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효소의 정체를 밝혀낸 과학자

노벨상 오디세이 (123)

프랑스 파리에서 설탕공장을 운영하던 화학자 앙셀름 파옌은 엿기름에 알코올을 첨가하면 침전되는 흰 분말이 당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833년에 그가 발견한 그 흰 분말은 세계 최초로 추출된 효소인 디아스타아제였다.

독일의 생리화학 창시자 중 한 명인 빌헬름 퀴네는 효소에 엔자임(Enzym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스어의 ‘부풀어 오르다’라는 단어를 차용한 명칭이었다.

물질대사, 즉 생명체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광합성으로 대표되는 동화작용과 세포호흡으로 대표되는 이화작용이 바로 그것. 이화작용은 각종 유기물을 호흡이나 발효 등을 통해 분해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효소의 결정화에 최초로 성공해 194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섬너. ⓒ Nobel Foundation archive

보통 자연상태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때문에 화학반응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선 온도나 압력을 높이거나 촉매를 넣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생명체 내에서의 화학반응은 온도나 압력을 높여주지 않아도 매우 빠르면서도 정교하게 진행된다.

그 비결은 바로 효소에 숨어 있다. 효소는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화학반응에서 자신은 변하지 않으나 반응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집을 짓기 위해선 철근, 목재, 콘크리트, 벽돌 등의 건축 자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이용해 집을 지을 인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작두콩에서 우레아제 추출 성공

마찬가지로 인체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미네랄,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집을 지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부가 없으면 안 된다. 바로 그 인부 역할을 하는 것이 효소다.

발효의 생화학적 연구로 유명한 독일의 생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1896년에 발효는 효모세포의 생리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효모 내에 있는 효소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19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효소는 여전히 수수께끼에 쌓여 있었다. 극히 적은 양으로 존재할뿐더러 구조가 매우 복잡한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수한 형태로 분리할 수 있는 물질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1926년에 미국의 생화학자 제임스 섬너는 남미 식물인 작두콩에서 ‘우레아제’라는 효소를 추출해 결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발견으로 효소가 단백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입증되었다. 그가 우레아제를 결정으로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단백질은 분자량이 너무 커서 결정을 만들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록펠러연구소의 존 노스럽은 펩신과 트립신, 키모트립신 등의 효소를 결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웬델 스탠리는 1935년에 바이러스를 결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제임스 섬너와 존 노스럽, 웬델 스탠리는 1946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불의의 사고로 왼쪽 팔 절단

이들 연구의 시작을 알린 제임스 섬너는 1887년 11월 19일에 미국 보스턴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골에 큰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부친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냥에 취미를 붙였다. 그런데 17살 되던 해에 그는 사냥을 갔다가 동료가 잘못 쏜 총에 맞아 왼쪽 팔꿈치 아래를 절단해야 하는 사고를 당했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이후 오른손잡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왼팔을 잃은 이후에도 그는 테니스나 스키, 당구, 클레이 사격 등의 모든 스포츠 종목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잘 적응했다.

제임스 섬너는 하버드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1914년에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코넬대학 의대의 생화학 조교수로 자리 잡은 그는 순수한 형태로 효소를 분리하는 연구에 매달렸다. 그러나 수년간의 연구에도 성공하지 못했고, 그와 함께 연구하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섬너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1926년에 작두콩에서 요소분해효소인 우라아제를 결정으로 만들고, 그 결정이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생화학자들은 그의 발견을 무시하거나 외면했다. 효소가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존 노스럽이 펩신 등을 결정화하는 데 성공하자 반대론자들도 차츰 섬너의 발견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섬너의 발견은 효소를 일정한 양으로 정제하고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에게 처음으로 확신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살아 있는 세포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통찰할 수 있는 초석을 그가 놓아준 셈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 코넬대학 효소화학연구소 소장을 지낸 그는 1955년 8월 12일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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