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노벨상 시상식을 참관한 한 여학생의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이었던 서지혜 씨는 시상식에 다녀와 ‘노벨상 받는 3단계’로, 첫 단계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 둘째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밤을 새는 것’, 마지막은 ‘결과가 나오면 즉각 홍보에 나서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간단명료한 말이지만, 또한 가장 정확한 지적이라고 과학기술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노벨상은 100미터 달리기처럼 순식간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로부터 노벨상 수상자의 자질, 혹은 조건을 배우려고 시도한다.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무엇에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느냐’와 ‘한국은 언제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하겠는가’이다.
그러나 한번도 신통한 대답을 받은 적이 없다. 기자들은 내심, 국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거나 혹은 특별한 영재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을 기다리지만, 여기에 호응해준 수상자들은 단 한명도 없다. 대부분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다”라든지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전념했을 뿐”이라는 대답을 얻었을 뿐이다.
언제쯤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겠느냐는 질문에도 “한국엔 뛰어난 젊은 과학자가 많다”라거나,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라는 다소 핵심에서 벗어난 대답으로 일관한다.
이런 대답은 그들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우리의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 위한 정답이나 지침서는 없다. 노벨상 수상자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이 일정 수준 올랐을 때 자연스레 배출되는 것이지, 고속도로 건설사업처럼 국가의 계획에 따라 단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설명이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200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앨런 맥더널 박사는 기술과 과학은 다른 것이며, 과학은 좀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기술은 수년 내에 상품이 되고 돈이 될 수 있지만, 그 수명은 5년 남짓하다. 반면에 과학은 그 결실이 나오기까지 15년 이상의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고, 그 결과는 수대에 걸쳐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노벨상은 바로 후자, 즉 수대에 걸쳐 인류복지에 기여한 과학적 발견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자의 배출은 적어도 과학자가 십여년 동안 한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런 투자에는 인색하다. 실용화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국내 연구풍토, 또한 과제들이 대형화되면서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집단의 목표에 부응하는 연구성과를 우선시하는 조류에서는 이런 분위기의 형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인 로버트 러플린 박사(199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학교육의 초점을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자신이 평생 19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중 한편이 노벨상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기원 교수들은 일년에 평균 4편의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엔지니어스쿨도 아니고, 디스커버리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질 뿐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그는 “학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교수들이 휴식시간에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가 중요하다.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 분위기에선 결코 노벨상이 나올 수도, 과학기술 강국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분위기 형성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서울대 약학대학의 김성훈 교수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고 해도, 과연 세계는 대한민국의 기초과학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즉 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은 그들의 천재성 외에도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의 연구환경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우리가 그런 환경을 구축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그런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도 함께 들어있는 셈이다.
우리는 서지혜씨가 지적한 3단계 중 이제 첫 단계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연구하는’부분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젊고 능력있는 인재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런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젊은이들의 독창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은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다.
보통 노벨상은 30대 포스트닥(Post-Doc) 시절에 얻은 아이디어를 오랜 시간을 두고 발전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제 과학기술 커뮤니티에 들어서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기회는 닫힌 교육체계에서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러플린 박사는 “단순한 학교교육으로는 기존의 학설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다. 젊은이들에게 보다 개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기초과학에 진지하고 자유롭게 전념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연구환경의 구축이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가장 기초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벨과학상 수상 소식은 아직도 멀었는가? 거기에 대해선 또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초끈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레오나르드 써스킨드 박사(스탠포드대)는 “한국의 젊은 과학자 중에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가진 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곧 물리학계에서 중요한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경제 발전과 함께 빠르게 성장해온 한국의 과학기술이 세계와 경쟁하면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은 기초과학 발전에 탄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제 대답은 하나다. 우리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과학기술 저력을 기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의 수상자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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