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자립의 상징, 30년간의 우주개발사
"방금, 지구의 맞은편에서 저녁 하늘 한가운데로 힘차게 솟아오른 우리 '과학위성'의 찬연한 불꽃은 겨레의 반만년 역사에 '우주시대'가 새로이 열렸음을 알리는 서광이었습니다."
1992년 8월 11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국민에게 전한 이 메시지는 한국 과학기술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선언으로 여겨진다. 바로 광복 47년 만에 우리나라가 세계 22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아리안 4호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향한 작은 위성 하나가 대한민국 우주시대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무게 48.6kg에 불과한 이 작은 위성의 이름은 '우리별 1호(영어명: KITSAT-1)'였다. 처음에는 '키트새트-A호' 또는 '과기대 1호' 등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이니만큼 우리말을 살리자는 여론에 따라 '우리별 1호'로 명명되었다.

광복 47년이 지나서야 이룬 이 성취는 단순히 한국의 첫 번째 인공위성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기나긴 일제강점기와 어떤 전쟁보다 참혹했던 6.25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과학기술 자립을 향해 달려온 대한민국의 의지와 꿈을 우주에 새긴 역사적 순간이었다.
우주과학의 불모지에서 시작된 도전
광복 이후 한국의 과학기술은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영국, 미국 등 서양의 강대국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할 동안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체계적인 과학기술 기반이 구축되지 못했고, 이를 극복하자마자 또다시 최악의 피해를 얻은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960년대부터 눈부신 경제개발과 함께 과학기술 인프라가 빠르게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우주과학 분야만큼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였다.
우주과학 분야의 발전을 살펴보자면, 1987년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우주개발의 법적 기반이 처음 마련되었다. 이어 1989년 8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설립되면서 한국의 우주개발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우주기술은 극도로 기밀에 부쳐진 분야였고, 선진국들은 자국의 기술을 쉽게 공개하지 않았는데, 따라서 한국이 위성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기술을 배워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KAIST는 영국 서리대학(University of Surrey)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위성개발 기술을 습득하기로 결정했다. 1989년부터 3년간 KAIST 학생 5명이 1기 유학생으로 영국으로 떠났고, 이후 2기 유학생 4명이 더 합류하여 총 9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영국 서리대학의 위성개발팀과 함께 우리별 1호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들에게는 "실패하면 도버해협(영국 도버와 프랑스 칼레를 잇는 대서양에 위치한 영국 해협의 일부)에 빠져라"라는 영광스럽지만 매우 무거운 사명감이 주어졌다. 이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을 정도로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의미였지만, 성공에 대한 강한 의지와 절박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은 마침내 해냈다.
고도 1,300km에서 시작된 우주시대
1992년 8월 11일 밤 10시(한국시간), 우리별 1호는 아리안 4호 발사체에 실려 성공적으로 우주로 발사되었다. 가로 35.2cm, 세로 35.6cm, 높이 67cm의 육면체 모양인 이 위성은 고도 1,300km의 궤도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110분이 걸렸다. 원래 5년으로 계획되었던 임무 기간을 훨씬 넘어 총 12년간 지구와 교신을 이어갔고, 2004년에야 비로소 그 긴 여행을 마감했다.
우리별 1호의 주요 임무는 지구 표면 촬영, 음성자료와 화상정보 교신 등의 실험이었다. 비록 48.6kg에 불과한 작은 위성이었고, 해외 대학과의 공동 개발이었지만, 이 위성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었다. 한국이 우주과학기술 불모지에서 벗어나 우주 개발의 첫 발을 내딛는 상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별 1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국적 위성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위성개발 능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별 1호에 참여했던 연구진들은 귀국 후 KAIST 인공위성센터에서 국내 인공위성 기술 전파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별에서 누리호까지, 자립의 여정
더 자랑스러운 점은 우리별 1호의 성공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1993년에는 순수한 우리 기술로 설계 제작한 '우리별 2호'가 발사되었고, 1999년에는 무게 100kg짜리 '우리별 3호'가 발사되었다. 우리별 3호는 우리별 1호와 2호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설계로 개발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인공위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후 한국의 위성개발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1999년 아리랑 1호를 시작으로 한 다목적실용위성 시리즈는 한반도 관측과 해양 관측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2010년에는 정지궤도 복합위성인 천리안 위성이 발사되어 기상관측과 해양관측,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정한 우주 자립을 위해서는 위성뿐만 아니라 발사체 기술도 확보해야 했다. 우리별 1호부터 아리랑 위성까지 모두 해외 발사체에 의존해야 했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1993년 과학관측로켓 1호(KSR-1) 발사를 시작으로, 1997년 KSR-2, 2002년 KSR-3 등 단계적인 발사체 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2013년에는 나로호가 발사되어 한국 최초로 자국 영토에서 위성을 우주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성공을 두고 "나로호 발사 성공은 대한민국 항공우주 과학기술자들의 땀과 눈물,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의 결과"라고 격려한 바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로호는 1단 엔진을 러시아에서 도입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독자 기술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완전한 우주 자립을 위해서는 모든 기술을 국내에서 개발한 발사체가 필요했다.
2022년, 대한민국 우주 자립의 완성
드디어 2022년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2차 발사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 설계, 제작, 시험 등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의 성공은 우리별 1호 발사 30년 만에 이룬 진정한 우주 자립의 순간이었다. 총 길이 47.2m, 중량 200t 규모의 누리호는 1.5t급 실용위성을 고도 600~800km 지구 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누리호 개발에는 2010년부터 12년 3개월 동안 약 1조 9,572억 원의 예산과 250여 명의 연구개발 인력이 투입되었다. 300여 개의 기업이 참여하여 독자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의 개발과 제작을 담당했다. 특히 75톤급 액체엔진과 7톤급 액체엔진은 세계 7번째 수준의 중대형 액체로켓엔진 기술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1톤 이상의 실용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이는 우리별 1호 발사로부터 30년 만에 이룬 완전한 우주 자립의 성과였다.
