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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박미용 기자
2008-10-08

HIV 발견 둘러싼 논란 종식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 에이즈 · 자궁경부암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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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노벨상 올 노벨 생리의학상은 에이즈와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두 가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발견한 유럽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를 발견한 프랑스 연구자인 파스퇴르 연구소의 프랑스아 바레-시누아(61) 박사와 세계에이즈연구예방재단의 뤽 몽타니에(76) 박사, 그리고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 Virus)를 발견한 독일 하이델베르크 암연구센터의 하랄트 하우센(72) 박사 등 3명이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 영예의 주인공이다.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

1981년에 발견된 에이즈로 지금까지 2천5백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를 앓고 있는 사람은 3천3백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0.6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런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1983년 바레-시누아 박사와 몽타니에 박사가 발견했다.

1981년 미국에서 최초로 동성연애자에게서 특이한 면역결핍 현상이 보고됐다. 당시는 동성연애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이 질환은 ‘게이 관련 면역결핍’(GRID)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1982년 수혈을 받은 환자와 이성애자에게도 같은 병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후 동성연애자에 대한 오해가 풀러 이 병은 에이즈, 즉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에이즈가 발견되면서 점차 희생자가 늘어났다. 당시 세계적으로 에이즈를 일으키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1982년 파스퇴르 연구소도 그런 곳이었다. 파스퇴르 연구소는 에이즈의 발병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팀을 구성했다. 여기에 바로 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레-시누아 박사와 몽타니에(76) 박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연구팀은 초기 에이즈 증상을 앓고 있는 동성연애자의 부어오른 임파선 조직에서 HIV를 발견했다. 이들이 발견한 HIV는 바이러스 분류상 레트로바이러스에 속했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유전 정보를 부호화하는데 DNA 대신 RNA를 쓰는 바이러스이다.

그런데 이들이 발견한 에이즈 유발 바이러스는 기존의 레트로바이러스와는 다른 특성을 보였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HIV는 발병까지 10년 정도의 오랜 세월이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바이러스였다. 이런 특성으로 HIV는 레트로 바이러스의 분류에서 렌티바이러스에 속한다. 렌티는 느리다는 의미인데, HIV는 렌티바이러스로는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이후 레트로바이러스는 암을 유발하는 온코바이러스와 HIV가 속하는 렌티바이러스로 분류되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난 후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팀은 바이러스 발견을 통해 혈액검사 시약을 개발했고 에이즈 환자를 찾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에이즈 환자들이 오늘날 병을 완치할 순 없어도 별 탈 없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해주는 약물의 개발로도 이어졌다. 그래서 이들의 연구 덕분에 에이즈의 예방과 치료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노벨상 위원들은 이들을 평가했다.

프랑스와 미국 간 싸움에서 프랑스 승

HIV 발견 뒷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서 미국의 한 과학자가 왜 제외되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HIV의 발견에는 올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 미 메린랜드 대학의 로버트 갤러 박사도 거론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1980년대에 올 노벨상 수상자팀과 갤러 박사 사이에 몇 년 동안 HIV 발견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로버트 갤러 박사는 1979년 레트로바이러스를 발견했는데, 이는 암과 관련해 발견된 최초의 바이러스였다. 그래서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한 프랑스 연구팀인 몽타니에 박사는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미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하기 위해 갤러 박사의 추천을 받고자 논문 전문을 보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요약문을 갤러 박사가 쓰면서 공동발견자인 양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1884년 갤러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에이즈 바이러스와 관련한 4개의 논문을 게재했다. 프랑스팀이 분리해낸 에이즈 바이러스는 당시 LAV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갤러 박사가 발견했다는 에이즈 바이러스는 HTLV라고 불렸다.

