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는 토끼가 드러낸 네다리 동물의 비밀

물구나무서는 토끼의 비밀

소퇴르 달포르 토끼. 물구나무선 채로 걷는 모습(왼쪽), 눈의 병변(오른쪽)©PlosGenetics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네 발로 걷는다. 인간의 직립 보행과 마찬가지로 네 발로 걷는 것은 감각 자극에 대한 정보와 운동 신경에 대한 통제가 정교하게 융합되어야 가능하다. 이것은 사지를 움직이는 근육을 조였다 풀었다 하고,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을 이루게 하며 움직임에 리듬을 만든다. 이것은 척추에 있는 ‘중앙 패턴 생성기(central pattern generator)’라는 신경 회로가 관장하는 기능으로, 이를 바탕으로 개체들은 보통 걸음부터 빠른 걸음, 질주하기, 뜀뛰기와 같은 다양한 걸음 패턴을 선택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같은 네 발 동물이라도 걸음의 패턴은 종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토끼는 특유의 ‘깡충깡충’ 뛰는 걸음이 있다. 앞의 두 다리와 뒤의 두 다리가 각각 함께 움직이고, 특히 뒷다리 굴근(flexor)의 관절을 펴는 범위가 커 뜀뛰는 걸음이 만들어진다.

이 같은 고유의 걸음을 관장하는 분자생물학적 기작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연구되지 않았다. 최근 ‘플로스 제네틱스’지에 발표된 논문은 토끼에서 특유의 뒷다리로 뜀뛰는 걸음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RORB라는 것을 밝혔다.

포르투갈의 포르투 대학의 연구진은 ‘소퇴르 달포르(sauteur d’Alfort)’라는 희귀 토끼 종을 일반 토끼와 비교 분석했다. 소퇴르 달포르는 두 개의 뒷다리가 엇박자를 내며 움직여 일반 토끼처럼 뜀뛰기를 할 수 없고,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두 개의 앞다리로 걸어 다니는 특징을 갖는다. 그뿐만 아니라 망막 형성 이상증으로 태어날 때 앞을 볼 수 없게 태어나고 생후 1년쯤 되면 백내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걸음과 눈의 병변은 모두 상염색체 상의 열성 형질 변이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멘델의 법칙에 해당하는 형질로, 우성 순종(+/+)과 잡종(+/-)에게서는 우성 형질이 나타나고 열성 순종(-/-)에게서는 열성 형질이 나타나게 된다.

연구진은 소퇴르 달포르 토끼 수컷과 일반 토끼 혹은 ‘야생형’에 해당하는 뉴질랜드 흰 토끼 암컷을 교배시켜 여섯 마리의 1세대 잡종(+/-) 여섯 마리를 얻었다. 그 뒤, 1세대 잡종을 다시 교배해 2세대 잡종 52마리를 얻었다. 이 중 40마리는 걸음걸이가 야생형에 속했고(+/+와 +/-), 12마리는 소퇴르 달포르 특유의 걸음이 관찰되었다 (-/-). 열성이 23퍼센트가량으로 멘델 법칙에 따라 예견되는 대로였다. 연구진은 이 52마리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야생형의 토끼들과 소퇴르 달포르형의 토끼들의 유전체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상염색체 1번에 차이가 도드라진 부위가 한 군데 있었는데 이 두 토끼의 유전체 상의 차이 중 95퍼센트가량이 이 부위에 모여있었다. 5.4Mb 가량의 아주 기다란 유전체 부위였다. 연구진은 이 중에서 소퇴르 달포르의 걸음걸이에 관여하는 돌연변이를 특정하기 위해 이미 알려진 다른 일반 토끼 종들의 유전체 정보를 함께 비교 분석하고 유전자 RORB에 위치한 돌연변이가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전자가 단백질을 발현하기에 앞서 RNA 단계에서 접합(splicing)이 일어나는 부위에 위치한 돌연변이였다. 특기할 것은, 70종의 다른 포유류에게서 일반 토끼와 같은 유전형이 관찰되었는데, 이는 다양한 포유류 종에게 이 위치에 생기는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변이가 생겼을 때 해로운 기능상의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위치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또한, 이전의 연구에서 RORB 유전자를 제거한 쥐들은 망막변성과 ‘오리걸음’ 같은 걸음걸이를 보였다고도 밝혔다. 이 같은 결과들을 종합하면 이 유전자와 이 특정 변이는 소퇴르 달포르 토끼 특유의 걸음걸이와 망막변성과 연관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추가 실험에서, 연구진은 이 돌연변이가 실제로 야생형 순종(+/+)과 잡종(+/-), 소퇴르 달포르형 순종(-/-) 각각의 척추와 각막 세포에서 다른 단백질 동형(protein isoform)을 발현한다는 것도 관찰했다. 소퇴르 달포르형에서는 단백질 합성이 빨리 종결되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발현되는 단백질의 총량을 줄어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소퇴르 달포르 토끼의 척추에서 RORB 유전자를 발현하는 신경 다발의 숫자를 크게 줄어들게 했다고 보고했다. 이것이 이 토끼들의 걸음걸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는데, RORB는 뇌의 여러 영역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이기도 한만큼, 뇌에서 일어나는 발현의 차이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토끼를 통해 유전자 RORB 상의 돌연변이가 소퇴르 달포르 토끼 특유의 걸음과 연관된다는 것을 면밀히 분석했다. 같은 유전자가 쥐의 걸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던 이전의 연구들과 함께 종합하면,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의 척추 발달과 움직임의 양상에 이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의미 있는 연구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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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한얼 2021년 4월 13일11:15 오후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의 척추 발달과 움직임의 양상이 단순히 근육이나 골격에 한정하지 않고 유전자 돌연변이 연구로 밝혀진 것이라니 흥미로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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