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들은 음식과 환경뿐만 아니라 생활습관도 조심해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오래 매달리거나 컴퓨터 게임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도 면역력을 높이는 데는 방해가 된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오히려 암이 치료되는 게임도 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에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34개 병원에서 암 치료 중인 13~29세의 남녀 청소년 환자들을 대상으로 ‘리미션’을 즐기게 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연구결과는 지난 2008년 학술지 ‘소아과학(Pediatrics)’에 ‘게임으로 청소년 암 환자의 행동결과 개선 가능(A Video Game Improves Behavioral Outcomes in Adolescents and Young Adults With Cancer)’이라는 정식논문으로 게재된 바 있다.
게임의 제작을 지휘한 미국의 비영리 소아암 연구단체 호프랩(HopeLab)이 이번에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버전 ‘리미션 2’를 선보여 다시 한 번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http://www.re-mission2.org/games/)를 방문하면 6가지 종류의 플래시게임 중에서 선택해 인터넷 상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도 있고 PC나 아이패드도 설치가 가능하다.
암세포 폭파시키는 게임으로 투병 스트레스 날려
호프랩을 설립한 팸 오미다이어(Pam Omidyar)는 1980년대에 면역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과 함께 비디오 게임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느 날은 ‘암세포를 총으로 쏴서 폭파시키는 게임을 만든다면 어린이 암 환자들이 즐거움도 얻고 희망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마침내 2001년 비영리 소아암 연구기관 호프랩을 설립해 기능성 게임 ‘리미션’을 출시했다.
그녀의 도전을 응원하며 도와준 남편은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eBay)를 설립한 세계적인 프로그래머 피에르(Pierre) 오미다이어다. 부부는 저개발국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오미다이어 네트워크(Omidyar Network)를 만들어 함께 활동 중이기도 하다.
리미션의 시대적 배경은 나노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2020년대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나노 크기의 로봇을 만들어 몸속에 투입시킨 후 질병의 원인이 되는 특정 물질이나 세균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다.
나노로봇 중 처음으로 만들어진 RX5-E 모델은 록시(Roxxi)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크기는 510나노미터에 불과하고 학습과 자기인식 능력을 갖췄다. 사람 몸에 주입되면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암세포를 없애 환자의 치유를 돕는다.
게임을 시작하면 잠깐의 연습을 거친 후 존 데이비스(John Davies)라는 환자의 몸으로 투입된다.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다른 환자의 몸으로 옮겨갈 수 있다.
환자의 체내에 존재하는 세포와 세균들은 아군과 적군으로 나뉜다. 혈액과 림프액 속을 돌아다니는 B세포, 수지상세포, 혈소판, 적혈구는 유익한 존재들이므로 총으로 쏴서는 안 된다. 대식세포와 T세포는 나노로봇 록시가 겨냥하는 물체에 달라붙어 잡아먹는 역할을 맡는다.
박테리아, 뇌종양 암세포, 지방구, 백혈병 세포, 림프종 세포, 구강점막 질환균, 점액 찌꺼기, 골육종 세포, 리드스텐버그(Reed-Sternberg) 세포 등은 우리 몸에 악영향을 끼쳐 질병을 악화시키는 적군들이다.
레이다를 탑재한 록시가 체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적군을 소탕할수록 에너지와 면역력 수치가 증가하고 열과 구토증세 수치가 낮아진다. 공격 무기는 화학치료탄, 항생탄, 로켓탄, 방사선치료광선 등이다. 체력강화제나 면역향상제를 섭취하면 록시의 방어력이 높아진다.
실제 암 치료와 동일한 순서로 임무를 구성했기 때문에 청소년 암 환자들이 ‘리미션’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질병과 싸워 이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4개월의 임상실험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질병 개선 효과가 있었다. 말 그대로 ‘하면 할수록 암이 치료되는 게임’인 셈이다.
실제 암 환자들도 게임 제작과 평가에 참여해
이번에 새로 업그레이드된 ‘리미션 2’는 간단한 플래시게임 형태의 게임 5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사양의 컴퓨터가 요구되는 3D 방식의 전작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나노봇의 복수(Nanobot's Revenge) △줄기세포 수호자(Stem Cell DefendeR) △나노폭탄 투하로봇(Nano Dropbot) △백혈병(Leukemia) △먹이 경쟁(Feeding Frenzy) 등을 차례로 완수하면 특별임무를 수행하는 최종게임이 실행된다.
리미션의 제작에는 실제 암 환자들도 참여했다. 콘셉트를 잡거나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출시 전 테스트하는 역할을 맡았다.
급성 림프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저스틴 램버트(Justin Lambert, 20) 미 콘코디아대 학생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게임을 즐기다보면 구체적인 시각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질병 치료에 희망이 생긴다”고 평가했다.
유두암 투병 중인 브루크 재피(Brooke Jaffe, 21) 뉴욕 버너드대 학생은 “암 치료는 외부에서 약물이나 방사선을 투여하므로 환자들이 스스로를 무기력하다 느끼기 쉽다”며 “나쁜 세포나 세균과 싸우는 게임 덕분에 심리적으로도 힘을 얻는다”고 밝혔다.
리미션은 현재 PC와 아이패드 버전이 출시되어 있어 암 환자들이 치료 대기 중에 수시로 즐기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호프랩 측은 “앞으로 다른 기기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버전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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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5-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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