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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심재율 객원기자
2015-11-05

412m 공중에서 외줄을 탄다 [심재율의 영화뒤집어보기] 하늘을 걷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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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 원제는 더 워크(The Walk)이다. 프랑스의 고공 줄타기 예술가 (high wire artist) 필리페 페팃(Philippe Petit 1949 ~ )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줄타기가 기예임은 틀림없으나, 이 사람에겐 예술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예술가도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아마 그가 한 역할은 그런 것이리라.

페팃은 1974년 8월 7일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쌍둥이 빌딩 꼭대기에 줄을 달고 완전히 맨 몸으로 걸은 사람이다. 쌍둥이 빌딩의 높이는 412m이고 두 건물 사이의 거리는 42m이다. 그러니까 412m 공중에서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그냥 맨 몸으로 2cm 굵기의 줄 위를 걸었다는 것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 포스터 ⓒ UPI코리아
하늘을 걷는 남자 포스터 ⓒ UPI코리아

이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놀라지 마시길, 페팃은 무려 45분 동안 8번을 왔다 갔다 했다! 소동이 일어나자 꼭대기에 경찰이 연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페팃은 날씨가 좋았으면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중단했으니까.

하늘을 걷는 남자는 바로 이 실화를 거의 과장없이 3D영화로 만들었다. 백 투 더 퓨처로 유명한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감독이 제작했다. 필립 페팃 역은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이 맡았다.

45분간 뉴욕 쌍둥이 빌딩을 8번 오간  '와이어 아티스트' 

실화에서 페팃은 45분간 줄 위를 걸었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 시간이 30분 정도 된다. 그러나 30분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쪽 건물 옥상에서 저 쪽 건물 옥상으로 한 번 건넜을 때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마음속으로 휴! 하고 안도하지만, 웬걸, 페팃은 뒤로 돌아서서 다시 걸었다. 경찰이 와서 기다리자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서고, 반대편에도 경찰이 기다리자 다시 반대편으로 걸었다.

이렇게 외줄 위를 걷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이상한 감흥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영화도 많이 나오고, 화려한 CG도 많고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라운 SF영화도 많지만, 이 영화는 매우 특이하다. 인간 도전의 숭고함이랄까, 저절로 엄숙해진다. 동시에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고공 공포를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는 대략 11m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왜 11m인가 하면, 11m가 될 때 까지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시속 100km에 도달하기 까지는 자동차가 엄청 빨리 움직이는 것 같다가도 일단 시속 100km에 도달해서 정속을 유지하면 가속도가 없어져 속도감을 덜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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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팃이 실제 쌍둥이 빌딩을 맨 손으로 걷는 장면(위)와 영화속 장면(아래) ⓒ UPI코리아
페팃이 쌍둥이 빌딩을  안전장치 없이 실제로 걷는 장면(위)과 영화속 장면(아래) ⓒ UPI코리아

그러나 그것은 이론일 뿐, 뉴욕 트레이드 센터는 높이가 무려 412m이다. 게다가 그 빌딩은 1자로 된 건물이어서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그냥 완전히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다.

페팃은 영웅심리에서 무모하게 덤벼든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인류역사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예술적인 이벤트를 위해 6년을 준비했다. 파리에서 길거리 예술을 하던 그는 이빨을 다쳐서 치과에 갔을 때 신문 한 조각을 본 것이 시작이었다.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 조감도가 실렸는데 그 조감도를 본 순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건물 공사와 함께 그는 착착 공작을 진행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자신의 예술적인 행동을 (아니면 무모한 자살공연을) 도와줄 사람을 모으고, 나중에는 공사장 인부로 위장해서 건물을 자세히 답사했다.

그리고 거의 건물이 완공이 되던 시간인 1974년 8월 7일 새벽, 25세 된 그는 두 건물 옥상에 외줄을 달고 (외줄이 흔들리지 않게 보조 줄도 달았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다시 말해 떨어지면 그냥 412m 아래로 자유낙하 하는 그런 상태로 긴 장대를 들고 그 공중을 걸었다. 이미 위에서 밝혔듯이, 무려 45분 동안 8번을 왕복했다.

하늘 위를 걷는 시간이 오래되면서 아래에서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자, 손을 흔들어 답례도 했다. 너무나 멋진 공간에서 다시는 맛보지 못할 그 신기한 순간에 하늘을 온몸으로 감상하기 위해 그 줄 위에 누워도 있었다.

페팃은 왜 (why)그런 위험한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왜'란 없다. (There ia no why.)

그런데 왜 하필이면 쌍둥이 빌딩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2001년 911테러에 의해 수 천 명의 사상자를 낸 바로 그 건물이었는가? 미국관객들이 보면 고통스런 15년 전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비극적인 기억속의 그 쌍둥이 건물, 영화는 그 건물에 대한 말없는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애정이 스며들어있다.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 도발적인 예술가에 대해서 대한민국은 아직 평가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페팃의 퍼포먼스는 당시 닉슨 대통령의 사임 소식을 밀어내고 많은 미국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신문에는 그저 해외토픽 사진 한 장으로 실렸을 뿐이다. 포털에서 페팃을 검색해도 제대로 소개하는 내용은 없고 영화배우라는 단 몇 글자 외에 그가 출연했던 몇 개의 영화 포스터만 덩그러니 올라와 있다.

당신은 목숨 걸고 도전해 본 일생의 꿈이 있는가? 

이 위대한 예술가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쌍둥이 빌딩 위를 걸었는지 이 예술적 감흥에 의한 퍼포먼스의 가치를 이해하려 드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페팃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외에도 수많은 고공 줄타기 예술을 실행했다. 단 한 번 14m에서 떨어져 갈비뼈 몇 개가 부러진 적이 있지만, 요즘도 그는 매일 줄타기 연습을 한다고 구글에는 근황이 소개됐다.

최초로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1971년 프랑스 파리의 노르트담 사원의 두 탑 사이에 줄을 달고 그 위를 안전장치없이 걸었다. 호주 시드니 철교 사이에도 줄을 매달고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뉴욕 트레이드 타워의 쌍둥이 빌딩에 줄을 달고 걸었다.

영화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는 영화 뒷부분에 이런 대사를 집어 넣었다. “이 건물에 영혼을 불어넣고 싶었다.”

페팃과 저메키스는 관람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과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줄타기 하나를 위해서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사람도 있는데 과연 당신은 인생의 그 어느 것이든 목숨을 걸고 도전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심재율 객원기자
kosinova@hanmail.net
저작권자 2015-11-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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