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되고(최근 경기부진으로 40달러대로 급락했지만)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환경 위기가 부각되면서 많은 화학자들이 에너지와 환경 관련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9일에서 1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제54회 세계화학대회장에서 발표된 연구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했다. 인공광합성, 태양전지, 이차전지, 연료전지, 이산화탄소 분리 및 변환, 수소 저장, 녹색화학 등 여러 분과에서 발표가 이어졌다.
이런 트렌드와 함께 화학에서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분야가 바로 생명과학 관련 연구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화학과에서 할 수 있는 연구는 생명체에 존재하는 분자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다루는 생화학 정도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생물 연구를 하려는 학생들은 대학원을 진학할 때 과를 바꿔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학자들이 때로는 생명과학자들과 손을 잡고 두 영역이 겹치는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들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생명과학연구에 도움이 되는 화합물 합성과 분석법 개발, 나노바이오센서 개발, 고분자 바이오테크노로지, 합성생물학 등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아홉 건의 기조연설 가운데서도 생명과학과 관련된 주제가 세 건이나 됐다. 10일 오전에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그레이엄 플레밍 교수는 '광합성의 빛수확 메커니즘'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플레밍 교수가 2007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보고 영국의 작가 이언 매큐언은 인공광합성을 소재로한 소설 ‘솔라(Solar)’(2010년 발표)를 구상했다고 한다.

D-아미노산은 신경전달물질?
12일 오전 기조연설에 나선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과 조너선 스위들러 교수는 화학이 어떻게 생명과학 연구를 혁신할 수 있는지 극적으로 보여줬다. 분석화학자인 그는 단일세포 질량분석 기술을 개발해 뇌세포 하나하나 존재하는 생체분자의 프로파일을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스위들러 교수는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즉 뇌에는 단백질을 이루는 L-아미노산의 이성질체인 D-아미노산이 신호전달물질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자연은 놀라운 화학적 기교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스위들러 교수는 뇌에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부위인 시교차상핵(SCN)에 존재하는 펩티드를 분석한 결과 200여 가지가 밝혀졌고 이 가운데 40가지 이상이 처음 확인된 화합물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신경화학(neurochemistry)이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분과별 구두발표 시간에 필자는 신약발견 분과의 발표장을 찾았다. 일본 도쿄대 하야시 요시오 교수는 중간 크기 펩티드 형태의 항암제와 근육강화제 개발현황을 소개했다. 보통 약물은 아스피린처럼 분자량 700미만의 작은 분자이거나 항체치료제처럼 분자량 1만이 넘는 큰 분자다. 그런데 최근 그 사이에 해당하는 중간 크기 분자의 약물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혈관생성을 억제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제로 개발된 약물에 암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를 인식하는 펩티드를 붙이면 약물이 항체가 있는 곳, 즉 암세포에 집중되기 때문에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낮출 수 있다. 한편 근육생성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마이오스타틴에 달라붙어 작용을 억제하는 펩티드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근육상실은 노화의 주요한 증상이기 때문에 이 약물이 성공하면 노화를 늦추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3일 오전에는 200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로저 콘버그 교수가 ‘진핵생물 전사의 분자 기반’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게놈에서 유전자가 발현되는, 즉 DNA이중나선을 주형으로 해서 RNA단일가닥이 만들어지는 과정인 전사는 RNA중합효소를 비롯해 많은 생체분자가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콘버그 교수팀이 밝혀낸 결과에 따르면 무려 90여 가지나 된다.
전사과정에 게놈의 구조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까지 접목한 콘버그 교수의 강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화학과 생명과학 양쪽에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 저작권자 2015-08-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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