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문자 예술이 되다

'한글 TRANS: 영감과 소통의 예술’ 전시회

한글의 과학적 측면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지만 감성적인 면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글 글자 자체가 갖는 예술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2월 17일까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제27회 <서울미술대전> 한글 TRANS: 영감과 소통의 예술’은 한글의 예술성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유의 관점이 담긴 한글작품을 통해 한글 글자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한글, 예술이 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서예, 손글씨, 디자인, 현대미술 등 전 영역의 대표적인 동시대작가 17인이 한글 작품 50여 점을 공개했는데, 크게 3가지 섹션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1층 전시실은 ‘문자에서 예술로’라는 주제로 한글 고유의 조형성을 살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정고암 작가는 새김아트 창시자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피어나는 꿈‘은 대표적 새김아트라고 할 수 있다. ’하늘 땅 사람 물 불 바람‘과 ’삼족오‘에서는 하나의 화면에 한글의 획을 축약하거는 중첩시켜놓는 방식을 취해 소리글자로서의 한글의 특성을 담아냈다.

▲ 정고암 作, 피어나는꿈 ⓒ서울시립미술관


주로 봄과 꽃이라는 글자로 작품을 만드는 강병인 작가. ‘꽃’이라는 글자의 종성 ‘ㅊ’은 뿌리가 되고 모음 ‘ㅗ’는 가지가 되면 초성 ‘ㄲ’은 어느새 활짝 피어나는 꽃잎이 됨을 형상화했다. 봄에서는 아지랑이가 올라가는 듯하기도 하고, 새싹이 나는 듯한 느낌을 글자에 표현해 냈다.

정재완 작가의 작품에서는 각 글씨의 장소성이 느껴진다. 특히 이상 시인의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는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상은 화신백화점에 쇼윈도를 사람들이 들어가는 내부 사각형으로, 백화점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원운동으로 묘사했다. 작가는 그 시의 느낌 그대로 시를 캠퍼스에 감각적으로 옮겨 놨다. 특징이라면 ‘ㅅ’을 글과 글을 연결하는 고리로 재밌게 표현해 백화점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모습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정도준 작가의 ‘천지인(天地人)’ 하늘(·), 땅(ㅡ), 사람(l) 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사실 우리의 기본 모음은 모든 모음을 만들 수 있는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이다. 마찬가지로 검은색은 모든 색을 포함한다. 작가는 우리의 기본 모음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먹색이 동양적 사상이 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정도준 作, 천지인 ⓒ서울시립미술관


쇳가루를 가지고 따뜻한 감성을 표현해 낸 김종구 작가. ‘쇳가루 산수화’는 쇳가루를 갈아서 캠퍼스 천에 뿌려서 흘러내리게 한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되어 다양한 색깔이 나타난다. 그 위에 한글로 글자가 쓰여 있다. 글자가 희미해져 가는 추억처럼 느껴지는데, 차양막이 씌어진 뇌에서 멀어져 가는 아련한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캘리그라퍼인 이상현 작가는 원래 글씨에 감성을 표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글씨에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진도아리랑과 해주아리랑의 가사가 적혀 있는 작품에서 각각의 음악의 이미지를 글씨와 색지로 표현 해냈다. 그래서 노래를 듣지 않아도 오직 가사만으로도 그 음악적 감성이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아이디어의 원천인 한글, 뜻을 품은 한글

2층에서는 두 가지 섹션을 볼 수 있다. ‘영감으로서의 한글’과 ‘소통하는 한글’이 그것이다. ‘영감으로서의 한글’은 새로운 시대 환경에 따른 한글의 변화 양상을 신체, 의상, 시의 조합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소통하는 한글’ 섹션에서는 한글의 조형성과 과학적인 원리가 결합된 한글의 우수한 미감을 다각도로 체험해 볼 수 있다.

의상디자이너 이상봉도 이번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는 이미 한국 전통 시, 캘리그라피, 한국적인 소재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의상에 접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작가 임옥상, 소리꾼 장사익 손글씨, 윤동주 시인이 ‘별 헤는 밤’, 한글 ‘벗’등을 프린트하여 디자인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한글이 문자를 떠나 영감으로 어떻게 표현되지는 잘 보여주고 있다.

▲ 이상봉 의상디자이너 작품들 ⓒ서울시립미술관


한글이 없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무엇으로 소통할까. 김종원 작가는 이에 대한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한글이후’가 그것이다. 한글의 자, 모음 체계를 뒤집고 혼용, 중첩해 한글 자모음의 역할을 실험하는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안상수 작가의 ‘웃음꽃 한글’에서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유쾌함을 담아내고 있다. 흰 캠퍼스에 그려 넣은 한그루의 나무. ‘ㅎ’이라는 글자가 마치 열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하하, 호호, 히히’ 등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박금준 작가는 광고 디자이너이여서 그런지 한글에서 디지털적 향기가 난다. 주로 ‘ㄱ’ 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설치 작업 두 개도 마찬가지이다. 그중 ‘길’이라는 작품은 자동차 핸들을 폐차장에서 가져와 만든 작품이다. 길이라는 글자가 아주 길게 꾸불꾸불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백미러가 있다. 평탄하지만은 인생길, 앞만 보고 가지 말고 가끔은 뒤도 돌아보자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글평화는 캘리그라퍼,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6명이 한 팀을 이루어 설치작업을 했다. 빨간색 털실로 그리드를 만들고 색은 검정, 흰색, 빨간색으로 색깔 한정하여 ‘눈꽃 핀 낮은 산‘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들이 서로 한 팀을 이룬 것은 한글이 모아쓰기라는 특징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최소주의는 한글창제원리 중 하나이다. 한재준 작가의 ‘이기불이’는 레고와 비슷한 블록 작품이다. ‘ㄱ’, ’ㄷ’, ‘ㅇ’, ‘ㅏ’, ‘ㅡ’, ‘l’ 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블록이 전시되고 있다. 한글은 소리, 글, 뜻이 하나의 이치라서 다양하게 뜻과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 밖에도 크레파스를 이용한 3인치 캠퍼스 작품인 강익중 작가의 ‘내가 아는 것들’, 이진경 작가의 손글씨 작품에서는 글자 자체에서 화합과 균형감을 느껴볼 수 있다. ‘둥’과 ‘야호’라는 한글 의성어를 가지고 산수풍경을 그린 유승호 작가의 작품에서는 고즈넉함과 익살스러움을 엿볼 수 있고, 산을 배경으로 조지훈의 ‘사모’의 일부를 재구성한 윤종윽 작가의 작품에서는 문자 자체에서 시적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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