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장면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현실에서도 폭력성이 늘어날까.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이 실제 폭력을 유발하는가’ 하는 문제는 지난 몇십년 동안 논쟁거리였다. 심리학자, 과학자, 제작업자들은 서로 상반된 결과를 내보였고 공통된 결론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보다 게임의 폭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화는 한두 시간이면 끝나지만 컴퓨터게임이나 비디오게임은 원하는 시간만큼 얼마든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만16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밤12시부터 새벽6시까지 온라인게임을 차단하는 ‘셧다운제’ 도입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최근 ‘폭력적인 게임이 뇌 기능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되어 화제다. 일주일 동안 10시간만 즐겼는데도 인지기능과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동이 저하됐다는 것이다.
폭력게임에 대한 찬반논쟁 뜨거워
지난 6월 미국 연방법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폭력적인 게임이 판매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기각했다. 담당판사는 “컴퓨터게임과 비디오게임도 엄연히 예술의 한 분야”라며 “기존의 등급제 이외의 추가 규제를 가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미국은 폭력성과 선정성의 정도에 따라 게임의 등급을 나눈다. 오락소프트웨어 등급위원회(ESRB)는 3세 미만에게 적합한 게임은 EC, 3세 이상은 E, 6세 이상은 E+10, 10세 이상은 T, 17세 이상은 M, 폭력성과 선정성이 짙으면 18세 이상인 AO 등급을 부여한다.
이 판결에 게임업계는 환호했고 학부모들은 반대시위를 벌였다. 이후로도 폭력적인 게임의 영향력에 대한 실험은 계속됐다. 지난 10월에는 ‘폭력게임 내부에 광고를 노출시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내용의 실험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본지 보도 참고)
그런데 지난달 27일부터 5박6일 동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북미방사선의학회(RSNA) 연례대회’의 신경방사선학 세션에서 폭력적인 게임과 뇌 기능의 상관성을 최초로 밝힌 실험결과가 공개됐다.
제목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 일주일만 즐겨도 뇌 전두엽 활동 변한다(One Week of Violent Video Game Play Alters Prefrontal Activity)’로, 발표자는 양 왕(Yang Wang) 미국 인디애나 의대 교수다.
10시간 게임 즐기면 인지·감정기능 저하돼
왕 교수 연구진은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 남성 중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즐겨본 적이 별로 없는 28명을 대상으로 2주 동안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첫 번째 그룹은 1주 동안 가정에서 10시간 정도 총을 쏘고 사람을 살해하는 폭력게임을 즐기다가 이후 1주일은 금지시켰다. 두 번째 그룹은 2주 내내 폭력게임을 금지시켰다.
연구진은 실험 직전과 이후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참가자들의 뇌 사진을 찍었다. 촬영 중에는 인지 유연성과 주의력을 점검하는 스트룹(Stroop) 테스트를 실시했다. 화면에 등장하는 단어의 색깔에 따라 버튼을 누르되 비폭력적인 일반 단어 중간에 폭력적인 행동을 뜻하는 단어들을 삽입해 감정에 혼선을 일으키고 그 반응을 살폈다.
그러자 폭력게임을 즐긴 참가자들의 뇌 기능에서 일시적이지 않은 변화가 발견됐다. 감정조절 능력을 점검하는 스트룹 테스트 결과 좌측하부전두엽(inferior frontal lobe)의 활동이 저하됐다. 인지기능을 점검하는 스트룹 테스트에서도 전측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의 활동이 둔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을 즐기지 않은 대조군에 비하면 의미 있는 수치였다.
이후 게임을 일주일 정도 금지시키자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게임을 즐기는 중이 아닌데도 뇌 기능이 저하됐다는 것은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 영구적 변화가 생길 수도 있음을 뜻한다.
실험을 주도한 왕 교수는 “실험실이 아닌 가정 내에서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즐겼는데도 인지와 감정 담당부위의 활동이 저하됐다”며 폭력게임 자체가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뇌의 변화 양상이 과잉행동장애(DBD)와 유사하다”며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아동발달전문가인 트레이시 데니스(Tracy Dennis) 헌터대 교수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특정 행동을 일정기간 이상 반복한다면 뇌에 심각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며 “컴퓨터게임이나 비디오게임을 장시간 반복할수록 피해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감정과 인지를 담당하는 뇌 부위가 둔화된 것이 혹시 게임에 불필요한 부분의 에너지 사용을 일시적으로 줄여 효율을 높이려는 자연스런 반응은 아닌지도 추가로 연구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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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12-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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