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9월 경북 구미시의 한 공단에서 불산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5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이 입원하면서 사고 현장 인근은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 사고는 대한민국의 환경 규제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소재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하자 고순도의 불산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강화된 환경 규제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국내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산업계와 환경 업계가 충돌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처럼 상반된 의견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향후 추진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행사인 ‘2019 환경 정책 심포지엄’이 개최되어 주목을 끌었다.
‘환경규제 제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환경부가 후원하고 대한환경공학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환경과 산업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최적의 정책 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환경 관련 사고의 발생으로 태어난 화평법과 화관법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과 환경 정책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홍현종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사무총장은 2010년 이후 기업과 관련된 환경규제 주요 법률 입법 동향을 소개하면서 “기업들은 ‘화평법’과 ‘화관법’을 불황보다 더 무서워한다”라고 우려했다.
화평법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의미한다. 모든 신규 화학물질과 연간 1톤 이상 판매되는 기존 화학물질은 의무적으로 지방환경청에 등록하여 화학물질의 용도 및 판매량 등에 대해 보고하고 유해성 및 위해성을 심사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다. 지난 2015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또한 화관법은 ‘화학물질관리법’을 뜻한다. 사업장 내 화학물질이 사업장 밖에서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유해 물질에 대한 관리 인력을 보충하여 화학물질의 시설관리를 강화하는 제도이다. 사고 등을 예방하고 사고 시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서 화평법과 마찬가지로 2015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화평법과 화관법의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폐손상을 입은 사고와 2012년 구미에서 일어난 불산 누출 사고를 꼽을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살균제에 포함되어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반면에 불산 누출 사고는 사업장 내 화학물질 안전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에 대해 홍 사무총장은 “화평법과 화관법을 도입한 이유는 바로 이런 사고들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두 제도 모두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바로 알고 제조에서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으로서, 이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국민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제도 보완 필요
화평법과 화관법이 국민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제도임은 틀림없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규제다.
실제로 주조와 금형, 용접 등 6대 뿌리업종 관련 업체들이 참여하는 중기중앙회 뿌리산업위원회는 최근 화평법과 화관법의 시행 유예를 촉구하고 나선 바 있다.
중기중앙회 뿌리산업위원회의 관계자는 “화학물질 등록 의무로 인해 수 천억 원이 소요되는 비용을 영세 기업이 감당하기는 힘들다”라고 밝히며 “올해 말까지 취급시설 기준을 지키기 어려운 사업장에 대해서는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위원회가 주장하는 유예기간 연장의 이유로는 화관법의 경우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기업이 공장 가동까지 75일이 소요되고, 화평법의 경우는 추가적인 시험 비용 등 등록비용에 대한 부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두 제도 모두 추가 시험 분석을 위한 공인시험기관 부족으로 인해 업계의 인증 획득이 지연된다거나, 3만 4000여 종에 달하는 방대한 기존 화학물질과 함께 신규 화학물질에 대한 관련 정보의 부재로 아예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영세기업들의 고민거리다.
홍 사무총장은 “환경규제 강화가 기업의 기술 개발 촉진과 매출 증대 같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추진하겠지만, 지난 4년 동안의 결과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화평법과 화관법 시행과 관련한 보완사항으로 △충분한 준비 기간을 부여한 예시제 도입 △위원회를 구성하여 입법 과정 시 이해관계자 균등참여보장 법제화 △제도 시행 후 지속여부를 평가하는 사후평가제도 도입 △이해하기 쉽고 실천하기 용이한 환경법규 해설서 제공 △사업장 환경관리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 신설 등을 제시했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홍 사무총장은 “지난 4년 간 화평법과 화관법을 시행하면서 규제 간에 상충되거나, 현실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한 규제가 상존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라고 언급하면서 “환경규제 정책이 효율적으로 시행되어 관련 산업별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개선 체계를 마련하겠다”라고 다짐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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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1-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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