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특수 훈련을 받은 견공(犬公)이 환자의 오줌 냄새만으로 갑상선암을 판별하는 능력을 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실험을 진행했던 미 아칸소 의대의 연구진은 셰퍼드(Shepherd)를 특수하게 훈련시킨 결과, 환자의 오줌 냄새만으로도 갑상선암을 88%까지 판별하는 놀라운 능력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당시 테스트를 주도했던 이 대학 내분비 종양학과의 도널드 보드너(Donald Bodenner) 박사는 “개의 후각 능력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미세한 부분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라고 말하며 “조만간 개의 이런 능력을 활용한 진단 기법이 의료기술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이 같은 보드너 박사의 예측이 맞기라도 한 것일까? 개가 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임상적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종합매체인 인디펜던트(Independent)는 지난 11일 영국의 과학자들이 개의 후각 원리를 이용해서 폐암 냄새를 맡는 진단장치를 개발했다고 보도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전문 링크)
폐암을 나타내는 바이오마커를 검출하여 진단
과학자들이 냄새를 통해 암을 진단하려는 이유는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위험한 질병들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미세한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모든 분자들은 질병이 발생하게 되면 구조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세포 형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같은 분자의 변화를 ‘바이오마커(biomarker)’로 보고 측정하면, 질병과 관련된 분자의 진단만으로도 질병 여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바이오마커란 단백질이나 DNA, 또는 대사물질 등을 이용하여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냄새를 통해 질병의 발생을 조기에 파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암이나 알츠하이머처럼 고치기 어려운 질병일수록, 초기단계일 때 치료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작업만 해도 초기 단계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 여러 임상 결과에 나타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코에는 500만 개의 ‘후각수용체(olfactory receptors)’가 존재하고 있는 반면에, 개의 코에는 약 2억2000만 개 이상의 후각수용체가 있어 탁월한 냄새 탐지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암에 의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려면, 개의 후각수용체처럼 암 냄새를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함께 탑재되어야 한다. 영국의 의료기업체인 올스톤(Owlstone)사는 이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폐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진단장치를 개발하였다.
‘루시드((LuCID)’라는 이름의 이 진단장치는 폐암을 나타내는 바이오마커를 검출하기 위해, 마치 음주측정기처럼 생긴 호흡측정기(breathalyzer)를 사용한다. 진단장치 내에는 폐암 질병과 관련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환자의 호흡에서 분석해내는 소형 칩이 장착되어 있다.
이 칩에 내장되어 있는 GC-FAIMS(Gas chromatography-field asymmetric ion mobility spectrometry) 센서는 올스톤사가 확보한 기술로서, 호흡할 때 내뿜는 가스들의 분석을 통해 폐암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분석 시스템이다.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폐암을 진단할 수 있어
루시드는 현재 올스톤사의 연구진과 영국 레체스터대(Leicester)의 호흡기 전문가들이 함께 개발하고 있다. 이들이 개발하기 전에도 호흡을 이용한 암 진단장치가 몇 번 선을 보인적은 있지만, 장비의 가격이 워낙 비싸고, 크기도 커서 실용화되지 못했다. 반면에 루시드는 저렴하고, 크기도 작아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레체스터대는 부설 병원을 운영 중이기 때문에, 이번 연구에서 임상 실험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추진 중인 임상 실험은 살만 시디퀴(Salman Siddiqui) 박사가 주도하고 있으며, 최종 임상 실험 결과는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시디퀴 박사는 “폐암은 모든 암 중에서 생존 비율이 가장 낮은 암이지만, 조기 진단을 통해 환자의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며 “현재의 폐암 진단은 흉부 X-선이나 CT, 그리고 기관지 내시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고 위험한 점도 있지만, 우리가 개발 중인 기기를 이용하면 안전하면서도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임상실험은 호흡 진단 방법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바이오마커를 확인하고 평가하는데 있다”고 정의하며 “우리는 보다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이동성이 탁월한 루시드가 폐암 진단에 사용할 수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임상연구의 주안점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하여 울스톤의 설립자인 빌리 보일(Billy Boyle) 대표도 “자체 조사에 따르면 폐암 초기 단계와 관련된 시장 규모가 현재의 14.5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하며 “암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초기 단계의 질병을 찾아내어, 이미 증명되어 있는 기존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GC-FAIMS 기술이 적용된 루시드는 빠르면서도 쉽게, 호흡만으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연구진은 암 때문에 생기는 환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오는 일상의 파괴가 멈출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호흡측정기를 활용하여 폐암을 진단하려는 연구가 올스톤사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충칭대의 경우는 호흡측정기를 회전식 가스챔버와 결합시켜, 폐암 관련된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에 성공했다고 최근 밝힌바 있다.
이 같은 결과는 10억 개의 시료 중, 50개의 폐암 관련 유기화합물을 검출하는 것으로서, 아주 미미한 유기화합물을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10톤이나 되는 감자칩에 손가락으로 한번 집은 소금을 뿌려놓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만약 충칭대의 발표대로라면 미미한 양의 시료를 분석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충칭대 연구진이 개발한 이 진단장치는 폐암을 진단하는데 정확하게 2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암 관련 바이오마커의 농도를 감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직 임상실험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글로벌 의료기업체인 지멘스까지 이 시장을 넘보고 있다. 지멘스의 관계자는 “우리도 오랫동안 안정적이고 정확한 암 진단의 조기 식별을 위해 노력했다”라고 전하며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지멘스도 호흡측정기를 사용하여 최대한 숨을 내쉴 때 나오는 폐암 바이오마커를 측정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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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3-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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