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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2-04-05

세균도 사람처럼 ‘게임이론’ 즐긴다 1조마리 세균 얽힌 ‘죄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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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집단을 이루고 그 안에 속해 있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 '게임이론'의 대표사례로 거론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선택하게 된다. ⓒImageToday
그런데 집단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수의 결정을 따라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자의 이익이 상충해 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잦다.

그런데 이렇듯 고차원적인 고민을 하는 존재는 인간뿐만이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단세포 생물에 불과한 세균들도 군집 내 다른 세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라 결단을 내린다. 수학 계산으로 사회상황의 변화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게임이론’ 수준의 고민과 의견이 오간다.

미국 라이스대학교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공동연구진은 지난달 말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제243회 미국화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하등생물인 세균 군집이 인간처럼 의사소통을 하고 결단을 내린다는 내용의 발표를 해 관심을 끌었다.

이익 위해 고민하는 ‘죄수의 딜레마’

공범을 저지른 용의자로 두 사람이 지목되었다. 증거가 부족한 검찰은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내 사건의 경위를 밝히려 한다. 그러나 둘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이때 새로운 제안이 등장한다. 먼저 자백하는 사람은 무죄로 석방하되 다른 사람은 1년형을 받게 된다. 둘 다 자백하면 형량은 3개월까지 낮아진다. 두 사람은 서로 격리되어 있어서 상의를 하거나 의견을 교환할 수 없다. 이 때부터 용의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증거가 불충분하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1개월 복역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저쪽 친구가 먼저 고백을 해버린다면? 이쪽도 빨리 자백하지 않으면 1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자백하면 형량이 3개월로 줄어든다.

그러니 괜한 모험으로 1년형을 받는 것보다 자백을 해서 최대 3개월로 위험을 낮추는 편이 낫지 않을까? 게다가 나 혼자 자백한다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지 않은가! 용의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태에 빠진다.

자백하지 않으면 죄가 들통나지 않을 상황인데도 결국에는 둘 중 한 명이 먼저 자백을 하게 된다. 검찰은 가만히 앉아서 이쪽 용의자에게 죄를 자백받고 저쪽 용의자를 범인으로 감옥에 가두는 일거양득을 누린다.

▲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모델이 된 수학자 존 내쉬는 '죄수의 딜레마'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다. ⓒNBC Universal
이것이 ‘게임이론(Game Theory)’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죄수의 딜레마’다. 1950년 앨버트 터커(Albert Tucker)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가 처음으로 예를 들었다. 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상대방의 결정을 염두에 두고 판단을 내려야 불리해지지 않는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가장 좋은 이익을 놓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배트맨 시리즈로 지난 2008년 제작된 영화 ‘다크 나이트(Dark Knight)’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한다. 악당 조커가 배 두 척에 탄 사람들을 이용해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한 상황을 만든다.

각 배에는 폭탄이 장착되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의 배가 폭발한다. 둘 다 누르지 않으면 살겠지만 상대가 버튼을 누른다면 이쪽이 먼저 죽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버튼을 눌러 상대방 배를 폭파시키는 편이 안전하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겨야 하는 것일까? 조커는 사람들이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 것이다.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의 모델인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는 이 딜레마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게임이론이 집단과 개인의 판단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세균들의 결정에도 ‘죄수의 딜레마’ 적용된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호세 오누시크(José Onuchic) 교수가 이끄는 미국 라이스대 연구진과 에셸 벤야콥(Eshel Ben-Jacob) 교수가 이끄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은 최근 “세균들도 인간처럼 게임이론을 이용해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단세포 미생물로 인간의 몸과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세균은 적게는 수백만 마리에서 많게는 수조 마리에 이르는 군집상태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각 개체가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군집 전체가 동일한 행동패턴을 보이면 쉽게 고칠 수 없는 만성질환이 생긴다.

집단행동을 하려면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세균들은 아미노산이 결합된 펩티드(peptide)와 페로몬(pheromone) 등의 호르몬을 이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한다. 이웃한 세균은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를 ‘쿼럼센싱(quorum-sensing)’이라 부른다.

평소에는 인체 내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던 세균도 어느 순간 집단의 의견이 변화하고 통일되기 시작하면 갑자기 돌변해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질병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흙 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고초균(Bacillus subtilis)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 연구진은 세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세포도 '게임이론'을 통해 행통패턴을 바꾼다고 보고 의사결정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 중이다. ⓒTel Aviv University
고초균은 가뭄, 방사능, 인구과잉 등으로 인해 환경이 가혹하고 비호의적으로 변하면 갑옷처럼 단단한 껍질로 몸을 감싸고 10시간 정도 걸려 포자(pore)로 변신한다. 포자 형태로는 수십 년을 견딜 수 있다. 환경조건이 좋아지면 반응형(competence)이라 불리는 평범한 세균 형태로 복귀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고초균은 쿼럼센싱을 실시해 이웃 세균의 판단을 살피고 집단행동을 결정한다. 포자로 변하려면 몸집과 신진대사를 줄이기 위해 유전자의 절반 가량을 버려야 한다. 포자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500여 개가 있는데 이웃 세균이 버린 유전자를 흡수하고 정보를 분석해서 포자로 변할지 아닐지의 를 결정하는 것이다.

포자로 변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일단 포자로 변하면 주변의 자원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다. 게다가 깨어날 시기를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환경변화에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이웃 세균의 눈치를 보고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체의 세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고 있다. 평소에는 멀쩡한 세포라도 어느 순간 화학신호를 받으면 악성종양으로 변질되거나 다른 기관에 암세포를 전이시키기도 한다. 세포의 의사소통 체계를 분석해낼 수 있다면 인체에 불리한 메시지를 가로막아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도 있다.

오누시크 교수는 라이스대 발표자료에서 “신약을 특정세포에 적용할 때 다른 신체기관의 작용을 방해하지 않도록 메시지를 조작할 수 있다면 부작용이 감소하고 약효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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