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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이성규 객원기자
2020-07-02

기후변화 악화시키는 집짓기 명수 ‘비버’ 비버가 짓는 댐이 영구동토층 해빙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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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봄,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남서쪽에 위치한 리드브룩이란 작은 마을에 성체 비버 2마리, 새끼 비버 2마리로 구성된 비버 가족을 방사했다. 영국 정부가 비버 방생 사업을 추진한 이유는 상습적인 홍수 피해 지역인 리드브룩의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하천이나 늪지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습성을 지닌 비버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크기의 댐과 수로를 건설한다. 비버가 건설한 댐은 폭우 때 물을 저장하고, 가뭄 때는 물을 지속적으로 흐르게 해 홍수로 인해 발생하는 극단적인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집짓기 명수로 알려진 비버가 북극 지형을 변화시켜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게티 이미지

그런데 이처럼 환경에 유익한 동물인 비버가 북극 지형을 변화시켜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독일 헬름홀츠 극지해양연구센터 알프레드베게너연구소(AWI)의 잉그마르 니체 박사팀은 알래스카 북서부에 살고 있는 비버들이 단 5년 만에 56개의 새로운 댐을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2018년에 발표했다.

이후 잉그마르 니체(Ingmar Nitze) 박사팀은 미국 알래스카대학, 미네소타대학 등의 공동 연구팀과 함께 알래스카 북서부에 있는 코체부 지역을 촬영한 고해상도 인공위성 사진들을 분석해 비버의 활동 규모를 파악하는 새로운 연구에 돌입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비버 댐

그 결과 2002년에는 약 100㎢에 달하는 이 지역에서 비버가 건설한 댐이 불과 2개밖에 없었지만, 2019년에는 그 수가 98개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매년 5개 이상의 댐이 건설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알래스카 볼드윈 반도의 전체 430㎢에 달하는 지역에서는 2013년에 174개에 불과했던 비버 댐이 2019년에는 409개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주도한 잉그마르 니체 박사는 “우리는 그 지역에서 비버 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구조물의 수는 대략 4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환경 분야의 국제 저명 학술지인 ‘환경연구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최신호에 발표됐다.

비버가 만든 댐은 호수를 형성해 알래스카 같은 영구동토층의 해빙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 Daina Krumins(Pixabay)

갈색 털의 설치류인 비버는 날카로운 이빨로 나무들을 넘어뜨려 댐을 건설한다. 이 댐은 작은 계곡의 물을 가득 차게 해 인공위성에서도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호수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호수는 알래스카 같은 영구동토층의 해빙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호수는 겨울의 찬 공기가 땅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며, 또한 물은 열을 많이 저장하므로 지표수가 많을수록 영구동토층은 잘 녹게 마련이다.

영구동토층은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의 거대한 천연 저장고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구동토층이 해빙되면 저장되어 있던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돼 기후변화를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과학계에서는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기후를 바꾸는 메탄과 탄소가 대기 중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비버가 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 예측하려면 비버 이해해야

연구진은 비버가 만든 새로운 호수는 얼음이 풍부한 영구동토층을 해빙시켜 공학적 수역의 깊이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유발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연구진의 분석에 의하면 지난 17년 동안 코체부 지역의 전체 수역은 8.3% 증가했는데, 그 같은 성장의 약 2/3는 비버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 도대체 비버는 왜 영구동토층에까지 진출해 개체수를 늘리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연구진은 북극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더 많은 음식과 건축 재료에 필요한 관목이 비버에게 제공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기후변화로 인해 비버의 개체수가 늘게 됐고, 그에 따라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툰드라 지역은 비버의 기존 서식지가 아니므로 포식자도 없으며 자원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또한 비버는 현재 미국 연방법에 의해 잘 보호되고 있으므로 과거처럼 인간에 의해 사냥되는 개체수도 거의 없다.

연구진은 알래스카 외에 시베리아나 캐나다 등 북극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잉그마르 니체 박사는 “앞으로 더 큰 규모로 연구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영구동토층의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반드시 비버라는 동물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0-07-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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