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모둠 전’에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

‘제6의 미각’ 후보, 기름 맛을 선호하게 하는 뇌 회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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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달궈진 팬에 적당히 기름을 두르고 부쳐내는 모둠 전은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다. 한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차는 ‘기름맛’이 매력이다. ⒸPixabay

‘거리두기’가 없는 명절이 3년 만에 찾아왔다. 짧았던 추석연휴를 추억하는 건 냉장고에 잔뜩 남은 전이다. 추석 직전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하며,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했다.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다.

‘예’와 무관하더라도 각종 전은 명절 식탁의 빠질 수 없는 백미다. 동태전, 육전, 고추전, 동그랑땡 등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맛은 제각각이지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가득 차는 기름진 맛은 식욕을 자극한다. 우리는 왜 뜨거움도 잊은 채 갓 부친 전에 자꾸만 손을 뻗을까.

 

전의 풍미를 결정하는 화학반응

음식의 풍미는 맛과 향이 함께 결정한다. 후각 기능이 저하된 코로나19 환자들이 음식을 섭취할 때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어서 식욕이 뚝 떨어졌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전처럼 고온으로 조리하는 요리 과정에서는 향 성분이 많이 만들어진다. ‘마이야르(Maillard)’ 반응 때문이다.

전은 약 200℃의 온도에서 조리되는데, 전을 부치다 보면 색이 진해지면서 바삭해지고 향이 살아난다. 이처럼 식품 내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가열될 때 맛과 색이 변하고, 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1912년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가 발견했는데, 이 발견으로 인해 120℃ 이상의 고온에서 식품에 감칠맛이 생기는 현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팝콘 냄새를 내는 화학물질 ‘2AP(2-acetyl-1-pyrroline)’ 등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향이다.

▲ 김치전, 파전 등 크기가 큰 전은 바삭한 끝 부분이 묘미다. 밀가루로 구성된 글루텐 막에 포함된 수분이 증발하며 바삭해진다.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은 끝 부분은 더욱 바삭하다. ⒸPixabay

전 부치는 ‘명절냄새’에 이끌려 갓 부친 전을 하나 집어먹으면 바삭한 식감이 입맛을 자극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전의 ‘겉바속촉’ 식감은 글루텐 때문이다. 글루텐은 밀가루 속 불용성 단백질 성분인데, 밀가루와 수분이 만났을 때 표면에 글루텐막이 형성된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전을 올리면 글루텐 막에 포함된 수분이 증발한다.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다. 이 구조로 인해 우리는 바삭한 식감을 느낀다.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은 끝 부분은 구멍의 비중이 높아져 중심 부분보다 더 바삭한 식감을 낸다.

 

기름진 음식이 끌리는 건 장과 뇌를 잇는 ‘비밀통로’ 때문

고소한 풍미에 계속 전을 먹다보면 ‘급찐살(급하게 찐 살)’을 마주하게 된다. 기름으로 조리한 전의 칼로리는 몇 개만 먹어도 밥 한 공기와 맞먹는다. 기름진 음식을 자꾸 먹게 만든 입맛을 탓하겠지만, 사실 입맛은 아무 잘못이 없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름진 음식이 끌리는 원인은 혀의 미각 수용체가 아닌 장에 있다.

미국 콜롬비아대 주커만연구소 연구진은 생쥐에게 콩기름이 포함된 기름 물과 단맛이 강한 감미료 물을 제공했다. 쥐들은 처음에는 두 물을 모두 마셨지만, 며칠 내에 대부분 기름 물만 찾았다. 쥐의 미각 수용체를 제거하여 맛보는 능력을 없애도 기름 물에 대한 선호가 이어졌다. 기름 맛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이를 선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연구진은 쥐에게 지방을 먹이며 뇌 활동을 측정했다. 뇌간의 꼬리핵고속로(cNST)에 있는 뉴런이 활성화됐다. 꼬리핵고속로를 자극한 신호는 장에서 시작됐다. 장은 지방 성분이 내부에 있을 때 미주신경을 통해 뇌로 직접 신호를 전달했다.

▲ 미국 연구진은 장에는 기름진 음식에 대한 선호를 뇌에 전달하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분석했다. 위 그림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미주신경은 파란색, 지방 선호를 담당하는 세포는 녹색으로 표현됐다. ⒸColumbia’s Zuckerman Institute

이어 연구진은, 장에서 지방에 대한 반응을 전달하는 두 종류의 세포를 발견했다. 한 종류는 지방뿐 아니라 당과 아미노산 등 필수 영양소에 반응했지만, 다른 종류는 오직 지방에만 반응했다. 연구진이 이들 세포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자, 미주신경이 장 속 지방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어, 꼬리핵고속로의 뉴런을 비활성화시키자 쥐는 기름 물에 대한 식욕을 잃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방에 반응하는 뇌 부위가 설탕에 반응하는 뇌 부위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지난해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에서 꼬리핵고속로는 장에 설탕이 있을 때도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쥐에게 설탕물과 감미료 물을 제공했는데, 감미료 물을 마셨을 때는 꼬리핵고속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제로콜라’ 등 다이어트 탄산음료가 완벽한 만족감을 줄 수 없는 이유다.

아직 동물실험 수준이지만, 설탕과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들 분자가 ‘비밀통로’를 통해 뇌로 신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단맛과 기름진 맛을 억제하기 어려운 신경학적 근거가 발견된 것이다.

 

기름 맛, ‘제6의 미각’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 기름 맛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에 이은 ‘제6의 미각’의 후보다. ⒸPixabay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이 있다. 재료가 뭐가 됐든 기름에 조리하면 더 맛있어진다는 뜻이다. 기름 맛, 즉 지방을 감지하는 맛이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에 이어 ‘제6의 미각’이라는 연구들도 꾸준히 발표된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워싱턴대 나다 아붐라드 교수팀이 2012년 국제학술지 ‘지질연구저널(Journal of Lipid Research)’에 게재한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혀 윗면의 미뢰에 지방 분자를 인지하는 ‘CD36’이라는 수용체가 많을수록 기름 맛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수용체에 이상이 생겨 음식에서 기름 맛을 덜 느끼는 사람일수록 지방을 많이 섭취해 살이 찌게 된다

지방 맛이 아직 제6의 미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물 맛, 탄수화물 맛 등 다양한 후보와 아직 경쟁 중이다. 감칠맛은 1908년 처음 연구로 증명됐지만, 80여 년이 흐른 1985년이 돼서야 제5의 맛으로 인정됐다. 제6의 미각의 주인공이 정해질 때까지 몇 번의 명절이 반복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매 명절마다 기름진 음식을 끌리게 하는 장의 유혹을 이겨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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