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아이들에게 “빨주노초?” 하고 묻는다면 금세 “파남보!”라는 대답이 되돌아올 것이다. 무지개의 일곱 색깔이다.
프랑스어로 ‘아르캉시엘(arc-en-ciel)’은 하늘(ciel)에 나타난 아치(arc)라는 뜻이다. 우리말 ‘무지개’의 어원은 세종 때의 문학작품 ‘용비어천가’에 등장한 ‘므지게’다. 물(므)을 뿌리면 둥근 문(지게)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무지개는 공기 속 물방울에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면서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생성 원리를 물리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지금도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무지개 물리학(rainbow physics)’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연구진이 컴퓨터 그래픽과 시뮬레이션 모델을 이용해 무지개의 물리학적 원리를 완벽하게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다. 시뮬레이션 덕분에 일반적인 모양에서부터 쌍무지개까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무지개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빛과 물방울이 ‘무지개 각’에 맞아야 무지개 생겨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현인들이 무지개에 관심을 가졌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세에는 기독교 수도사들이 무지개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1637년에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가 ‘기상학’이라는 책을 통해 무지개의 굴절 원리를 밝혀냈다. 1704년에는 영국 과학자 뉴턴이 저서 ‘광학’ 제4권에서 프리즘을 이용해 무지개를 재현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무지개는 공기 속 물방울에 빛이 부딪히면서 반사되거나 꺾어질 때 ‘무지개 각(rainbow angle)’과 일치하면 생겨난다. 햇빛을 등지고 분무기를 뿌렸을 때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제각각인 이유다.
공기 속 물방울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무지개의 종류도 달라진다. 물방울의 모양을 정확하게 알아내야 무지개의 원리를 물리학으로 풀어내거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낼 수 있다.
최근 미국 UC샌디에이고를 비롯해 영국, 스위스, 스페인 과학자들이 모인 공동연구진이 실제로 무지개가 생겨날 때의 물방울 모양을 밝혀냈다. ‘햄버거’ 모양이 핵심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물방울이 공처럼 둥글다는 가정 하에 빛이 꺾이는 각도를 계산한다. 그러나 중력에 의해 물방울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기압이 변하면 물방울의 모양도 바뀐다. 위아래가 평평해져 햄버거 모양이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물방울에 ‘햄버거 모양의 덩어리’라는 뜻의 ‘버거로이드(burgeroid)’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확한 시뮬레이션의 핵심은 ‘햄버거’ 모양 물방울
버거로이드를 적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들자 여러 종류의 무지개를 재현할 수 있었다. 비 온 뒤에 생겨나는 단순한 ‘1차무지개(primary rainbow)’를 비롯해 엷고 흐린 무지개가 파생되는 ‘2차무지개(secondary rainbow)’, 해가 질 때 나타나는 ‘붉은무지개(redbow)’, 안개가 짙게 낀 날에 생기기 쉬운 ‘구름무지개(cloudbow)’ 등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무지개를 물리학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두 개의 무지개가 겹쳐져 있는 ‘쌍무지개(twinned rainbow)’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내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연구를 이끈 헨릭 옌센(Henrik Wann Jensen) UC샌디에이고 컴퓨터공학 교수는 “이번 결과는 단순한 컴퓨터그래픽(CG)이 아니라 물리학적 원리까지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컴퓨터그래픽 전문가로도 활동 중인 옌센 교수는 지난 2004년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피부를 실제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해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아바타’ 등 헐리우드 영화의 CG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구글 본사에서 그래픽 엔지니어로 일하는 아이먼 서데기(Iman Sadeghi) 연구원의 공로가 컸다. 무지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서데기 연구원은 “무지개에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고 전했다.
무지개 전문가로 알려진 필립 레이븐(Philip Laven)도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그는 “물방울 모양을 둥근 구형에서 납작한 햄버거 모양으로 변형시켜 적용한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며 “앞으로 더욱 정교한 분석모델을 만들어 사실적인 무지개 시뮬레이션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내년 미국 LA에서 열릴 시그라프(SIGGRAPH) 컨퍼런스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이후에 연구진은 북극의 오로라에 담겨진 빛의 굴절 원리를 규명하는 일에 도전할 계획이다. 참고로 자세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동영상(http://youtu.be/iOv4q8aWXpU)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 저작권자 2011-12-14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