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기술이 격돌하는 ‘씨름의 희열’

[스포츠 속 과학] 균형 유지하며 상대방 무너뜨리는 중심운동

명절이면 어김없이 TV 속으로 찾아오는 스포츠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씨름.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 올해 한가위에도 힘센 장사들이 모래판 위에서 펼치는 용호상박의 대결이 방송전파를 탔다.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위더스제약 2021 추석장사씨름대회’가 충남 태안군 태안 종합실내체육관에서 전국 23개 팀 1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남자부는 태백급(80kg 이하)에서 문준석(수원시청)이 2년 만에 정상에 올랐고, 금강급(90kg 이하)에서는 임태혁(수원시청)이 추석대회에서 3년 연속 꽃가마를 타면서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한라급(105kg 이하)에서는 오창록(영암군청)이 추석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거머쥐었고, 백두급(140kg 이하)에서는 김진(증평군청)이 개인 통산 8번째(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1회) 황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여자부는 매화급(60㎏ 이하)에서 양윤서(구례군청)가 2년 연속 추석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국화급(70㎏ 이하)에서는 임수정(영동군청)이 개인통산 20번째 타이틀을 따냈다. 무궁화급(80㎏ 이하)에서는 김다영(구례군청)이 생애 첫 장사에 등극하는 기쁨을 누렸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안전한 투기 종목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재주를 부려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스포츠이다. 삼한시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 고분벽화(각저총)에 남겨져 있으며,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수많은 일화에 등장하고 조선의 화가 김홍도의 화폭에도 담겨있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유의 민속놀이이자 전통스포츠이다. 씨름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무형문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됐고, 2018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스포츠로서 씨름은 두 사람이 피부를 맞닿고 마주 서서 밀고 당기는 원초적인 종목이지만 무릎 위가 먼저 지면에 닿으면 지는 것으로 간주해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 신사적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투기 종목임에도 폭력성과 위험성이 적어 모래 또는 매트만 있으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씨름이 학교 운동회나 회사 체육대회에서 단골 종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씨름은 힘과 기술이 격돌하는 경기다. 2021 추석장사씨름대회 태백급 결승에서 문준석(위쪽)이 정철우의 안다리공격을 방어하고 있다. ⓒ 대한씨름협회

씨름하면 가장 먼저 모래가 연상되는데,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상당히 오래전부터 모래 위에서 경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조상들은 맨땅보다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굳이 모래를 깔고 그 위에서 씨름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래 위에서 씨름을 한 이유는 상대 선수가 넘어질 때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주기 위해서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평화스러운 우리 민족 고유의 품성을 엿볼 수 있다.

모래판에서 씨름을 하는 선조의 지혜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모래 위에서 들배지기 같은 기술을 사용하면 발이 모래에 깊이 들어가 파이면서 접촉면이 증가한다. 모래와 매트를 비교하면 매트가 모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단위면적당 가해지는 최대압력 역시 유의하게 커진다. 즉 모래는 과도한 압력으로 인해 발목과 무릎, 골반 등 관절에 상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춰준다.(이태현 『씨름 들배지기 기술 시 바닥특성에 따른 족저압력 차이분석』 참조)

장딴지근과 대퇴사두근이 파워를 결정

씨름은 발바닥을 제외한 신체 어느 부분이라도 바닥에 닿으면 승부가 나기 때문에 무척이나 단순한 경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경기는 한순간의 실수나 체중 쏠림, 자세 무너짐이 패배로 직결되기 때문에 힘과 힘이 끊임없이 격돌하며 짧은 순간에도 복잡한 기술들과 수많은 심리전이 오고 가는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승리를 위해 가장 기본바탕이 되는 것은 자신의 무게중심을 유지하고 다양한 기술을 넣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데 필요한 ‘근력’이다.

