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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공채영 객원기자
2004-12-02

한지의 미학, 그리고 종이 과학 세종문화회관, 한지와 정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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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유한지는 닥나무로 만들어져 부드럽고 포근하며, 여러 겹으로 배접하면 너무나 견고하고 단단하여 경제성뿐만 아니라 실용성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상들은 앞선 한지의 특성을 살려서 서책류에서 시작하여 장식품, 한지가구 등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세종문화회관은 한지를 소재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리고, 다양한 조형미의 세계를 탐색해 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지와 정신’전을 개최하고 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중국은 문자를 표기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소재들, 예를 들어 소나 돼지의 뼈, 거북의 등껍질, 청동 그릇, 나무판자, 얇은 대나무판, 판석 그리고 비단 두루마리 등을 사용했다. 기원전 2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이 모든 재료들에서 단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대나무였다. 사람들은 75cm 길이에 문자를 세로로 새겨 넣을 만한 폭을 지닌 얇은 대나무 판에 글을 썼다. 대나무판은 실용적이고 견고한 책 모양새를 갖추긴 했으나, 무게가 적잖이 나가고 부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3세기 초반부터 비단 제조가 중국에서 입지를 굳히자, 기원전 4세시 이후에 비단 두루마리 서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비단 서책은 섬세한 글씨를 쓰기에 유리한 털로 만든 붓이 출현하고 나서부터 더욱더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까지 비단 값이 너무나 비싸서 널리 통용되지 못한 까닭에, 경전들과 제국의 연대기, 문학적인 걸작들이나 그림들로 장식된 회화서에 한정되어 사용됐다.


최근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전한(前漢)의 채륜(蔡倫:? ~121?)이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종이가 발명되었다는 설도 많다. 종이 발명초기에 폐마가 원료로 사용되었고, 그 후 서기 105년에 채륜이 생인피 섬유를 사용하는 펄프 제조 방법을 고안하여, 그 방법은 널리 전파되었다.


채륜이 고안한 방법은 식물성 섬유와 질긴 동아줄 및 부패한 헝겊들을 물로 갠 다음 끈끈한 반죽 생태에서 방망이로 찧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기술은 오랜 전부터 중국에 있었다. 하지만 채륜이 언급되는 것은 후한서에 “채륜이 나무 속껍질, 아마(亞麻)섬유, 어망, 누더기 천을 이용하여 종이를 만들어 원흥(元興) 원년(105년)에 황제에게 진상하였다”고 기록된 것처럼 기술의 새로움보다 채륜이 황제에게 종이의 제조 과정을 보고하여 포상을 받은 정치적 결단력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 후 중앙 권력은 종이를 문서 표기의 대중적인 소재로 사용하도록 결정했다.


제지법이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그 외 3세기설과 6~7세기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3세기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에 따르는데, “284년에 백제의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전한 <천자문>과 <논어>등이 종이 서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과, 4~5세기설은 “중국은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많은 책과 제지술도 함께 전했다”는 점과 연관된다. 지금껏 학자들은 4~5세기설에 중심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6~7세기설은 “610년에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맷돌, 등의 제조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에서 담징이 종이와 함께 일본에 전한 맷돌은 종이 제조도구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제지기술도 맷돌을 사용했고, 이것은 우리나라 제지법이 중국의 종이 기술과 동일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우리나라 한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 “고려시대에 닥나무 심고, 이를 법제화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조지서(造紙署)를 설립하여 종이 생산에 힘을 썼다”는 기록들이 있다. 특히 태종 15년에 처음 출발한 조지소(組紙所)를 세조 11년 (1465)년에 조지서(造紙署)로 개칭하여 그 역할을 확대했고, 그 결과 “조선시대에 인쇄술의 발달과 향교, 서원, 서당 등의 설치로 서책의 수요와 보급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 양란이 일어나면서 제지 시설의 파손과 지장(紙匠)들의 분산으로 제지생산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고, 개화기 이후 서양의 양지(洋紙) 제지술이 널리 퍼지면서, 한지의 수요 감소, 그에 따른 기술의 낙후성, 자본의 영세성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옛 것을 되찾자는 기운이 팽배해지면서 새로운 기술개발과 함께 전통적인 한지 제조법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편, 서예나 닥종이 공예에 뜻을 두는 전통문화애호 인구의 확대로 한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한지는 주로 닥나무와 닥풀로 만드는데, 닥나무 Broyssoneti kazinoki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길이 2-3m정도의 일년생 가지가 한지 제조에 가장 좋다. 또한 같은 종류의 닥나무도 기후, 토질에 따라 섬유의 폭, 길이 등이 달라서 품질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닥풀(황촉규:Hibiscue mamihot. L)은 아욱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식물로, 뿌리에 점액이 많아 종이를 만들 때 지통에 섬유가 빨리 가라앉지 않고, 물 속에 고루 퍼지게 하여 종이를 뜰 때 섬유의 접착이 잘 되도록 한다. 그래서 닥풀은 종이의 가도를 증가시키며 얇은 종이를 만드는데 유리하고 순간적인 산화가 빨라 겹친 젖은 종이가 떨어지기 쉽게 한다.


조상들은 앞선 닥나무의 특성을 살려서 “닥나무에 리그닌과 홀로셀룰로오즈 성분이 이상적으로 함유되어 있는 시기인 가을에 채취하여, 알칼리성을 전통 잿물로 표백하고 닥풀(황촉규)을 접착제로 사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한지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가는 중성지로 평가받고 있다.


펄프 종이는 한지보다 오랜 기간 보존하기 힘들다. 펄프 종이는 “로진사이즈 처리와 황산알루미늄의 사용으로 강한 산성(ph4-5.5)을 띠고 있어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가수분해 작용으로 종이가 열화되어 100여년 정도 지나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해되고, 종이의 표백용을 위해 첨가되는 수산화나트륨과 차아염소산으로 인하여 산성을 띠게 되고 표백 과정 중 종이의 섬유조직이 상하게 되어 오랜 기간 보존하기 힘든 단점”을 가지고 있다.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한지는 창호지, 한지 장식품 등으로 이용되었는데, 이번 전시회는 60대 이상 원로작가에서 30대의 젊은 작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한지를 이용한 예술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닥나무 화면바탕에 닥나무죽으로 조형된 나무형상 작품, 멍석 표면 같은 한지바탕을 조성한 뒤 그 위에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부각시킨 조형 작품, 한지 위에 철을 이용한 추상적 흔적과 초서체의 글씨 흔적을 조화시킨 작품 그리고 한지를 이용한 설치작업 작품 등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회는 “한지의 다양한 조형가능성을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모색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들을 초대한 전시회라서 현재 한국미술계의 한지작업의 예술적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획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 시 명 : 한지와 정신전

전시기간 : 2004-12-01 ~ 2004-12-07

전시시간 : 10:00 - 19:00

전시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본관 2 미술관본관 3 미술관본관 4

관 람 료 : 무료

사 이 트 : http://www.sejongpac.or.kr


공채영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4-12-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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