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연구는 계속 되고 있다. 인체 내에서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암 세포를 '선택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인류는 암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항암제가 '비선택적'으로 작용하기에 효과적인 암 치료는 늘 연구의 대상이었다.
암 치료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DNA는 유전정보의 저장물질과 약물로 주목 받아왔다. 높은 생체적합성, 주변 환경에 대한 안정성 및 네 개의 단순한 염기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예측 가능하고 프로그래밍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 뛰어난 생체재료의 하나로 그 가치가 재조명 되고 있는 상태다.
암세포 만났을 때만 약물을 전달하다
DNA를 이용해 개발된 'DNA 구조체'는 상보적인 핵산끼리 서열 특이적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자기조립(self-assembly) 된다. 자기조립된 나노단위 구조체인 'DNA 구조체'는 염기 서열을 조절함으로써 pH와 온도, 빛 등 주변 환경 변화에 의해 구조변환을 유도함으로써 역동적인 움직임을 유발한다.
하지만 기존에도 DNA가 접합된 나노입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된 바 있지만 혈관을 따라 주입했을 때 비특이적인 축적이 많아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따라 암세포만 표적으로 삼아 약물체를 전달하는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국내 연구진이 암세포를 만났을 때만 약물 및 유전자를 전달하고 치료 효과도 높일 수 있는 원리를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원종 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박사팀이 세포 내 수소이온 농도지수(pH)를 감응해 지능적으로 치료제와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나노입자 DNA 구조체를 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암세포에 항암제를 전달하고 약재 내성을 억제시켜 항암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저희 팀은 작은 나노입자 표면에 DNA를 고밀도로 붙이고 이후 DNA간 염기에 따른 특이적이고도 강한 결합을 바탕으로 DNA 나노구조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때 서로 결합하는 DNA사이에 항암제를 주입했어요. DNA 서열 구조가 세포 내 환경에 의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해 세포 내에서만 감응하는 약물방출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특히 작은 나노입자를 DNA에 결합한 만큼 특정 크기로 쉽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크기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만큼 암세포 조직 근처로만 나노입자를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암치료에도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언급한 대로 연구진은 금 나노입자에 pH 감응형 DNA(i-motif DNA)와 상보적 결합을 하는 DNA, 치료 유전자인 안티센스 DNA(antisense DNA)를 붙여 조건에 따라 거동을 조절하는 지능적인 DNA 나노머신을 개발했다.
pH 감응형 DNA는 낮은 pH 조건에서 모양을 변형해 분리되는 성질을 갖는다. 김원종 박사팀은 이 점에 착안해 pH 감응형 DNA에 상보적 서열이 접합된 나노입자의 군집을 만들고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핵산(antisense DNA)을 금 나노입자 표면에 붙였다.
"금 나노입자는 세포 밖의 중성 pH에서는 DNA의 상보적 결합에 의해 나노입자 군집을 만듭니다. 그러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세포 내 엔도솜(endosome)의 낮은 pH에 감응해 서로 흩어지면서 내부에 담은 약물을 전달하죠. 또한 금 나노입자가 서로 흩어지면서 여기에 접합된 안티센스 DNA가 작용을 합니다.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거죠."
상용화 가능성 높인 DNA 나노구조체 개발
김원종 교수팀의 해당 연구는 그동안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문제가 됐던 기존 방식과 달리 특정 크기로 조절 가능한 나노입자의 군집을 만들어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축적된다. 암세포 내부에서 특정 자극에 의해서만 흩어지고 약물과 유전자를 방출하기 때문에 치료의 효율은 높이고 부작용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을 안고 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화학회가 발간하는 나노분야 저널 '에이씨에스 나노(ACS Nano)' 지 온라인 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선택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연구. 사실 이전에도 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여러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왔다. 하지만 기존 연구는 암세포와 상호작용하는 특정 리간드를 이용해 시험관 수준에서 일반세포보다 암세포로 더 많은 유입이 된다는 것을 밝히는데 주로 그쳤다.
