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과학교육학회를 설립해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토양을 마련한 박승재 서울대 명예교수. 2002년 교육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과학기술 앰배서더 강연 등 과학문화 전도사로 변함 없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엑스플로러토리움의 국내 전시회인 '과학놀이체험전'의 전시위원장을 맡았다. 엑스플로러토리움이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관이다 보니 오는 19일부터 서울 삼성동 COEX에서 열리는 과학놀이체험전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
"엑스플로러토리움은 직접 동작을 해보면서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체험형 과학관입니다. 전통적인 과학관이 뒷짐 지고 점잔케 구경했다면 엑스플로러토리움은 관객들이 전시물과 함께 신나게 놀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해 끊임없이 새로운 전시물을 선보이는 노력하는 과학관입니다."
전 세계 과학관의 개념을 바꿨다고 평가되는 엑스플러로토리움과 박 교수의 인연은 무려 40여년 전에 시작됐다고 한다.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엑스포'가 열렸습니다. 박람회가 끝난 후 그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프랭크 오펜하이머 박사의 주도로 엑스플로러토리움이 건립됐습니다. 저는 1960년대말 미국에 갔다가 엑스플로러토리움을 처음 보게 됐구요."
과학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던 박 교수였기 때문에 엑스플로러토리움을 보고 느낀 감동은 훨씬 컸다. 과학은 알고싶은 마음에서 시작돼 손과 머리가 함께 어울려야 한다는 그의 생각과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 그 후 박 교수는 미국에 갈 일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엑스플로러토리움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선비 상은 앉아서 지식을 추구하는 형태입니다. 선비들은 수리와 천문 분야의 서적도 읽었지만 직접 자연을 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전통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은 직접 해보지 않고 머리로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려자기나 거북선 같은 선조들의 작품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세종시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던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손과 머리를 의미 있게 어울리는 일을 꺼려해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에서 체험이 중요하다는 신조 때문에 박 교수는 가끔 별난 과학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한 예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완구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기술 앰배서더 강연을 할 때는 항상 완구를 갖고 가 강연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청소년이 첨단과학에 흥미로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첨단과학은 어렵기 때문에 초등학생은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구처럼 자신이 해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데 흥미를 느낍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과학 장난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가 강조하고 다니는 이유지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거대한 완구들을 모아놨다고 할 수 있는 엑스플로러토리움. 박 교수는 이를 우리 청소년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 그동안 국내 유치를 여러번 시도했는데 엄청난 비용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루트원'이라는 업체가 국내 유치를 성사시킨 후 조언을 듣기 위해 박 교수를 찾아와 선뜻 도와주게 됐다고 한다.
"과학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전시회가 실패하면 언제 누가 다시 이런 큰 전시회를 열겠냐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아무리 전시회가 화려하더라도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해 뭐 하는지 모른 체 한번 쭉 돌아보기만 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한달 동안 박 교수는 밤을 세워가면서 이번에 국내에 전시되는 68개 아이템에 대한 소개서를 쓰는데 매달렸다. 그 결과 청소년을 위한 안내서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들을 위한 것도 완성시켰다.
"청소년용 안내서의 경우 각각의 아이템에 대한 재미있는 질문에서 시작해, 어떤 전시물인지, 어떻게 놀아야 되는지, 무엇을 생각해봐야 하는지, 한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실력 겨루기까지 다뤘습니다. 저 혼자 한 일이 아니라 여러 제자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하나의 큰 일을 마무리지은 박 교수는 또 다른 고민을 시작 중이었다. 청소년이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하기 위해 열심히 만든 자료가 실제 활용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 최악의 경우 자비를 들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김홍재 기자 ecos@ks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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