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잘못된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백신 이야기’를 총 1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현대에 백신의 존재는 매우 당연하지만, 과거엔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병을 예방하기 위해 그 병원체를 주사로 맞자’는 이야기가 어불성설처럼 여겨질 수 있어서다. 설사 안전성과 필요성을 이해했다 해도 살아있는 병원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 즉 ‘약독화’ 과정은 많은 수고가 필요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끝없이 배양을 반복해야 하고, 그때마다 안전성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백신 개발자 사이에선 ‘처음부터 죽어있는 병원체를 쓰면 될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후천성 면역이란 우리 몸이 병원체의 형태를 기억하는 것’이라면, 이미 죽어버린 병원체의 ‘시체(?)’를 이용해도 면역을 얻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만든 ‘불활성화 백신’은 의외로 장점이 많다. 병원체의 종류를 확인해 배양을 거치기만 하면 되므로 빠르게 개발할 수 있고, 효과나 안전성도 좋은 편이다. 일명 사백신, 불활성화 백신(Inactivated vaccine)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불활성화’의 의미

과거에는 백신을 크게 생백신과 사백신, 크게 두 종류로 나누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다양한 백신 제조 기법이 개발되면서 이 두 가지 구분만으로 나누기는 모호한 면이 있다. 우선 사백신이라는 용어를 요즘은 자주 쓰지 않는다. 불활성화라는 말은 단어 뜻 그대로 ‘활성화를 없앴다’라는 뜻이다. 즉 미생물 ‘증식’을 막았다는 뜻이다. 과거엔 죽을 사(死)자를 뜻하는 ‘사백신’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바이러스 등 여러 병원체는 엄밀하게 구분하면 생명체가 아닐 수가 있어 불활성화 백신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사백신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쉬워서인지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도 거부감없이 자주 사용한다. 영어권에서도 죽은 백신(Killed Vaccine)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이름이 붙는건 실제로도 병원체를 죽여서(?) 백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불활성화 백신을 개발할 때는 먼저 예방하고 싶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 즉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찾아내 대량으로 배양하고, 그것을 열이나 방사선, 화학물질(폼알데하이드 등)로 불활성화시킨다. 그리고 죽고 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사체(?)를 주사액에 섞어 백신으로 만든다. 물론 정확한 성분조정과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부작용이 가장 적은 투약 정도를 알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류 최초의 불활성화 백신은 아마도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광견병 주사’일 것이다. 당시엔 전자현미경이 개발돼 있지 않아 광견병의 원인인 바이러스를 발견할 수 없었는데, 파스퇴르는 광견병에 걸린 토끼의 뇌를 석탄산(carbolic acid)으로 처리한 다음 백신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현대의 사백신 제조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파스퇴르는 병원체의 존재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실험을 반복해 백신을 개발해 낸 것이다. 현대에 이런 방식으로 백신을 개발했다면 아마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불활성화 백신으로는 소아마비, 독감(인플루엔자) 백신도 불활성화 백신의 일종이며, 인플루엔자, 일본 뇌염, 광견병, A형간염, B형간염, 유행성출혈열 등 많은 바이러스 질환 백신을 이 방법으로 만든다. 세균 질환의 경우 백일해, 장티푸스, 콜레라, 폐렴 등이다. 병원체에 감염된 다음 발생하는 ‘독소’에 대해 면역을 갖는 것도 가능한데, 이를 톡소이 드 백신이라고 하며 대부분 불활성화 백신 형태로 만든다. 디프테리아, 파상풍 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불활성화 백신으로 만드는 일도 있는데, 중국이 개발한 시노팜, 시노백 등의 백신은 이런 불활성화 백신 형태로 만든 경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중국 제약업체 시노팜의 코로나19 백신 사용을 긴급승인했으며, 6월 1일에는 중국 제약업체 시노백의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했다. WHO는 “접종자의 51%에서 증상을 예방하고, 연구 대상자의 100%에서 코로나 중증과 입원을 방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WHO 전문가들은 “일부 증거가 여전히 미흡하며 데이터 격차가 존재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불활성화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

불활성화 백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안전성’을 꼽는 경우가 많다. 살아있는 병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독화 생백신의 경우 살아있는 병원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재차 변이가 일어나며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비해, 불활성화 백신의 경우는 이처럼 변이에 의한 질병 유발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약독화 생백신 형태로 폐렴 백신을 만들었다면, 그 주사를 맞고 폐렴이 생길 가능성을 완전히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불활성화 백신은 이런 우려가 없다.
