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과학 혁명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있었다면, 20세기 과학 혁명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있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300년간 지속되어 온 뉴턴 패러다임을 종식시키고 20세기 현대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각종 포스터, 티셔츠, 심지어 머그컵에 이르기까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괴짜 천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고 있다.
그동안 아인슈타인의 전기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들어서는 그의 전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영상 전기물이 제작됐다. 제작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다. 10부작으로 된 TV용 시리즈 영화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한 만큼 깊게 탐구해 나가
오는 25일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팩’ 채널을 통해 방영될 이 시리즈 영화 ‘아인슈타인: 그의 삶과 우주(Einstein: His Life and Universe)’의 메가폰은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이 맡았다. 아인슈타인을 연기하는 주연급 배우는 두 명이다.
젊은 시절 아인슈타인 역은 자니 플린(Johnny Flynn)이 맡았다. 노년 시절의 역은 제프리 러시(Geoffrey Rush)가 맡았다. 이들이 재현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은 단순한 ‘천재’가 아니다.
그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니고 있었던 독특한 탐구 방식이다. 하워드 감독은 “강한 의지를 갖고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묻고 또 물었으며, 그 묻는 방식이 도전적이라기보다는 매우 사색적이고 철두철미했다”고 말했다.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영화 뷰티플 마인드(A Beautiful Mind)'에서 나타난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와 비교된다. 아인슈타인의 모습은 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유’ 그 자체였다.
자유 속에 있었던 그는 ‘복잡한(complicated) 성격의 결점이 많은(flawed), 대단히 매력적인(fascinated) 성격’을 창출했다. 그의 삶 속에서 완고함과 교만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가 세상을 매우 사랑했다는 점이다. 여인(woman)을 사랑했고, 그의 삶(life)과 자연(nature), 세상(world) 전체를 사랑했다. 특히 자연에 대한 사랑은 그를 자연의 법칙인 물리학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한 요인이 됐다.
평화주의자였지만 원자탄 개발에 동의
그동안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의 강력한 사고력이다. 하워드 감독은 이 사고력 이면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강력한 호기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호기심이 과학자로서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평화주의자였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가 독가스를 만들어 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군인을 죽게 한 사실을 접한 후 큰 고통을 받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론을 이용한 원자탄 개발계획에 서명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발발을 눈앞에 두고 있을 당시 두 강대국 미국과 독일 간에 원자폭탄 개발경쟁이 초읽기에 들어갔고, 독일의 폭탄 개발을 막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팽배하고 있었다.
원폭의 기본 원리인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공식(E=MC²)을 내놓은 아인슈타인으로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써서 대책을 마련하게 해야 한다는 실라르드의 제안에 동조했다.
그리고 한 달 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41년 말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도 함께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차대전막바지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아인슈타인의 생애에 여인들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생각이 많은 그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1903년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와 결혼한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그녀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결국 1919년 이혼하게 되는데 그 이전까지 또 다른 여인들과 밀회를 한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첫사랑이었던 마리 빈텔러, 비서였던 베터 노이만, 그리고 두 번째 부인이 된 엘자 뢰벤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인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격변의 시대에 과학계는 물론 사회,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다. 1955년 그가 사망한지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그의 탐구 방식은 많은 21세기 첨단 기술 시대를 맞고 있는 많은 과학자들의 중요한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인생관, 과학자로서의 철학, 그의 삶의 방식 등에 대해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이유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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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4-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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