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물살은 뒤 물살에 의해 자기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우주를 관측하는 천체 망원경도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phys.org’는 케플러 망원경의 후계자로 낙점받은 ‘WFIRST(Wide Field Infrared Survey Telescope)’가 최근 예비설계 검토를 마치고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보도하면서, 예정대로 오는 2025년에 발사가 완료되면 또 하나의 차세대 행성 사냥꾼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케플러 망원경의 진정한 후계자
인공위성처럼 우주 공간에 뜬 채로 천체를 관측하는 대표적 망원경으로는 ‘허블(Hubble)’과 ‘케플러(Kepler)’를 꼽을 수 있다. 두 망원경 모두 지상에 있는 천체 망원경들보다 선명하게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허블은 천체의 한 영역이나 행성을 포착한 다음 이를 목표로 관측을 한다. 반면에 케플러는 보이는 천체 전부를 스캔(scan) 하면서 특이 사항을 관찰하는 방식을 취한다.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 허블이라면, 케플러는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케플러는 허블 망원경처럼 정밀하지는 않지만, 대신에 넓은 면적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 한번 관측을 시작하면 최대 10만 개의 별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케플러 망원경의 최대 강점이다.
문제는 케플러 망원경이 최근 발생한 부품 고장으로 인해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케플러의 뒤를 이을 차세대 행성 사냥꾼으로 ‘테스(TESS)’ 망원경과 ‘WFIRST’ 망원경을 낙점한 바 있다.
TESS 망원경은 이미 지난해인 2018년에 우주로 발사되어 활발하게 관측 활동을 벌이고 있다. 케플러보다 더 발전한 관측 기기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별들을 조사할 수 있지만, 사실 TESS는 고장 난 케플러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기능상의 차이는 별로 없는 망원경이다.
이처럼 TESS가 가진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하는 망원경이 바로 WFIRST 망원경이다. 대부분의 천체 망원경은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 즉 배율을 높이면 일정한 장소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넓은 범위를 관측할 수는 없다. 반대로 배율을 낮추면 넓은 범위를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지지만, 상세한 조사는 어렵다.
하지만 WFIRST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작되는 망원경이라 할 수 있다. 강력한 이미지 센서를 활용해서 넓은 범위를 한 번에 촬영할 수 있으면서도, 넓은 범위의 우주를 더 상세하게 관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WFIRST의 장점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허블 망원경과 케플러 망원경의 장점을 합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력한 분해 능력과 수십 배나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WFIRST는 이제까지 추정만 할 수 있었던 외계 행성의 대기 성분이나 물의 존재, 표면 온도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실제로 측정할 수 있다. TESS가 지구와 흡사한 외계 행성을 발견하면 WFIRST는 이 행성이 실제로 지구와 비슷한 환경인지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WFIRST를 활용하여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주에 지구 같은 행성이 얼마나 흔하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외계 행성의 구성 성분이 태양계와 얼마나 비슷한지 좀 더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주에 관한 근원적 해답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
WFIRST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광각 적외선 탐사 망원경’이라 할 수 있다.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 영역의 관측은 가스나 먼지로 인해 사물을 구분하기 어려운 공간, 또는 외계 행성처럼 어두운 천체를 관측할 때 특히 유리하다.
WFIRST는 허블과 동일한 2.4m의 주경(primary mirror)을 가지고 있지만, 2.88억 픽셀에 달하는 초정밀 이미지 센서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적외선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기 때문에 허블 망원경이 촬영한 이미지보다 100배나 더 큰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함께 부착된 고성능 안테나를 통해 하루 최대 1.375테라바이트(TB)까지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적외선으로 우주의 새로운 영역을 관측하려는 천문학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천문학계가 WFIRST에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강력한 성능의 코로나그래프(coronagraph)다. 코로나그래프란 일종의 필터처럼 항성의 빛을 가리면서 그 주변에 있는 희미한 빛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로서, 항성의 강한 빛 때문에 파악하기 어려운 주변 행성의 존재를 구별하기 위해 개발됐다.
행성을 직접 관측하고 그 스펙트럼을 파악하여 실제 행성의 대기 성분이나 표면 온도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은 과거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서는 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예를 들어 머나먼 천체에 우리의 태양계와 비슷한 별들이 모여 있다고 가정했을 시, 지금까지는 태양의 강한 빛에 가려져 수성이나 화성 등을 관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코로나그래프를 활용하면 이런 행성들의 존재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외계 행성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NASA에서 행성탐사를 담당하고 있는 ‘존 그런스펠트(John Grunsfeld)’ 부국장은 WFIRST의 개발 목적과 관련하여 “WFIRST를 개발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명확하다”라고 전제하며 “더 넓은 적외선 영역의 관측을 통해, 암흑물질이나 우주 탄생 등 우주에 관한 보다 근원적인 해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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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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