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화학분산제의 두 얼굴

[과학으로 보는 환경과 에너지] 바다에 유출된 기름 위의 또 다른 논쟁

현대 산업사회를 두고 ‘석유 문명’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전 세계가 사용하는 1차 에너지의 34%가 석유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주 연료 또한 석유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 생산이 필요하고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 과정에서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만 원유 시추시설 폭발과 유출 사고는 이러한 에너지 문명의 맥락 위에 있다. 사고가 발생하고 약 5개월 동안 7억 7000만 리터의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었다.

바다에 석유가 유출되자 기름띠 피해를 줄이기 위해 700만 리터의 화학 분산제(dispersant)가 뿌려졌다. 분산제는 수면에 떠있는 기름을 지름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기름 알갱이로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비누, 계면활성제다. 에멀션 상태가 된 기름 알갱이는 물속에 희석되고 해안가에 도달하지 않게 되며 이윽고 수중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인간의 기술은 유출된 기름을 자연의 속도보다 빠르게 작게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그다음 최종 분해는 자연 미생물의 몫이다. 기름의 탄화수소는 미생물에 의해 아세틸 CoA(Acetyl CoA)를 거쳐 최종적으로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화학분산제가 살포되지 않은 기름, 화학분산제를 살포한 기름, 화학분산제를 살포한 기름이 물속에 희석되는 모습(순서대로). ⓒ http://www.itopf.org

문제는 화학분산제가 또 다른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생명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당시에는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이하 EPA)의 수질환경법(Clean Water Act) 매뉴얼에 따라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그 매뉴얼은 무려 26년 전에 만들어진 계획이었다.

이후 대량으로 살포된 화학분산제 코렉시트(Corexit)로 기름띠가 제거되었지만 동시에 환경과 인간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수습에 참여한 사람들이 화학분산제에 노출되어 기관지, 눈, 피부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과학자들과 환경단체는 화학분산제 살포의 제도적, 환경적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 텍사스오스틴 주립대 해양과학연구소(Marine Science Institute)에서는 코렉시트의 독성이 해양 미생물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해양미생물에 원유, 화학분산제, 원유와 화학분산제를 살포하여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화학분산제가 해양 미생물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https://doi.org/10.1016/j.ecoenv.2014.04.028

이윽고 2020년 6월 미국 연방 법원은 화학분산제가 환경과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최신 과학적 근거를 고려하여 환경보호청에 원유 유출 사고 대응 계획을 다시 세우라고 지시했다.

사고가 발생한지 10년 만에 사고 대응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과학기술과 환경은 법과 제도로 밀접하게 이어져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환경은 공공재의 성격을 띤다. 그래서 환경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약속한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관리되곤 한다. 사고는 순간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특히 환경 재난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재난을 해결하고자 쏟는 인간의 과학기술은 대개 두 얼굴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사회의 법과 제도를 지혜롭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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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김지영 2020년 6월 18일10:55 오전

    칼럼니스트의 깊은 고뇌가 엿보입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테마를 엄선한 것 같습니다.
    심도 있는 해석과 논리적인 서술이 번번이 눈에 띕니다.
    생태계와 관련된 완성도 높은 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스크랩해가며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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