그런데 이 두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이 너무 비슷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똑같은 바이러스를 발견한다는 게 이해되기 힘들었다. 이때부터 에이즈 바이러스를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를 두고 프랑스와 미국 간에 소송까지 걸며 대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들 간의 싸움은 1987년 3월 정치적으로 끝이 났다. 백악관을 방문한 프랑스 시라크 총리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양보한 것이었다. 두 나라 정상은 몽타니에와 갤러를 에이즈 바이러스의 동시 발견자로 한다면서 프랑스 측은 소송을 취하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때 에이즈 바이러스는 LAV도 HTLV가 아니라 HIV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끝나긴 했지만 1994년 미국 정부는 프랑스가 더 공로가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어찌되었건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 후 미 AP통신사가 갤러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갤러 박사는 자신이 이번 수상에 빠진 것에 대해 ‘실망’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올 노벨상 수상위원회는 발표 자료에서 갤러 박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노벨상 위원인 마리아 마수키에 따르면 프랑스 연구팀이 HIV를 발견했으며 그 특성을 밝혀냈다는데 과학계에서 어떤 논란도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HIV의 발견공로는 온전히 프랑스로 넘어간 셈이다.

노벨상 재단은 “이제까지 과학과 의학이 새로운 질병의 원인과 기원을 발견하고 치료법을 찾는데 이토록 빨리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면서 “성공적인 치료법 덕분에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의 수명이 감염되지 않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이들의 공로를 평가했다.

자궁경부암 유발 바이러스 발견에서 백신 개발까지

이제 또 다른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자궁경부암은 흔히 자궁암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궁암의 90-95퍼센트를 차지한다. 자궁경부암은 질과 맞닿은 자구 아래쪽 부분에 생기는 종양이다.

자궁경부암은 유방암에 이어 세계 여성들이 두 번째로 많이 걸리는 암이다. 매년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4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며 10만 명 가운데 4.5명이 이 병으로 사망한다.

이처럼 무서운 자궁경부암은 오늘날 HPV가 주요한 원인으로 밝혀져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덕분에 말이다.

HPV는 성인의 절반 이상이 갖고 있는 바이러스로, 가짓수가 100가지가 넘는다. 대부분은 피해가 없지만 그 중 15종이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자궁경부암 환자의 99.7퍼센트에서 HPV가 발견된다. 전체 암의 5퍼센트 가량이 HPV로 인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하우센 박사는 HPV가 자궁경부암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당시의 시각과는 다른 가정을 내놓았다. 하우센 박사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10년 이상 여러 종류의 HPV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 결과, HIV 바이러스가 발견된 해인 1983년 하우센 박사는 HPV 16을 발견했다. 그 이듬해에는 자궁경부암 환자에서 HPV 18을 발견했다.

HPV 16과 18은 자궁경부암의 발병요인의 7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하우센 박사가 발견한 이 두 가지 HPV에 대해서는 현재 백신이 개발되었다. 2006년 미국 제약회사인 머크사가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을 개발해 판매를 시작했다. 가다실은 HPV 16과 18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데, 세계 최초의 암 백신이기도 하다. 하우센 박사는 가다실의 개발에도 기여하기도 했다.

그동안 바이러스 관련 노벨상 10여 차례 수여

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발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미있는 건 에이즈와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두 바이러스가 성접촉을 통해 감염된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노벨상 위원회는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인류 역사 이래 끊임없이 괴롭혀온 성 관련 질환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에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바이러스와 관련해 노벨상이 수여된 적은 10여 차례가 있었다. 웬델 스탠리라는 미국의 생화학자가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를 결정으로 분리한 공로로 194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1954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백신 개발로 이어진 공로로 3명의 과학자에게 수여되었다. 이후에도 1965년, 1966년, 1969년 1975년 1989년에 바이러스와 관련한 연구에 노벨 생리의학상이 돌아갔다.

노벨상과 바이러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과정에 필자는 Archives of Virology 저널 올 6월호에서 글 하나를 발견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왕립 과학원 소속의 한 과학사학자가 노벨상과 바이러스에 관한 글(Nobel Prizes and the emerging virus concept, Archives of Virology, vol 153, p1109-1123)을 게재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 글은 올 노벨 생리의학상이 바이러스 분야에 돌아갈 것임을 암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미용 기자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8-10-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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