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빠른 인슐린, 조개에서 얻는다?

사람과 청자고둥 인슐린 합성한 하이브리드 형태 개발

바야흐로 하이브리드(hybrid) 전성시대다. 자동차에서부터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요소가 서로 섞여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결과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잡종의 힘’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하이브리드 유행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넘어 질병을 치료하는 약품에까지 활용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사람의 인슐린과 청자고둥의 인슐린을 합성한 하이브리드 인슐린(hybrid insulin)을 꼽을 수 있다.

아름다운 외관과는 달리 치명적 무기를 가진 청자고둥들 ⓒ wikimedia

인슐린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청자고둥

청자고둥(cone snail)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어패류로서 나사조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강력한 무기를 가진 사냥꾼이기도 하다. 바로 코노톡신(conotoxin)으로 불리는 독극물과 천연 인슐린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독극물 외에 인슐린도 물고기를 잡아먹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청자고둥은 물고기를 만나면 주위에 인슐린을 분비하는데, 분비된 인슐린은 물속으로 퍼지면 물고기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 혈관으로 흡수된다.

혈관으로 흡수된 인슐린은 물고기의 혈당 수치를 급격히 떨어뜨려 저혈당쇼크를 일으킨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물고기 역시 체내 혈당이 낮아지게 되면, 동작이 느려지게 되고 의식 자체가 혼미해져 청자고둥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식사 후에는 혈당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데, 이때 인슐린이 분비되어 혈당 수치를 낮추면서 정상적인 혈당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만약 인슐린의 분비량이 적거나 분비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사람이나 동물의 몸은 고혈당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당뇨병은 바로 이런 고혈당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 발생하는 병이다.

청자고둥은 인슐린을 분비하여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 Jason Biggs and Baldomero Olivera

따라서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이 올랐을 때 인슐린을 인위적으로 투입하여 혈당을 내리게 하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슐린의 효과가 너무 느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인슐린을 맞아도 고혈당 쇼크가 오는 환자들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미 유타대의 연구진은 청자고둥을 연구하던 과정 중에 이들이 분비하는 인슐린이 사람의 것보다 훨씬 빨리 혈당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원인을 파악하던 연구진은 청자고둥의 인슐린 구조가 사람의 인슐린과 다른 두 가지 차이점을 파악했다.

하나는 청자고둥의 인슐린은 상대적으로 매우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의 인슐린이 51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에, 청자고둥의 아미노산은 43개에 불과했다. 또 다른 하나는 분자와 분자를 연결하는 사슬의 기능이 약해서 인슐린 분자들이 쉽게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유타대의 헬레나 사파비(Helena Safavi) 교수는 “인슐린의 혈당 강하 작용은 분자들이 분리되면서 일어나므로, 사슬 구조가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분자들이 쉽게 분리되면서 혈당 강하 작용이 빨리 시작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자고둥의 인슐린이 상용화된다면 단 5분 만에 혈당 강하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 같은 시간은 현재 시판되고 있는 인슐린보다 몇 배나 빠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람과 청자고둥 인슐린의 장점만을 딴 하이브리드 탄생

청자고둥의 인슐린이 사람의 것보다 훨씬 빨리 효과를 발휘한다고 해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안전하면서도 기존 인슐린보다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청자고둥의 인슐린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청자고둥의 인슐린은 사람의 인슐린보다 효과는 빠른 반면에 효과 자체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류에 최적화되어 있는 관계로 반응속도는 빠르지만, 농도를 30배 정도 높여야만 사람의 인슐린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사파비 교수는 “농도를 30배 정도 높여야 사람의 인슐린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청자고둥의 인슐린 상용화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부작용이 증가하고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구진은 청자고둥 인슐린에서 인슐린 수용체에 결합하는 부분을 추출했다. 그리고 사람의 인슐린에서 결합 부위를 제거한 다음, 추출한 청자고둥 수용체를 결합시켰다. 그 결과 사람과 청자고둥 인슐린이 합성된 하이브리드 인슐린이 탄생했다.

초록색이 구조가 간단한 청자고둥의 사슬이다 ⓒ eurekalert.org

연구진은 탄생한 하이브리드 인슐린을 당뇨병에 걸린 쥐에게 투여했다. 그러자 효과는 사람의 인슐린과 비슷한 효과를 보이면서도 반응 속도는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사파비 교수는 “사람과 같은 포유류인 쥐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면, 사람에게도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예측하면서 “신개념 인슐린이 탄생한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동물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서 효과 빠른 하이브리드 인슐린이 조만간 출시되는 것은 아니다. 몇 년에 걸친 임상시험을 통해 부작용이 나타나지 말아야 하고, 효과도 최소한 기존 인슐린과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외에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가진 인슐린을 사용하여 하이브리드 인슐린을 개발한 것은 향후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있어 새로운 개발경로를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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