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시작된 단풍이 어느덧 남쪽 지방의 산들까지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는 등산만큼 좋은 취미도 없을 것이다. 낮 시간 동안 춥지도 덥지도 않은 요즘이 산을 타기에는 가장 좋은 시절이다. 하지만 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제부터는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해지는 시간이 무척 빨라졌기 때문이다. 오후 5시 반이면 해가 지고, 6시면 주변이 어두워진다.
낮이 짧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별을 볼 수 있는 밤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밤이 길어진 만큼 밤바람도 많이 차가워졌고, 따뜻한 가족의 사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 주 별자리여행의 주인공은 밤하늘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별자리로 알려진 페르세우스자리이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날 '입동'
지구의 온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태양이다. 태양이 얼마나 높게, 그리고 오래 떠 있느냐에 따라 지구가 받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물론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북반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면 태양의 고도가 높아져서 여름이 오고, 남반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져서 겨울이 온다. 태양이 가장 낮게 뜨는 날은 12월 21일 경인 동지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동짓날 태양의 남중 고도는 30도 정도이고, 낮 시간의 길이도 9시간 30분 정도로 짧다.

이번 주 토요일은 24절기 중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다. 입동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과 밤이 가장 긴 동지의 딱 중간이다. 지구의 공전으로 인해 태양은 황도를 따라 춘분(0도)을 기준으로 하지(90도), 추분(180도), 동지(270도)를 거쳐 다시 춘분으로 돌아온다.

입동날 태양의 남중 고도는 서울 기준으로 약 37도, 낮 시간의 길이는 10시간 20분 정도다.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하짓날에 비해 고도가 거의 절반 가까이 낮아졌고, 낮 시간도 5시간 가까이 줄어들었다. 동짓날과 비교하면 남중 고도는 겨우 7도 정도, 낮 시간은 1시간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만을 놓고 보면 이번 주부터 겨울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겨울을 느낄 정도로 기온이 낮지 않다. 계절은 태양의 고도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은 정오 무렵이지만 그보다 2~3시간 후에 기온이 가장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지구는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 중 절반 정도를 땅과 물속에 저장했다가 다시 내보낸다. 아직은 여름 동안 데워진 땅과 바다에 온기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려면 한 달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씩 비가 올 때마다 땅의 온기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겨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가장 행복한 남자의 별자리 '페르세우스자리'

밤하늘에 있는 88개의 별자리 중 사람이 주인공인 별자리는 기껏해야 열 개가 되지 않는다. 그중 절반이 가을 하늘에 보이는데 바로 에티오피아의 왕인 케페우스와 왕비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공주인 안드로메다와 사위 페르세우스의 별자리이다. 에티오피아 왕가가 모두 밤하늘의 별자리가 된 것은 바로 영웅 페르세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페르세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 신과 아르고스의 공주인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외할아버지인 아크리시오스 왕은 외손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두려워하여 갓 태어난 페르세우스를 딸과 함께 바다에 버린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부탁을 받은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되어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고, 아테나 여신과 헤르메스 신의 도움을 받아 괴물 메두사를 물리친 영웅이 된다. 그리고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하여 괴물 고래를 돌로 만들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안드로메다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운도 얻게 된다. 훗날 미케네라는 나라를 만들고 왕이 된 페르세우스는 죽은 후에도 온 가족이 함께 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 영웅으로 알려진 헤라클레스도 페르세우스의 후손이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는 모두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페르세우스의 뒤를 이어 미케네의 왕이 된 엘렉트리온의 딸 알크메네가 바로 헤라클레스의 어머니이다. 알크메네의 남편이자 헤라클레스의 양아버지인 암피트리온도 페르세우스의 손자이다.
결국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후손인 헤라클레스까지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가 된 페르세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남자이자 가장 행복한 남자일 것이다.
페르세우스자리는 W자 모양을 한 카시오페이아자리의 바로 아래쪽에서 찾을 수 있다. 안드로메다자리를 찾는 방법처럼 페가수스자리를 연으로 생각하면 조금 더 쉽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커다란 사각형의 페가수스가 방패연처럼 하늘 높이 떠오르면 그 뒤로 안드로메다자리가 긴 연줄처럼 매달려 있다. 연줄의 끝에서 실을 조절하는 얼레가 바로 페르세우스자리이다.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부부를 연줄과 얼레의 관계로 보면 어렵지 않게 두 별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별자리의 북쪽은 으뜸별 미르파크(Mirfak)를 중심으로 북극성을 향해 길게 호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이 별자리의 상징인 '페르세우스의 호'이다. 별자리 그림에서는 페르세우스가 괴물 메두사를 죽이고 그 목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한자의 사람인(人) 자를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삼 모양을 닮아서 충북 증평군에서는 '인삼 별'로 지정하기도 했다.
악마의 별 알골(Algol)
별자리 그림 속에서 페르세우스가 들고 있는 메두사의 눈에 해당하는 별은 이 별자리에서 두 번째로 밝은 알골(Algol)이라는 2등성이다. 알골은 지구로부터 약 90광년 떨어진 별로 약 3일을 주기로 밝기가 3등성으로 어두워지는 특이한 별이다. 알골은 맨눈으로는 하나의 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삼중성이다. 그중 가장 밝은 별의 앞을 두 번째 별이 주기적으로 가리기 때문에 밝기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다른 별이 앞을 가려서 밝기가 변하는 별을 식변광성이라고 부른다.

알골은 ‘악마의 별’이란 뜻인데 이것은 이 별이 신화 속에서 메두사의 눈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알골의 밝기가 변하는 것이 마치 죽어 가는 메두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깜빡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아마추어 천문가들은 이 별을 오래 보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페르세우스 이중성단(the Double Cluster of Perseus)
페르세우스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의 중간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유명한 산개성단이 있다. 별이 모여 있는 집단을 성단(cluster)이라고 하는데, 산개성단은 하나의 성운에서 만들어진 젊은 별들이 불규칙하게 모여 있는 집단이다. 늙은 별들이 중력에 이끌려 공처럼 모여 있는 집단은 구상성단이라고 한다.
두 성단까지의 거리는 지구로부터 대략 7500광년으로 비슷한데, 각각의 성단에는 수천 개씩의 젊은 별들이 모여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성단으로 알려졌지만 19세기 초 영국의 윌리엄 허셜에 의해 처음으로 두 개의 분리된 성단이라는 것이 알려졌고, 그 후 페르세우스자리 이중성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성단이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0만 년 전으로 태양의 나이가 50억 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젊은 별들의 집단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별자리 그림에서 페르세우스의 칼 손잡이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데, 4등성 정도의 밝기를 가지고 있어서 달이 없는 밤에는 시골 하늘에서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 이태형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관장
- byeldul@nate.com
- 저작권자 2020-11-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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