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SF소설 ‘코리아 디스카운트’ 있다

소설가 장강명과의 인터뷰

공대. 건설회사. 동아일보. SF소설.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은 단어의 나열일 수도 있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싶을 수도 있겠다. 이 네 개의 단어는 다섯 개나 되는 공모전에서 입상하고 《호모 도미난스》, 《한국이 싫어서》,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 다수의 책을 끊임없이 펴내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장강명의 이력이다.

소설가 장강명은 자신의 특이한 경력을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공대를 다닌 것도, 기자로 일한 것도 지금의 자신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이런 경험이 ‘장강명만의 글’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자신이 공대를 나왔다고, 또는 과학교양서적을 좋아한다고 해서 “과학에 대해 아는 척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20년 후에도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소설가 장강명과 SF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기사는 이메일 사전 인터뷰와 지난 21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SF작가와의 만남’에서 관객들과 나눈 이야기를 편집하여 엮은 것임을 미리 밝힌다.)

'SF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한 장강명 작가

‘SF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한 장강명 작가 ⓒ 김의제 / ScienceTimes

대학생 SF 웹진을 만드셨다는 얘길 봤습니다. 어떻게 웹진 만드실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월간 SF 웹진’을 운영한 게 1999년에서 2001년이었습니다. 막 PC통신 시대가 끝나고 월드와이드웹 시대가 열리던 때로 가정에서 접속할 수 있는 초고속통신망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주 이용자들이 신기술을 좋아하는 젊은 회사원과 대학생들로 PC통신 동호회들은 지적 수준이 비교적 높고 대화와 토론도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PC통신 동호회에 흩어져서 활동하는 SF 필자들을 웹에 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월간 SF 웹진’을 창간했습니다. 저만 해도 근처에 SF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PC통신으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관심사를 이야기하게 되니 신세계가 따로 없었습니다.

스포츠신문에 조그맣게 소개되기도 했고, 야후와 엠파스에서 좋은 사이트로 선정했던 기억도 납니다. 사이언스타임즈에 고장원 SF 평론가가 연재하셨던 한국 SF 역사에도 저의 웹진이 짧게 언급되어 있습니다.(고장원, “과학소설 대중화를 위한 계몽작업”)

얼마 전 SF 전문 1인 출판사인 불새출판사가 문을 닫았을 때(나중에 다시 열었습니다만) 저의 월간 SF 웹진 폐간사를 전문 인용하셨더군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불새출판사는 2014 7 문을 닫았으나 2015 다시 열었다. 당시 문을 닫으면서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불새는 이제 걸작선의 표지처럼 검은 재만 남기고 고향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SF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은 공상적인 측면보다 과학적 사실이 얼마나 정확한가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저는 SF는 ‘배경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구성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중 배경,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세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데 작가의 공력이 주로 들어가고, 독자들도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은 장르라고요.  ‘서경(敍景)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배경 세계를 서술하는 데 무게를 둔다’는 태도가 곧 ‘과학적 고증을 중시한다’는 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더라도 내적 일관성을 갖춘 가상의 세계를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습니다.

버너 빈지라는 미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가 쓴《심연 위의 불길》이라는 SF소설은 우리가 아는 과학 법칙을 아주 간단히 무시해버립니다. 자기가 만든 법칙에 따라 소설 속 우주에서 살아가는 외계인들과 그들의 기술을 묘사합니다. 작품 속 과학을 책 밖에서 믿으면 큰일 나겠지만, 저는 이 소설이 아주 좋은 SF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SF 팬 중에 과학적 고증을 따지며 그 우열을 논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이 분들이 SF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런 분들은 SF뿐 아니라 과학의 본질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SF소설은 언제부터 좋아하셨나요? 좋아하는 SF물이 있으시면 추천해주세요.

SF는 한글을 읽고 쓰기 전부터 좋아했습니다. TV에서 해주던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에 미쳐 있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부터 시작해서 조금 철이 들고는 건담 시리즈에까지 푹 빠졌습니다. 한때는 각각의 SF 동호회에 모두 가입하기 위해 4대 통신망에 전부 가입하기도 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SF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입니다. 초기 3부작이라 불리는 첫 세 권은 지금도 최고의 SF라고 생각합니다.

고백하자면, 제 소설에 나오는 테마 중 《파운데이션》에 빚진 것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사람(《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호모도미난스》)이고, 또 하나는 미래를 보는 사람(《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뤼미에르 피플》의 몇몇 단편)입니다. SF 팬이라는 사실이 SF가 아닌 소설을 쓰는 데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사례라 할 수 있겠네요!

한국 SF소설중에는 듀나의 《아직은 신이 아니야》가 재밌었습니다.

작가로서, 한국에서 SF소설의 입지는 어떻다고 느끼세요?

《호모도미난스》와 《열광금지, 에바로드》의 출간예정일이 겹쳤었어요. 저는 지금도 《호모도미난스가》가 훨씬 더 재밌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이게 더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판매량과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엄청났고 《호모도미난스》는 거의 팔리지도 않더라구요. 그 때 알았죠. 아, SF 안 보는구나.

한국 작가가 쓴 SF소설은 일종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는 것 같아요. 미국 작가가 쓴 공상과학소설은 능력자 히어로가 나와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 바로 떠오르고, 일본 작가의 작품은 주위 사람 몇이 호평을 하면 가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 작품은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작품은 인기 있는 미국의 SF소설이 가진 정통성도 없고 아직 그 완성도가 더 높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SF소설이 ‘동네 SF’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굳이 미래나 우주가 배경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정말 동네에서 일어나는 SF를 말합니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어 개성을 살릴 수도 있지만 그게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F라는 장르의 정통을 지키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만의 정서가 담긴 ‘동네 SF’가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도 재미있다는 평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SF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한 장강명 작가

‘SF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한 장강명 작가 ⓒ 박솔 / ScienceTimes

SF작가라고 해도 장강명 작가의 인기 작품 중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작품도 많다.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한 소설을 많이 쓰고 싶다”며 스스로를 “인물의 내면보다 세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소설가 장강명. 그는 자신의 이런 태도가 SF를 좋아하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한다. 개인의 내면, 감성에 호소하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르. 소설가 장강명이 왜 SF를 ‘서경적인 장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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