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은 동물보호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반대를 제기한 사회적 이슈다.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동물들을 위험한 실험에 동원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 되고 있는 것.
지난 14일, '금요일에 과학터치' 본강연에서는 사회의 뜨거운 이슈인 신약 개발과 동물실험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됐다.
신약개발 위한 동물실험
이날 강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이자 바이오컨버전스 연구단에 소속된 김기범 교수에 의해 진행됐다. 먼저 신약 개발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뗀 김 교수는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개발비용과 높은 실패율을 거치게 된다”고 언급했다.
학계에 따르면 현재 한 개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10~15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 1조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토록 도박 같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관에서 신약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는 한 개의 약이 개발됐을 때의 파급효과가 1년치 자동차 수출 효과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기범 교수에 따르면 신약 개발은 신약 후보 물질이 도출됐을 때, 이를 상용화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시험관 내에서 세포와 단백질 DNA 등을 사용하는 기초실험과 실험동물을 사용하는 전임상 단계의 동물 실험,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임상시험이 모두 포함된다.
김 교수는 “신약 개발은 국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현재 우리 연구단은 어떤 단백질 혹은 유전자를 목표로 하는 게 좋을지, 연구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 지금까지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며 바이오컨버전스 연구단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모델은 특정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를 연구하고 신약 후보 물질이 나왔을 때 해당 물질을 테스트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 사용해도 안전한지, 특정 병이 정말 치료될 수 있는지, 사람에게 임상시험을 하기 전 전(前)임상단계로 활용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약 개발과정에서 희생되는 실험동물의 사용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을 진행하는 과학자들 간에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도 과학자들은 동물실험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바로 사람을 위해서다”라고 전했다.
사람 몸에 나타난 신약의 부작용 사진을 먼저 보여준 그는 “이것이 바로 동물실험이 필요한 이유다. 사람에게 신약을 투여하면 수포나 발진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지난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총 3년 동안 국내에서만 임상시험 기간 동안 사망한 사람이 37명이었다. 약은 질병을 치료하는 반면, 어느 종류든 부작용을 갖고 있다. 그런 약을 개발할 때 아무런 검증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에게 투여해 버리면 지금의 몇 배가 되는 수의 사람이 사망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목숨을 잃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덜기 위해 동물에게 먼저 투여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임상시험은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만큼 위험성이 크고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소요된다. 따라서 전임상 단계에서 좀 더 명확히 약에 관한 결과를 얻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1960년대부터 동물실험에서 인체의 부작용을 예측하기 위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전 임상실험에서 인체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확률은 최대 50%로 동전 뒤집기 확률정도로 낮은 편이며 독성이 심한 항암제의 경우 예측력이 25%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50%의 확률 위해?
사실 이 50%의 확률은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고작 50%의 확률을 위해 동물실험으로 생명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마땅한지 비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사실 50%도 매우 높은 확률”이라며 “그러나 50%가 아닌, 단 1%의 확률이라 할지라도 임상시험에서 사람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생명을 1%라도 구할 수 있다면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사람을 구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동물실험을 중지하는 것은 과학자의 의무를 져버리는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약을 테스트하는 데 왜 동물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의 DNA 구조와 동물의 구조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형태는 다를지라도 깊숙이 들어가 보면 DNA의 구조가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김기범 교수는 염증을 유발하는 단백질(P43)의 침팬지와 사람의 유사성은 99%이며, 쥐와 사람은 81%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침팬지의 단백질이 사람과 더 유사하나 동물실험에 주로 쥐를 사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비용이 훨씬 저렴하며 소(小)동물이므로 관리가 쉽다. 또한 침팬지에 비해 번식력이 빠르고 이에 따라 실험을 빨리 진행할 수 있다. 더불어 침팬지에 비해 유전자 조작도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아마 나에게 침팬지로 실험을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것이다. 너무 똑똑하다. 사람이 오면 다 알아볼 뿐 아니라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런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경우, 실험자의 심적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 실제로 강아지나 고양이, 침팬지 등으로 실험을 하는 과학자 중에는 심리상담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동물실험은 추후 없어질 것인가. 김 교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현재 우리의 신약 개발 기술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그 결과 동물의 복지가 많은 부분 개선됐고, 최소한의 동물로 실험을 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전했다.
강의를 들은 이수현(대덕고, 1년) 학생은 “신약 개발은 평소 관심 있는 분야였다. 교수님께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다른 때 강의보다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고 전했다.
자녀와 함께 강의를 찾은 최경임(서구 만년동) 씨는 “알아듣기 쉬웠고 매우 유익했다. 신약 개발을 위해 동물실험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다른 때보다 많은 관심이 갔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금요일에 과학터치’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과학교육 프로그램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서울과 부산, 대전, 광주, 대구 등 5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2-09-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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