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의 성능은 우리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일들을 마치 생중계하듯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는데, 아주 빠른 속도의 계산능력과 대용량의 정보저장. 처리가 가능한 컴퓨터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순수학문에 속하던 화학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즉, 보이지 않는 원자나 분자들의 움직임을 컴퓨터를 통해 계산하고 시각화함으로서 실험을 하지 않고도 실험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지자가 앞으로 일어날 범죄 사건들을 떠올리면 그 인식이 컴퓨터의 모니터를 통해 경찰들에게 시각화되었던 한 장면을 그대로 떠올린다면 ‘컴퓨터와 화학’에 대한 연관성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특히 복잡하고 많은 계산들이 요구되는 기상예보나 회로설계, 유전자 분석 등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최근에 연산기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연산속도를 갖고 있는 슈퍼컴퓨터는 일본 해양과학기술센터 요코하마 연구소 내의 슈퍼컴퓨터 '어스 시뮬레이터'(Earth Simulator)이다. 일본 NEC가 제작한 이 슈퍼컴퓨터는 초당 40 테라플랍(40Tflops)의 연산속도를 기록하며, 주로 전지국적 기후, 기상예측에 사용되지만 나아가 맨틀해석 같은 초거대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슈퍼컴퓨터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에너지부에서는 최근 ‘일본의 추월에 대한 생존전략 필요’라는 프로젝트에서 25배 빠른 1Peta급 국가 슈퍼컴을 제안하였다.
컴퓨터 = 물질 = 화학
화학자들의 오랜 물음중의 하나는 바로 ‘분자내 원자들의 역동적(dynamic) 결합이 어떻게 형성되고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20세기 초에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의 길이 열렸으나 화학에서는 응용이 어려웠는데, 이유는 분자수준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갈수록 양자역학의 수학적 계산이 사실상 풀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29년 양자물리의 창시자인 디렉(Dirac)은 ‘대부분의 물리영역과 전체적인 화학영역을 기술하는 수학에 필요한 기본적인 법칙들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본 법칙들을 응용하려고 할 때 너무 복잡해서 풀 수 없는 방정식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하며 이러한 문제를 푸는 일에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내었다.
앞으로 이러한 컴퓨터 화학 (또는 계산화학)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분자의 모델링’과 ‘분자 동역학 모의실험’을 통해서 작게는 화학반응의 경로를 이해하는 기초연구에서 신약개발이나 질병탐색을 위한 생물정보학, 신소재 개발 및 환경화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응용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이러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컴퓨터가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 좋은 성능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성 부품들을 개발하는데도 화학연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컴퓨팅 방법- Grid computing과 국내현황
그리드란, midware 성격의 특정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해서 세계 곳곳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첨단장비를 서로 연결하여 마치 하나의 컴퓨터처럼 원격에서 사용하자는 의미이다. 즉, 전 세계의 흩어진 컴퓨터들을 연결해 마치 슈퍼컴퓨터처럼 쓰자는 가상기구의 개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중심으로 광주과학기술원(K-J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충남대학교, 서울대학교, 부경대학교, 기상청등을 중심으로 그리드 네트워크의 구축 운영 지원과 공동기술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며, 2001년 10월 25일 국가그리드(Grid) 포럼의 준비위원회와 사무국이 구성되어 활발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경우 슈퍼컴퓨터의 보급이 연구소나 대학에도 약 20%를 차지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산업체와 금융기관에 몰려있는 반면 실질적 연구를 하는 대학에는 약 4%만이 보급되어있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새로운 전문인력의 창출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활용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리=이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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