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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9

21세기형 ‘르네상스 인간’이 필요하다 - 건축가③ 김진애 (주)서울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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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은?

건축은 현장에서 이뤄진다. 학문이 아니다. 물론 건축학자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건축학자 역시 현장의 건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건축물을 만들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건강한 환경을 만드는 데 소임이 있다.


경제 인구 중 약 1/4이 건설 관련 분야에서 일한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건축 분야는 무척 넓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건축가의 업무영역은 크게 설계분야와 시공분야로 나뉜다. 공사의 규모와 공정에 따라 시공업무를 관리, 감독하고, 공사수주 입찰과 공사를 위한 물량산출 등의 견적을 작성하거나, 공정계획을 마련하고, 인력에 대한 관리 및 건설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자문을 제공, 행정적, 법적 사무를 담당하는 등 다양한 일이 있다.


<건축 관련 여덟 분야>

도시 건축 빌딩

시스템

실내건축 디자인 부동산

개발

토목

조경

물리적계획

도시설계

교통

환경

주책

산업경제

건툭물

단지

도시

조형구조물

구조

공법

재료

정보통신

기계

전기

환경

에너지

내부공간

가구

조명

각종퍼니싱

환경조형

사인커뮤니케이션

아이템디자인

도시개발

단지개발

건축개발

유통개발

도로

교량

교통시설

토양

지하구조물

자연

도시

공원

건축

실내조경



현재 상황과 전망은?

급속한 개발 성장시대가 끝나면서 건축경기가 둔화된 것은 사실이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분야이다. 이제야 말로 제대로 건축을 해볼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몇 가지 좋은 신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소득 만 불 이상의 시대가 되면 사람들이 공간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지면서 건축의 질적 수준이 올라간다. 둘째, 재개발, 기존 건축의 개조, 거리 환경의 정비, 동네 가꾸기 등 할 일이 많다. 셋째, 문화, 교통, 업무, 유통, 체육, 복지, 교육 시설은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분으로 도시마다 상당한 수요가 예상된다. 넷째, 자연 환경의 보호, 에너지의 보전, 재활용, 생태 조성, 건강 환경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펼쳐질 것이다. 다섯째, 첨단 설비를 갖춘 지역 서비스, 건물의 통합 서비스 등 이제까지와 다른 설계 수요가 있다. 여섯째, 수요자도 공급자도 미적 감각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일곱째, 북한의 공간 개발은 새로운 수요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여덟째, 세계 시장의 개방은 외국인의 우리 시장 진입 뿐 아니라 우리 건축인들의 세계 시장 진입도 가능하게 한다.


요구되는 적성과 능력은?

건축을 설계하는 디자인 건축가 이외에는 거의 누구나 일할 수 있는 분야가 건축이다. 어떤 재능 한 가지라도 가진 사람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으면 일할 수 있다. 또한 훈련을 받으면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도 괜찮다. 건축 훈련은 기술에 대한 이해, 인문학에 대한 이해, 경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훈련’이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건축과를 나와서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만 건축인이 되려는 사람은 ‘공간 추리력’, ‘기술 판단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는데 관심을 갖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입체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이며, 복합적인 기술을 활용해야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실무에서 살아남기란 만만찮은 것이 현실이지만 여성의 특징은 건축 분야에 아주 적합하다. 복잡한 상황을 잘 다루고, 실용적이고, 설득력이 있고, 소통 잘하고, 치밀하게 잘 챙기는 여성의 속성은 건축에 적격이다. 기술과 매니지먼트 훈련을 쌓으면 건축 분야에서 여성이 잘 자랄 가능성은 아주 크다. 게다가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고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높다는 점에서 신뢰성도 높으니 건축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늘어야 부정부패도 줄어들고 부실로 인한 문제도 줄어들 것이다.


업무가 상대적으로 정규적인 편인 엔지니어링 설계(토목, 구조, 설비, 전기, 통신, 환경 등), 치밀성이 필요한 시공 관리 분야나 자재 개발 분야, 그리고 공익적인 눈을 견지해야 하는 건축 행정과 도시계획 행정 분야, 수요자의 마음을 읽는 개발 경영 분야(기획, 마케팅, 금융관리)에 여성의 진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준비는 어떻게?