그러나 불활성화 백신의 가장 큰 단점도 ‘안전성’이 꼽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성분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 때문이다. 파스퇴르의 사례를 보면, 토끼 뇌에 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성분이 그대로 사람의 몸속에서 항원으로 작용했을 테니 광견병 병원체 자체에 대한 반응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현대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사백신의 경우 이런 단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약독화 백신의 경우 살아있는 병원체 그 자체를 대상으로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이에 비해 불활성화 백신은 병원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죽은 병원체의 여러 ‘성분’을 대상으로 면역이 일어난다. 면역반응이 집중되지 않고 병원체를 유지하던 수많은 성분을 대상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막상 예방률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뜻은 생성되는 여러 항체 중 일부는 질병 방어와 무관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의미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불활성화 백신은 면역증강제를 추가로 맞는 경우가 많으며, 면역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접종할 필요가 있다. 또 예상치 못한 알레르기 반응 등으로 발열, 쇼크 등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를 예측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증상은 대개 24시간 이내 일어나므로, 불활성화 백신을 접종받았으면 철저히 하루 정도 안정을 취하며 혹시 쇼크가 일어날 때 즉시 대비해야 한다.
드물게 불활성화 백신 제조 과정에서 일어나는 쇼크 중 ‘달걀 알레르기’가 원인인 경우도 있다. 병원체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달걀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바이러스의 경우 살아있는 세포(숙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엔 세포배양 기술을 이용하는 방법도 쓰인다.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우며 그 안에서 바이러스를 직접 배양하는 식이다. 달걀을 이용하는 경우,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드물게 쇼크 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며, 세포가 모두 같다고 보기 어려워서 바이러스의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이런 세포배양 방식은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고 효과도 확실해 최근 주목받고 있다. 2017~2018년 미국 식품의약처(FDA)와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세포배양 독감백신이 유정란 독감백신보다 1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선 2019년 국내기업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스카이셀플루’는 달걀이 아닌, 세포배양을 이용해 약독화 백신을 만든 바 있다.
이런 우려에도 현재 우리가 병원에서 맞을 수 있는 많은 불활성화 백신은 충분한 임상을 거쳐 안전이 확보된 것이므로 대부분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불활성화 백신은 다른 제조법으로 개발이 어려웠던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고마운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불활성화 백신의 진화
불활성화 백신도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첨단기법을 추가로 도입하며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불활성화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이용하면서도, 그 중 꼭 필요한 성분만을 모아 사용하는 경우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면역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불활성화 백신중 이렇게 개발된 것들을 ‘분획화 백신(fractional vaccine)’이라고 하는데, 세균이나 바이러스 속 일부 성분이 면역에 필수적으로 판단되면 그것만을 선택적으로 추출해 사용하는 식이다.
분획화 백신은 개발 방법이 한층 더 복잡해지므로 전통적인 불활성화 백신과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이 역시 넓게 보아 불활성화 백신의 일종이므로 조금만 예를 들어 보자. 크게 병원체의 단백질 구조를 이용하는 단백 백신, 병원체의 다당류 구조를 이용하는 다당 백신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안에서 다시 여러 종류의 백신이 만들어지고 있다. 단백 백신의 일종으로 병원체가 가진 독소를 항원으로 삼는 톡소이드(toxoid), 병원체의 일부 구조를 항원으로 삼는 아단위(subunit), 바이러스가 외부환경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입자인 비리온(VIrion)을 이용하는 서브비리온(subvirion) 백신도 있다. 이 밖에 병원체의 다당류 구조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 단백결합 다당 백신(protein conjugated polysaccharide vaccine)이라고 해서, 두 가지 장점을 결합한 종류도 등장하고 있다.
- 전승민 과학기술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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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6-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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