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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영 객원기자
2004-09-08

땅의 과학, 서양 고지도 속 꼬레아 서울역사박물관, "유로피언의 상상, 꼬레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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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듯, 고지도를 보면서 ‘꼬레아’의 위상을 살필 수 있는 서양고지도전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일부터 12월26일까지 15세기~19세기 사이의 ‘유로피언의 상상, 꼬레아’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서양 고지도를 통해 “한국이 서양인에게 언제부터, 어떤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또한 ‘동해’나 ‘독도’는 어떤 이름으로 표기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1603년 이광정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 1552~1610)의 세계지도를 가져왔을 때, 조선 학자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이번 전시는 서정철(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와 김인환(이화여대 명예교수) 부부가 70년대부터 30여년 동안 수집한 것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해, 16~19세기 한반도의 모습이 잘 그려진 고지도와 서적류 150점 중 80점이 전시되고 있다.



서정철 교수는 “나는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동안 유학했고, 그 기간 동안 베르사이유 궁전을 몇 번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응접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 방안에 지구의(地球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지구의에 우리나라의 동해를 ‘Mer Orientale', 즉 동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중요한 생각이 들어, 몇몇 동양학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각자 다른 전공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지도에 관심 갖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며, 우연한 기회에 수집하기 시작했음을 강조했다.



지도는 지구공간을 일정한 비율로 축소하여 문자와 부호, 색채로써 평면에 재현한 도형으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조선사람들은 세계지도를 보며 어떤 세계를 꿈꾸었을까? 서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광대함에 놀라서 뒤로 넘어지지는 않았을까? 1603년 이광정이 중국에서 마테오 리치의 1602년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를 가져온 후, 조선 학자들은 커다란 충격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사색하기 시작했다.

‘곤여만국전도’는 타원형으로 그려진 세계의 서쪽에 거대한 구라파(유럽)을, 동쪽에 남북아묵리가(남북아메리카)를, 리미아(아프리카)와 묵와랍니가(메가라니카) 등의 5대주를 그렸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마테오 리치는 미지의 남방대륙(메가라니카)을 그렸는데, 그 곳에 이상한 동물들을 그려서 ‘환상의 땅’임을 암시했다. 조선학자들은 지금껏 상상한 세계보다 더욱더 넓은 세계를 생각해야 했고, 지도에 그려져 있는 세계는 그들이 알고 있던 세계보다 훨씬 다양했다.

조선학자들이 1603년에 아프리카와 서유럽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1402년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해 유럽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대주의에 빠져 있던 그들은 ‘중국도 아주 넓은 지역에 작은 지역’일 뿐이며,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은 유럽, ‘구라파’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1602년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를 ‘구라파국여지도’라고 표현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마테오 리치는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 지리학에 정통한 사람으로 써, 그의 학문적 배경을 발휘해 곤여만국지도에 850 곳이 넘는 지명과 각 지역의 민족과 그들의 특산물에 대한 지리적 기술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타원형의 세계지도 바깥쪽에 극투영의 방위도법에 의한 남북의 2반 구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구조론에 의한 구중천설, 일식과 월식의 그림, 천지의도 등을 그렸다.

그럼, 서양인의 고지도는 어떤 발전과정을 거쳤을까? 서양의 고지도는 다양한 시기 동안 점차 확대되어 가는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십자군 원정 이후, 중세사회가 몰락하고 근대사회가 되면서 동방과 교역하기 위해 항로 개척이 중요해 졌다. 이 때 항로 개척에 필요한 지도 제작이 필수적이었고, 지도는 많은 지리지식을 반영하면서 다양하게 발전했다.

그 후 해상왕국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필사본 지도 제작을 시작으로, 16-17세기에 네덜란드가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해 지도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18세기에 프랑스는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실지측량으로 더욱더 정확한 지도를 제작했다. 또한 탐험가들의 모험심을 기반으로 갈레온선, 캐러벨선 등 새로운 범선과 나침반, 항해지도 같은 항해술이 발전했다. 이를 기반으로 새롭게 형성된 지리적 세계관은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등 동양 여러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크게 ‘서양고지도 속의 한국’과 ‘역사적 진실’로 구성되었다. 서양고지도 속의 한국 부분은 “황금의 섬, Sila(제1기)”, “동방의 나라, Corea(제2기)”, “조선왕국, Coree(제3기)”, “우리조상들이 그린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황금의 섬, Sila(제1기)”는 중세부터 16세기까지 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8세기부터 우리나라를 찾았던 아랍상인들은 남해안의 섬을 해도에 황금의 섬, ‘Sila(신라)’라고 표기했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있는 나라로 살기가 좋으며, 금이 많이 생산되고 여섯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겼다.