일반적으로 공업고등학교나 전문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전문 기능인으로, 대학에서 건축공학과나 건축학과를 졸업하여 기술인이나 매니저로, 대학원에서 전문영역을 공부하면 설계인 또는 기술개발인으로 출발할 수 있다.


설계나 기술 개발에 종사하려면 5년제 대학 또는 건축 대학원을 다니는 추세도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법학 대학원, 경영 대학원, 의학 대학원처럼 건축 대학원이 별도로 독립되어 있다. 대학에서 다른 전공 기본을 다진 후에 대학원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다.)


건축의 기능은 상당히 복잡할 뿐 아니라 밀접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그 중 어느 기능을 자신의 길로 택한다 하더라도 다른 기능과의 연관성을 잘 파악해야 좋은 건축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학교에서의 학습도 중요하고 또한 실무에서의 훈련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학습 훈련도 긴 편이다. 최근 건축과를 5년제로 바꾸는 것에도 나타나듯, 이른바 국제 수준의 학습을 인정받으려면 갖추어야 될 것이 많다. 유럽의 건축 대학은 6-8년 과정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미국에서는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학교를 마친 이후에도 등록된 건축사 지휘 아래 ‘인턴’ 기간을 꼭 거쳐야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의사나 법관과 같은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현장의 복잡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체험하고 난 뒤에 비로소 ‘장인’이 될 수 있다. 반짝이는 디자인 아이디어만으로 건축이 되는 것이 아니고, 땅을 읽고 문화를 알고 인간을 이해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구조, 설비, 전기, 통신, 환경, 토목 등 여러 분야의 역학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익혀야 건축가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채용은 어디에서 어느 정도?

건축 분야는 무척 넓어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곳에서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 건축설계사무소, 엔지니어링 회사, 인테리어 사무소, 건설회사, 감리 전문회사, 주택건설회사, 개발회사, 안전진단 전문기관, 건설품질검사전문기관, 측량회사, 유지관리회사, 건설교육 기관, 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많은 수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졸업 후 실무경험을 쌓고 건축사, 건축구조기술사, 건축시공기술사, 건축기사, 건축산업기사, 건설안전기술사, 건설안전기사, 건설안전산업기사, 도시계획 기술사 등의 자격 등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 <정리=한효순 박사, 한국과학문화재단 객원선임연구원>



"배우자, 자라자, 평생토록!" 김진애 건축가·도시설계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석사 및 도시계획 환경설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주)서울포럼 대표다.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100인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선농테라스, 산마당집, em-pc하우스, 그림문화관’ 등을 설계했으며, ‘산본 신도시, 수영정보단지, 인사동길’ 등의 도시설계와, ‘밀라노 트리엔날레 서울전시관, 서울 600년 전, 미디어시티 서울’ 등의 전시 작업을 했다.


지은 책으로 <김진애의 우리도시 예찬>, <이 집은 누구인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건축을 꿈꾸자>, <21세기엔 이런 집에 살고 싶다!>, <우리의 주거문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새로운 종의 여자 메타우먼>,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 등과 건축에 관심이 있거나 건축가가 되고자하는 후배들을 위해 쓴 <매일매일 자라기>, <프로로 자라기>, <사람으로 자라기>가 있다.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된 동기 및 과정은?

어쩌다 ‘건축’이 나에게 떠올랐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택했던 것은 여자가 독립하기에 유리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할 것이냐를 택할 때 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독립’, 그러니까 ‘내가 벌어 내가 살래’였다. 건축은 이공계 중에서 그 중 재미있게 보여서 택한 것이지만 내 멀티 기질에 아주 잘 맞아서 다행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항상 고민인 ‘멀티 인간’이다.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하나 지워갔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의대를 가라고 했고 지금도 외과 수술을 잘할 것 같다는 평을 자주 듣지만, 나는 의사만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직업으로 꼽았었다.