씨름과 같은 무도경기는 한 번의 기술로 승패가 가려질 수 있는 경기 특성상 순간적으로 최대파워를 내는 근력 발현이 매우 중요하다. 씨름 선수의 최대파워는 장딴지근과 대퇴사두근(넙다리네갈래근) 중 가쪽넓은근과 넙다리곧은근에서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평균파워 발휘와 특정 근육 구조와의 통계적 유의성은 관찰되지 않았다.(Kyu-Lim Lee et al. 『Correlation Between Muscle Architecture and Anaerobic Power in Athletes Involved in Different Sports』 참조)

다양한 스포츠 선수들이 최대파워(파란색)와 평균파워(녹색)에 도달하는 데 관여하는 주요 근육들. 씨름은 장딴지근과 가쪽넓은근, 넙다리곧은근이 최대파워 발현에 중요하다. ⓒ Kyu-Lim Lee et al. 『Correlation Between Muscle Architecture and Anaerobic Power in Athletes Involved in Different Sports』

상대방이 힘을 실어 공격기술을 걸어올 때 자세를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역시 근력이다. 특히, 모래와 같은 불규칙한 기저 면에서 상대방의 공격에 맞서 인체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도록 신체 균형을 조절하는 능력을 ‘신체 중심이동 능력’이라 한다. 신체 균형은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감각신경과 이에 대해 반응하는 운동신경의 상호 신호전달이 적절하게 조절돼야 하며, 근력을 바탕으로 민첩성과 순발력, 근지구력 등의 조화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인체의 동적 밸런스와 효율적인 움직임은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 근력 비율은 3대 2, 즉 대퇴사두근 근력을 100%로 했을 때 햄스트림 근력이 66.7%에 도달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민속씨름 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 근력 비율이 우수군은 57.4%이고 비우수군은 52.0%로 이상적인 비율과는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태현 『씨름 선수들의 등속성 무릎 동측근력 비율 차이가 동적 밸런스에 미치는 영향』 참조)

기본기술의 변형과 조합은 수백 가지

씨름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종류도 많고 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는 1983년 54가지 씨름기술을 정리하고 한글학회의 도움을 받아 우리말 이름을 붙였는데,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 생기고 새로운 기술이 계속 탄생하는 상황이다.

씨름 기술은 기본적으로 손, 다리, 허리 등을 이용해 회전축을 형성한 후 회전력을 가해 회전운동을 유도하여 상대를 넘어뜨리는 역학적 원리로 이뤄진다.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상대방이 움직이거나 넘어지려고 하는 방향으로 밀거나 당기는 관성의 법칙과 다리는 걸어서 당기면서 어깨로 미는 것과 같은 짝힘의 원리 등을 활용한다.

씨름의 기본기술은 크게 손기술과 발기술, 허리기술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손기술’은 손으로 상대의 다리를 치거나 앞으로 당기고 밀거나 다리를 잡아 이로 들고 잡아채면서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다리기술’은 상대방으로 앞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다리와 발로 걸고, 치고, 밀고, 옆으로 후려 당겨서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허리기술’은 허리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좌우로 들려 넘어뜨리는 기술로 회전하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씨름에서 손기술인 뒷무릎치기와 콩꺾기(위쪽), 다리기술인 안다리걸기와 밭다리걸기, 빗장걸기. ⓒ 대한씨름협회 『씨름 교본』

기본기술은 변형과 조합을 거쳐 확장되면서 수백 가지 기술로 발전한다. 공격자가 공격기술을 구사하면 상대는 자기중심을 유지하면서 반격기술을 걸게 되고 이에 대항해 공격자는 다시 기술을 연속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되치기 기술은 상대방이 기술을 걸어올 때 방어동작을 하면서 상대방의 중심에 대한 허점과 힘을 역이용하여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금강급에서 펼쳐진 177경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장신선수(경기당 1.87회)가 단신선수(경기당 1.62회)보다 좀 더 많은 기술을 사용하며 공격적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신선수는 상대적으로 운동범위가 넓어 기술 구사에 유리한 반면 단신선수는 공격범위가 제한적이고 기술적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용하는 기술에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단신선수는 허리기술(44.3%), 다리기술(24.0%), 손기술(22.2%)을 골고루 사용하는 반면 장신선수는 허리기술(63.7%)와 다리기술(29.5%)을 집중적으로 시도하고 손기술(1.6%)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기술별 성공률은 허리기술(50% 내외), 손기술(45% 내외), 다리기술(35~40%) 순이었다. 되치기는 단신선수와 장신선수 모두 사용빈도는 가장 낮았지만, 성공률이 80%를 넘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김명기 외 『씨름 경기에서 신장 차이에 따른 선수들의 경기력과 기술 구사 분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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