유럽에 최초로 우리나라의 명칭은 13세기 빌렘 반루브루크의 저서 나오는 ‘카올레Caule’와 마르크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카올리kauoli’로 표기로 소개되었다. 16세기 초 ‘반 린쇼텐의 기행집’은 지도와 기록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커다란 섬나라 ‘꼬레 섬(Insula de Corea)’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위치나 형태가 정확하지 않아서 메르카토르, 오르텔리우스 지도에 아예 표기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서양 지도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571년 포르투갈인 두라도가 제작한 해도에 ‘콤라이(Comrai)’로 표기되었다. 이후 1595년 네덜란드의 반 랑그렌이 제작한 ‘아시아 지도’, 포르투갈인 테세라의 ‘일본전도’ 등에 ‘코레아(Corea)’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때의 코레아는 반도가 아닌 섬 모습으로 그려졌다.

“동방의 나라, Corea(제2기)”는 17세기 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 영국 등 북유럽국가들의 해상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들은 스페인, 포르투갈의 기존항로를 피하기 위해, 북극해를 경유해서 동아시아로 나아가는 북방항로 개척에 힘썼다.

그 중 마테오 리치와 페르비스트가 서양식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와 ‘곤여전도’를 제작해 동아시아의 세계관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마르티니의 지도첩은 ‘곤여만국전도’,‘곤여전도’와 함께 ‘꼬레아(Corea)’를 반도형태로 확정하고, 각 도별 명칭까지 자세히 전하고 있어서, 이후 한국을 그린 지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왕국, Coree(제3기)”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의 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열강들은 신대륙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식민지 쟁탈을 극심하게 전개했다. 18세기에 들어서 서양지도 제작의 주도권이 네덜란드, 포르투갈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코레아’ 대신 ‘코레(Coree)’가 등장했다.

1737년 프랑스 당빌은 최초의 ‘조선왕국전도’를 그렸다. 이 지도는 한국을 원래의 형태에 가깝게 그렸고, 지명도 아주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어, 한국에 대한 상세한 지리적 정보가 유럽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1749년 프랑스의 J. N 벨랭이 제작한 중국지도는 한국을 프랑스식인 ‘Coree’로 표기했고, ‘한국해 Mer de Coree’로 나와 있다. 중국지도는 남해에 제주도를 포함한 4개의 섬이 있고, 백두산, 두만강, 압록강 등도 표기되어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은둔과 미지의 나라가 아니었다.

마지막 역사적 진실 부분은 “우리의 바다, 동해”, “국호이야기” 등으로 전시되어 서양고지도 속의 우리 국토 형태와 동해 표기, 국호의 변천사를 설명하고 있다.

여러 지도에서 “우리의 바다, 동해”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샤틀렝이 그린 신아시아 지도에 한반도의 동쪽 바다를 ‘동해(Mer Orientale)’로 표기하고 있으며, 1780년 영국의 보웬이 그린 러시아 지도에 동해를 ‘한국만(COREA GULF)’으로 표기했다. 마지막으로 1786년 독일의 귀세펠트가 그린 지도는 한국의 국호를 ‘Corea’로, 황해를 ‘황해Hong hay’, 동해를 ‘소동양해 Kleine Orientalische Meer’로 표기했다.

특히 1832년 독일인 클라프로트가 제작한 ‘삼국총도’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지도는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의 ‘삼국접양지도’(1785년)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울릉도와 독도 옆에 ‘독도는 한국의 영역임’을 문자로 명기하고 있고, 독도를 한국 영토와 같은 황색으로 채색했다.

이번 특별전시회를 통해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 이래로 상상해 왔던 우리 민족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동해명칭문제나 독도 문제 등 객관적 자료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기간 : 2004년 9월 1일 - 2004년 12월 26일

전시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전시실

주 최 :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

관 람 료 : 어른 700원, 청소년 300원 그 외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9시 (3월-10월), 오전 9시∼오후 8시 (11월-2월), 월요일 휴관

문의전화 : 안내 02-724-0114 전시설명시간문의 02-724-0274∼6

사 이 트 : http://www.museum.seoul.kr/

공채영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4-09-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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