화가나 조각가(?)는 전시회로 고민하는 언니를 보면서 저건 아닌데 싶었다. 작가(?)는 글만 쓰고 살기는 너무 활기가 없을 듯싶었다. 수학(?)은 재미있어 하기는 했지만 나는 사람이 좋았다. 사회학이나 경영학(?)은 사람을 다루는 건 좋은데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이 재미없을 듯싶었다. 심리학(?)은 남의 심리만 들여다보고 살면 골치 아플 듯싶었다. 법관(?)은 정의감이라는 부담도 그렇고 나는 그 딱딱한 이미지가 별로였다.


1남 6녀 중 셋째인 내게 남녀차별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건축, 남자들이 주로 한다니 어디 한번 해보자’하는 오기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뭐 할 거니?” 물어 보셔서 어쩌다 ‘건축’이란 말이 튀어나왔는데, 그 선생님은 내 눈 속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더니 씩 웃으면서 “짜식, 해낼 것 같은데?” 그 한마디가 내 투지를 불태우게 했는지도 모른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어려운 점은?


정말 해볼 만 한 직업이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졸업 후 설계사무실 다니면서 실제로 집을 지어봤을 때다. 도시에 눈을 뜬 것은 ‘신 행정수도 계획’ 팀에 참여했을 때다. 두근두근했다. ‘일이란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팀워크란 이렇게 재미있구나, 뭔가 만든다는 건 정말 기쁘구나, 건축이란 정말 통합적이구나!’ 신났었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이 때였다.


박사학위를 받고 주택연구소에서 3년 동안 일하다 서울포럼으로 ‘창업’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결정이자 가장 잘한 결정이기도 하다. 위험은 컸지만 그만큼 기회도 컸다. 역시 건축이란 ‘실무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도시, 환경, 건축 정책에서 여성의 입장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거품이 많은 과시적 건축물들이 많다. 여성들이 건축의 많은 분야에 진출할수록 보다 인간적인 도시, 건축, 환경이 될 가능성이 분명 높아질 것이라 믿으며 이 일을 열심히 한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기쁨을 주는 직업’이다.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낫게,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드는 노력 자체가 즐겁다. 역시 ‘만들어내는’ 과정만큼 즐거울 때가 없다. 건축주가 기뻐하면 나도 덩달아 즐겁고, 수많은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편하게 쓰는 모습을 보면 기분 좋다.


예컨대, 산본 신도시에는 오래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은근한 보람이다. 그만큼 뿌리 내리고 살만한 동네라는 것 아닐까. 내가 지어 준 집의 주인은 아직 그대로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기분 좋다. 인사동길에서 무심코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대로 길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기분 좋은 것, 이것이 기쁨을 주는 직업의 보람일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

건축은 멀고 험한 길이지만 흥미로운 직능임에는 틀림없다. 다음의 건축 속성을 음미하면서 건축을 즐기기 바란다. 좋은 건축인의 등장, 특히 뛰어난 여성 건축인의 등장을 기대한다.

▲건축은 ‘기술력’과 ‘디자인력’의 총합인 21세기 분야다 ▲건축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 중에 있는 분야다 ▲건축은 복합적인 분야로 전략적인 복합역량이 필요하다 ▲건축은 ‘커뮤니케이션’과 ‘코디네이션’이 핵심이다 ▲건축에는 수많은 캐리어 옵션이 있다 ▲건축은 죽을 때까지 시간싸움을 하는 지식업이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는 문화 분야다 ▲건축은 독립적인 현장의 프로로 이뤄진다


시작은 어설프고, 배우는데 길며, 오래 배워도 잘 하기가 어려운 분야가 건축분야다. 그렇지만 건축은 즐겁다. 불필요한 환상은 깨고 실제적인 이상은 키우자. 그만큼 건축은 정신적 보상이 많은 분야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열심히 생각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의 역할임에야, 어떻게 건축이 즐겁지 않으랴.


우리나라 옛 역사에는 사회구조 특성상 건축가가 등장하질 못했다. 대신 나는 역사 속의 뛰어난 '르네상스 인간'들을 보며 그들의 에너지를 상상해보곤 한다. 서울을 만든 태조, 한글을 만든 세종, 수원화성을 만든 정조, 불국사를 만든 김대성,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등 아마도 그들이 다시 태어난다면 틀림없이 건축가가 되고자 할 것이다.


저작권자 2003-10-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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