 짚고 넘어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생물영감’은 생물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는 공학기술을 일컫는다. 일본 의료기기 회사가 모기 주둥이 모양에서 착안해 만든 무통주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존 바늘보다 20% 작은, 지름 0.2mm의 바늘을 개발함으로써 당뇨병 환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계속해서 이 소장은 ‘생물모방’은 생물을 본뜨는 기술이라며, 상징적인 제품으로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Velcro)를 꼽았다. 생물모방(Biomimicry)이라는 용어는 1982년부터 사용됐고, 미국의 생물학 저술가인 재닌 배니어스(Janine Benyus)가 1997년에 발간한 도서의 이름으로 사용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동·식물을 모방한 로봇을 소개했다. 미국 북서부 사막지대에서 번식하는 잡초로 바람이 불면 둥글게 뭉쳐서 굴러다니는 특징이 있는 회전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행성탐사 로봇, 동물행동학과 로봇공학을 융합한 결과물인 곤충로봇 아틸라, 박테리아와 로봇을 결합한 박테리아봇, 2008년 미국에서 개발돼 군수품 운반용으로 사용되는 빅도그 등이 그것.
이렇게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이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오염이 발생한 뒤 사후 처리하는 대응측면이 강한 녹색기술과 달리, 오염물질을 원천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 이 소장은 군터 파울리(Guntet Pauli)의 저서 ‘청색경제(The Blue Economy)’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청색기술’이라고 명명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이 소장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면 지구를 환경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연중심기술이 녹색시대를 넘어 청색시대를 여는 혁신적인 접근방법이라고 확신한다”며 “생명 중심적, 자연 중심적 세계관이 널리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시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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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1-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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