2022년 8월에는 한국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달 탐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누리는 2022년 12월 달 궤도 진입 후 1년 동안 고해상도 카메라, 광시야편광카메라, 감마선분광기, 자기장측정기 등을 통한 달 탐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바 있다.
그리고 2023년 5월 25일에는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이번 발사는 본격적으로 실용급 위성을 탑재하여 발사하는 발사체 본연의 역할을 최초로 수행한 의미 있는 임무였다. 특히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초로 발사에 참여하여 제작 총 관리와 발사 공동운용 역할을 수행했다. 누리호 3차 발사에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큐브위성 6기가 탑재되어 모두 성공적으로 궤도에 안착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하자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 G7(주요 7개국)에 들어갔음을 선언하는 쾌거"라고 축하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의 우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주항공청 출범, 진정한 우주강국을 향한 새로운 출발
2024년 5월 27일, 한국 우주개발사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이정표가 세워졌다. 바로 우주항공청(KASA: Korea AeroSpace Administration)의 출범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외청으로 설립된 우주항공청은 우주항공기술의 확보, 우주항공산업의 진흥 및 우주위험 대비에 관한 사무를 전담하는 국가기관이다.

우주항공청 설립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통령이 직접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우주항공청 설립추진단을 설치하여 출범 준비에 착수했다. 이는 우주정책 범위가 우주탐사, 산업, 안보, 국제협력까지 확대됨에 따라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전담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우주항공청은 미국 NASA를 모델로 하여 우주항공 전담조직으로서 대표성과 리더십을 확보하고, 임무 달성을 위한 전문적이고 유연한 조직과 네트워크형 운영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설립 방향으로 삼았다. 경상남도 사천시에 위치한 아론비행선박산업 건물을 리모델링한 임시청사에서 출범하여, 300여 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으며 2024년 예산은 8,000억 원 수준이다.
우주항공청 출범과 함께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이 우주항공청의 산하 법인으로 편입되어, 우주개발 관련 기관들의 유기적 협력체계가 구축되었다. 이를 통해 우주항공 관련 정책의 수립과 조정, 우주항공 분야 연구개발 및 핵심기술 확보, 우주자원의 개발 및 활용, 우주항공산업의 육성 및 진흥, 우주항공 관련 민군협력 및 국제협력, 우주항공 분야 인재 육성과 저변 확대 등의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우주항공청의 장기 목표는 매우 야심차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를 이끌 혁신 우주항공 기업을 2,000개 이상 육성하고 약 50만 개에 달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또한 우주항공 산업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여 세계 시장 10% 점유(420조 원 규모)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2045년 세계 5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우주 미션들은 체계적이고 야심 찬 로드맵을 보여준다. 먼저 누리호는 2025년 하반기 4차 발사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총 3회 추가 발사가 예정되어 있다. 2024년 10월 11일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누리호 4차 발사를 위한 비행모델 4호기의 단 조립 착수 검토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체계종합기업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첫 번째 발사 준비 과정으로, 민간 기업 주도의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참고로 누리호 4차 발사는 2025년 하반기로 계획되어 있으며,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주탑재 위성으로 하고 다양한 큐브위성들을 부탑재 위성으로 탑재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발사서비스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산학연의 우주기술 개발과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달 탐사 분야에서는 현재 성공적으로 운용 중인 다누리에 이어 2031년 후속 달 궤도선, 2032년 달 착륙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화성 탐사는 2035년 화성 궤도선을 시작으로 광복 100주년인 2045년 화성 착륙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주항공청의 브랜드 사업으로 지정된 L4 태양권 관측소 미션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태양-지구 라그랑주 포인트 L4는 태양에서 나오는 우주방사선을 가장 먼저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로, 달과 화성 등 심우주 유인 탐사를 위한 우주기상 예보에 필수적이다. 2030년 우주과학 탐사선 개발을 시작으로 2035년 L4 탐사선 발사가 계획되어 있다.
소행성 탐사 분야에서는 2040년까지 소행성 탐사선을 자체 개발하여 행성계 환경탐사 기술을 확보할 예정이다. 발사체 기술 고도화 측면에서는 2025년을 재사용발사체 개발 원년으로 선포하고 관련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구축을 위해서는 2027년 위성 1호기를 발사하고 2035년까지 총 8기 위성을 배치할 예정이다.
발사체 기술 고도화 측면에서는 2025년을 재사용발사체 개발 원년으로 선포하고 관련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구축을 위해서는 2027년 위성 1호기를 발사하고 2035년까지 총 8기 위성을 배치할 예정이다. 특별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2026년 우리별 1호 귀환 프로젝트도 계획되어 있어, 30여 년 전 우주로 떠난 한국 첫 위성을 지구로 데려오는 역사적 시도가 추진된다. 성공할 경우 우주 쓰레기 처리 기술까지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초고해상도 위성, 초저궤도 위성, 저궤도 우주공장 프로젝트, 한국형 우주망원경 개발 등 다양한 미션들이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우주기술은 여전히 갈길이 멀지만 세계적 수준에 빠르게 도달하고 있다. 48.6kg의 작은 위성으로 시작된 한국의 우주개발은 누리호 3차 발사 성공과 4차 발사 준비, 그리고 우주항공청 체제를 거쳐 이제 달 탐사와 화성 탐사까지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과학기술 자립의 여정 중 가장 빛나는 성취로 해석된다. 이는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한국인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정신의 결과이다. 2045년 세계 5대 우주강국이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대한민국의 우주여행은 계속된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8-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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