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그림을 그리며 이해해야 합니다. PPT로 수업하지 않아요. 대학교 1학년생처럼, 삼색 볼펜으로 직접 그리고 용어를 암기해야만 이해할 수 있어요. 명심하세요, 반드시 암기해야 합니다”
지난 8월 28일, 대전의 한국한의학연구원 대강당은 자신의 ‘뇌’를 알기 위해 학구열을 불태우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뇌과학에 대한 학계와 대중들의 관심이 증가한 가운데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주최한 '뇌과학 특별 릴레이 강연'의 첫 강의가 열린 것이다.
‘뇌, 생각의 출현’의 저자이면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책임연구원인 박문호 박사가 진행하는 이 강의는 28일 첫 수업을 시작으로 오는 12월11일까지, 총 10회의 강의를 진행한다. 척추동물의 뇌가 진화한 과정부터 인간 뇌의 발생과정, 척수와 자율신경, 감정의 진화, 뇌와 의식 등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청중들과 만나는 과정이다.
첫 시간은 ‘뇌의 진화’를 주제로, 척추동물 신경시스템의 진화와 척추동물 비교신경해부 등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뇌의 진화, 그 신비의 과정
뇌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하기 전, 박 박사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세포분열을 일으키는 과정부터 언급하기 시작했다. 모든 생물체의 뇌가 태아부터 시작되는 만큼, 가장 기초적인 순서부터 차근차근 짚어야 한다는 그만의 교육법 때문이다.
수정란이 분열을 거쳐 내배엽과 중배엽, 외배엽의 배아가 되는데, 여기서 내배엽과 중배엽, 외배엽은 우리 인체 주요 기관의 기원으로 작용한다. 중배엽은 콩팥과 생식소의 기원이고, 내배엽은 간, 폐, 이자, 소화관, 방광의 기원인 것. 외배엽으로부터는 표피와 신경계, 신경관이 만들어진다.
특히 외배엽은 신경제와 신경관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이날 강의 역시 외배엽의 성장에 관한 설명으로 집중됐다. 뇌는 신경제에서 신경세포가 집합해 신경작용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외배엽이 함몰돼 생긴 신경관에서 발생된다. 이는 박 박사가 “우리는 ‘관’에서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박사는 외배엽이 서서히 진화되는 과정의 그림을 ‘운명지도(fatal map)’라고 불렀다. 작은 외배엽의 성장 과정에 따라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 생겨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발달하는 만큼,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장치라는 의미에서다.
강의 동안 박 박사는 뇌를 설명하며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전문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모든 지식의 기초가 물리적 구조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평소 강의에서 ‘심리를 알기 위해서는 생리를 알아야 하고, 생리를 알기 위해서는 물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러한 박 박사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듯, 강의를 시작한지 중반쯤 되자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뇌구조 그림을 50개 그리고, 뇌 전문용어를 300개 암기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이번 강의에 있어 특히 그림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그가 그린 칠판 위 뇌 그림들을 보면 매우 복잡한 강의 같지만, 그는 뇌의 기능을 단 세 가지로 압축하며 지식이 아닌, 실제로서의 뇌 공부를 유도했다.
감각, 운동 그리고 기억
박 박사는 뇌의 기능이 감각과 운동 그리고 기억, 세 가지가 전부라고 간략하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뇌를 좌뇌와 우뇌로 나눠 이해하고 있지만, 그는 뇌를 앞과 뒤로 구분해 설명했다. 뇌의 앞부분은 감각이고 뒷부분은 운동이며 가운데는 기억을 담당한다는 것.
“우리 뇌는 궁극적으로 운동을 만드는 기관이다. 침을 뱉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감각이 없으면 운동을 할 수 없다. 운동을 잘 할 수 있게끔 감각이 진행되는 것이다. 동물들의 운동은 매우 반사적이다. 하지만 사람은 운동을 지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뇌의 진화는 운동성의 진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포가 감각과 운동으로 나눠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어 그는 포유류와 거북이, 도마뱀과 악어 같은 파충류를 뿌리로부터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종의 기원을 찾아감으로써 포유동물의 메커니즘이 왜 다른 동물과 다른지 알기 위한 것으로, 그 시초는 양막류에서 시작한다.
양막류란 척추동물 중 발생과정에서 양막과 장막, 요막을 가지는 동물들로, 파충류와 조류, 포유류 등의 무리를 일컫는 용어다. 대부분 육상생활을 하며 폐로 호흡을 한다. 양막류에는 단궁류와 무궁류, 이궁류가 있는데, 후기고생대에는 이 단궁류에서 반룡류의 파충류가 나오게 된다. 이것이 수궁류가 된 후, 신생대에 와서 포유류가 된다. 무궁류에서는 신생대에 거북이로 바로 진화되며 인룡류에서는 도마뱀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번 강의에 참여한 류연(한국한의학연구소 연구원) 씨는 “뇌가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으로 그리며 알기 쉽게 설명해 줘서 매우 유익했다. 뇌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얻어가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날 강의에 앞서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 “뇌에 대한 과학문화를 확산하고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강의를 들은 후 많은 사람들의 뇌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음) 유익한 강의 시간이 될 것”이라며 축사를 전했다.
강의는 앞으로 뇌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 등에 대한 내용으로 심도 있게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 강의에는 대전 출연연 연구원부터 주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뇌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2-08-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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