"반면 저희 팀은 조금 더 큰 관점으로 살펴봤습니다. 실제 혈류를 통해 이 물질이 유입됐을 때 암세포 주변의 느슨한 혈관벽을 뚫고 암세포 주변에 높은 효율로 축적되는 것을 밝혔다는 점이 기존 연구와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기존에는 작은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세포 근처로 약물체 전달을 시도하면 암세포 뿐 아니라 여러 일반 세포의 혈관벽도 뚫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때문에 높은 부작용을 유발했죠. 본 연구는 DNA 기반의 나노입자 구조체를 이용해 약물이 암세포 특이적으로 유입 될 뿐 아니라 다른 세포로의 유입이 훨씬 적다는 것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원종 박사팀이 이번 연구를 성공할 수 있던 것은 금나노입자에 치료유전자인 안티센스 DNA를 붙여야겠다는 발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원종 박사는 "그간 임상으로도 꾸준히 항암제는 이용돼 왔지만 결과적으로 항상 문제가 된 것은 높은 부작용과 특정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라며 "그래서 우리팀은 단순히 약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약물에 대한 내성을 해결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한 발상에서 안티센스 DNA를 붙여보게 된 거예요. 그럴 경우 약물에 대한 내성효과를 극명하게 줄일 수 있어 치료효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죠. 물론 약물의 효과를 보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요. 특히 암세포는 매우 지능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자기사멸을 낮추는 시기를 기다립니다. 그 '시기'란 일반적인 세포가 죽는 때죠. 이 시기에 암 세포는 스스로 죽는(세포자살) 경로를 차단하는 단백질을 생성해 냅니다. 바로 이 때 안티센스 DNA로 해당 단백질의 생성을 막는다면 더 높은 효율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 거죠."
개발한 연구는 성능 면에서도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세포수준에서만 실험을 했을 때 기존 항암제만을 이용하는 것 보다 약 네 배 정도 높은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동물모델에서도 기존 항암제보다 좋은 효과를 보였는데 기대했던 바와 같이 더 오랜 기간 동안 암의 성장을 억제했다. 실제 동물모델에서 나노입자의 축적을 비교했을 때도 DNA기반의 나노구조체를 사용한 것이 단순한 나노입자 만을 이용한 것 보다 2.5배 이상 높은 암세포 특이적 축적을 나타냈다. 반면 정상세포 축적은 더 낮았다.
"저희 팀은 그동안 금나노입자에 특정 자극을 주면 구조가 바뀌는 DNA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이용해 간섭유전자(siRNA) 전달 및 광열효과를 개발, 항암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죠. 이와 같은 기존의 연구도 흥미로웠지만 이를 실제 항암모델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나의 DNA 나노입자가 아닌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DNA 나노구조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약물을 넣어 세포 내에서 높은 효율로 약물을 방출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거죠."
김원종 박사팀의 연구는 지난 2013년 초부터 시작해 약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 진행한 결과다. 김원종 그룹리더는 "모든 연구가 어려움에 맞닥뜨리지만 이번 연구는 특히 DNA 결합으로 나노구조체를 만드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며 연구 과정을 회고했다.
"나노구조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DNA 염기서열 간 상호작용을 위한 적절한 온도와 최적의 용액(buffer)이 필요합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수십 가지 용액과 온도를 최적화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해요. 이 과정에만 반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어요. 또한 수소이온 농도에 감응해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열역학적으로 적당히 안정하면서 자극에는 쉽게 감응하는 염기서열 결합이 필요한데 이를 디자인하기 위해 서열을 여러 가지로 바꾸며 잘 움직이는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부분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진행된 연구인만큼 앞으로의 활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연구는 금 나노입자를 기반으로 시작됐지만, 과정 가운데 사용된 나노구조체 군집은 금 나노입자 뿐 아니라 다른 기능을 갖는 무기나노입자에 똑같이 활용될 수 있다. 김원종 박사는 "입자 크기에 따른 암세포 특이적 유입과 비특이적 유입 억제 측면에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했으므로 다른 나노의학 및 나노약물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본 시스템 하나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닙니다. 여러 무기나노입자와 DNA 기반 연구에 이용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어요. 물론 해당 연구결과가 상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합성 단가라 등의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다만 본 연구를 토대로 실제 항암치료에서도 쉽게 적용될 수 있는 기반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면 차세대 항암치료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도 여러 기반이 되는 연구와 새로운 플랫폼 혹은 패러다임을 제기하기 위해 기초과학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를 진행하겠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 차세대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내고 싶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0-0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