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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연희 객원기자
2012-08-22

휴식, 문제 해결의 힘 활발히 활동하는 디폴트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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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뛰어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 금관에 은이 섞여있는지 알아내라는 왕의 명령으로 방법을 찾아 연구에 몰두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아르키메데스는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목욕탕을 갔는데, 뜻밖의 이 장소에서 금관의 불순물을 찾아낼 방법을 생각해낸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이디어는 연구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산책을 좋아했던 칸트, 바이올린과 보트 타기를 하며 쉬기를 너무 사랑했던 아이슈타인,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했던 에디슨 등. 살펴보면 위대한 사상가나 과학자들은 정작 본인들의 학문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휴식을 취할 때나 고민하고 있던 생각을 오히려 잠시 접어버렸을 때에 이외의 발견들이 종종 이루어졌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휴식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휴식의 주는 효과는 디폴트 네크워크(default network)로 설명될 수 있다. ⓒiini0318


디폴트 네트워크는 휴식을 취할 때 활발히 활동

여행이나 휴식은 일상의 모든 생각을 던져버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텅 빈 진공상태가 되지는 않다. 우리의 뇌가 청소되고 정리되면서 오히려 다양한 몽상들이 우리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휴식과 여행을 마치고 나면 뜻밖의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경우가 이 때문이다.

휴식의 주는 효과는 디폴트 네크워크(default network)로 설명될 수 있다. 디폴트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이 영역은 우리 뇌가 소모하는 전체 에너지의 60-80% 차지하는데, 뇌에서 안쪽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안쪽과 바깥쪽 두정엽이 이에 해당된다.

디폴트 네트워크를 발견한 사람은 미국의 두뇌 연구가인 마커스 라이클 박사다. 1998년 자기공명영상을 연구하다가 알아냈다. 당시 그는 실험 참가자가 테스트 문제에 집중하면서 생각에 골몰하면 뇌의 특정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기다 이 영역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활동이 늘어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뇌의 많은 부분은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 디폴트 네트워크는 정보만을 처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자기의식을 다듬기도 한다. ⓒsciencetimes
사실 예전에는 뇌의 기능을 컴퓨터에 비유했다. 감각을 통해 외부 정보가 입력되면 그에 맞는 행동이 출력되는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디폴트 네트워크의 발견으로 뇌에서 이런 입출력 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작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쉬고 있을 때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하루 일과 중에 긴장을 풀고 몽상을 즐길 때나 잠을 자는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한다. 즉 외부 자극이 없을 때다. 하지만 정보가 유입되지 않는다 해서 우리 두뇌가 쉬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인 뉴런들을 다듬고 관리하는 일, 혹은 뉴런의 네트워크를 새롭게 정비하고 기억을 분리하는 일, 그리고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 등 오히려 끊임없이 활동을 하며 정보를 재정비한다.

자기의식 형성에도 관여

이외에도 디폴트 네트워크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자기의식을 다듬는 활동도 한다. 스위스의 피에르 마기스트레티는 연구를 통해 10-12세까지의 아동들에게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들에게서는 디폴트 네트워크 활동이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 쾰른 대학교 신경과학자 카이 포겔라이도 정상인과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의 디폴트 네트워크를 비교하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신경학자들도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디폴트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자기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연구 결과 알게 됐다. 예를 들자면 자폐증인 사람인 경우에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부실해 현실을 과거와 미래의 맥락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반면 정신분열증은 디폴트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활성화된 상태라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위축되고 내부에서 왜곡된 정보를 생성하는 경우이다. 종종 정신분열증 환자가 환시나 환청을 보는 경우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뜻밖의 운 좋은 발견, 세렌디피티 원리

그런데 정말로 ‘아무생각 없음’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주는 것일까. 정답은 ‘노(NO)'이다. 아르키메데스도 문제에 골몰하던 중 목욕탕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문제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해결에 대한 열린 사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과나무 아래서 발견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 ‘세렌디피티 원리’란 ‘뜻밖의 운 좋은 발견’이란 뜻이다. ⓒiini0318
뜻밖의 행운의 발견이나 발명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포스트잇’이다. 1968년 3M에서 모든 표면에 잘 붙는 새로운 슈퍼 접착제를 만들었지만 쉽게 떨어지는 탓에 실용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3M에 근무하던 아서 프라이가 교회 성가대에서 찬송을 부르다가 자꾸 악보에 떨어져 내리는 책갈피를 보고 실험실에서 잠자고 있던 슈퍼 접착제를 쪽지에 발라 ‘포스트잇’을 탄생시켰다.

보통 ‘포스트잇’과 같은 발명을 ‘세렌디피티 원리’라고 부른다. ‘뜻밖의 운 좋은 발견’이란 뜻이지만 영감이나 문제해결 능력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원리이기도 하다. 특히 관련 지식이 있고 열린 사고를 갖고 있을 때,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어떤 정황과 맞물리게 되면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발한 이외의 장소에서 ‘세렌디피티 원리’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김연희 객원기자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2-08-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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