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은 누구일까"라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나의 부모님에 부모님, 또 그 부모님의 부모님. 이렇게 끝이 없는 반복된 물음 속에서 최초 인간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흥미진진하면서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탄생한 예술품, 최초 인간 루시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루시는 ‘최초의 인간’ 혹은 ‘인류의 조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루시(Lucy)는 1974년 에티오피아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318만년 전 두 발로 걸었던 최초의 여성 인류 화석이다. 우리들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루시’는 발굴 당시 유행하던 비틀스(Beatles)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에서 따온 이름으로, 새로 발견한 화석에 이름을 붙이려할 때 이 곡이 사람들의 귀를 스치고 지나가 붙여졌다는 일화가 있다. 발견 이후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로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 초기 조상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화석의 일부분이 발견되는 것과 다르게 루시의 경우 40% 정도의 화석들이 발견되어 루시의 인체 형상과 당시의 생활 모습을 짐작케 한다. 보통, 두개골, 얼굴, 아래턱, 조각난 정강뼈 또는 이빨 등 화석 한 점이나 일부분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루시의 경우 52점의 뼈가 발견되었고 복원된 루시의 인체는 우리들에게 많은 정보들을 주었다. 첫째 우리와 비교했을 때 루시는 다리가 짧았기 때문에 팔이 길어 보이는 형상을 하고 있고, 루시의 두개골 역시 작고 돌출된 모습에 울퉁불퉁하고 눌린 듯한 형상으로 하고 있어서 루시의 두개골이 적은 용량의 두뇌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두개골 아래쪽 부분에서 머리와 목 사이에 굴곡 부위가 나타나지 않아, 루시를 비롯해서 루시와 같은 속의 선인류들은 소리와 외침, 억양, 소리의 변화, 기호와 여러 가지 몸동작, 흉내 내기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음을 추정케 한다. 셋째 치아가 두꺼운 에나멜질로 덮여 있고 앞니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루시의 치아구조는 루시가 튼튼한 턱을 가지고 있고 치아의 움직임에 걸맞는 강한 근육조직이 있었음을 가늠케 한다. 마지막으로 척추에서 보이는 굴곡이나 납작하고 넓은 골반은 루시가 직립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74년 세계적인 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과 함께 루시 발견에 참여했던 프랑스의 고고학자 이브 코팡은 에티오피아에서 루시를 발굴한 이후, 새로 발견된 화석과 루시의 무릎을 근거로 “루시가 인간의 조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먼저 새롭게 발견된 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ustralopithecus anamensis)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미국과 프랑스, 일본 학자들로 구성된 다국적 연구팀이 2005년에 현생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화석들을 대거 발견했다. 이 때 발견된 화석은 약 41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인류 8명의 치아와 턱뼈 부분으로, 이 화석 유골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아나멘시스 종이 매우 견고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전문가들은 이들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직계 조상, 즉 해부학적으로나 연대기적으로 440만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와 300-36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존재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브 코팡은 <루시는 최초의 인간인가>라는 책에서 해부학적 관찰의 시각으로 ‘루시의 무릎’을 통해 루시가 두발보행뿐만 아니라 수상생활을 했다고 주장한다. 루시의 무릎은 넓적다리뼈와 정강이뼈가 접합되는 관절부분으로 두 부분이 맞물린 현상을 하는 곳이다. 이브 코팡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 넓적다리뼈의 관절융기 사이의 공간이 좁고, 정강뼈 돌기가 벌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무릎의 맞물린 정도가 규격에 맞춘 듯 꼭 맞다. 반면 루시의 경우 두 사이가 헐거워 보인다. 즉 인간의 무릎은 두발보행을 하도록 안정적이고 정해진 운동만을 할 수 있는 반면, 루시의 무릎은 불안정하고 회전각이 커져서 다리를 굽히고 펴는 운동에 제약이 따르고 보폭이 짧은 운동만을 할 수 있다. 이는 루시의 무릎은 전적으로 두발보행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상생활을 하는 데 적당하다는 것이다.
강한 근육의 존재를 말해주는 치아구조 및 직립과 두발보행을 말해주는 루시의 신체구조들은 “루시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한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서 아파렌시스 종은 두 가지 능력, 즉 두발보행과 수상생활에 적합한 운동능력을 지닌 최초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임을 말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항들은 루시가 취했을 형상과 움직임을 가늠케 했을 뿐만 아니라 루시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제 루시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남아 있고, 사람들의 그러한 믿음은 지속되고 있다. 루시라는 이름은 수필과 소설, 시, 노래, 그림과 조각 등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고 있다.
11월 18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최재은: 루시의 시간>전은 최초의 인간 루시에 대해 말해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종합예술적 작업을 펼치고 있는 최재은은 조각, 설치, 영상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시간과 존재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최재은은 최초의 인간으로 알려졌던 ‘루시’ 화석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과 존재에 대해 해석한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 ‘별을 바라보다’, ‘순환’, ‘루시’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고, 이번 전시는 작가의 20여 년의 작품세계의 근원과 의미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장대한 규모로 꾸며졌다.
고고학이나 과학계에서 관심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치 작가로서 루시에 주목하고 있는 최재은은 여행 중에서 미술관보다 자연사박물관을 더 자주 찾았고, 그러한 경험들 속에서 루시를 자신의 투영 대상으로 삼았으며, ‘루시’라는 작품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했다. 이번 작품들은 오래도록 축적된 시간 속의 무엇인가가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말해준다는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최재은은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라는 작품을 통해 생명의 메카니즘에 개입되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86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국, 일본, 미국, 독일 등 7개국 11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로, 특수 제작된 종이를 지하에 일정시간 묻었다가 발굴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 루시가 발견됐던 에티오피아와 가까운 케냐 마사이마라에 15년 전 흙에 묻어 화석으로 변한 종이가 전시장에서 숨쉬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화석화된 흙 조각을 통해 시간의 축적을 데이터화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원초적인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이번 전시는 시공간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최초의 인간 루시를 통해, 오랜 시간 흙에 묻혀 화석으로 변한 종이들를 통해 새롭게 말해주고 있다. 과학 시간에 동식물의 화석화 과정, 혹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느꼈던 우리들의 호기심이 예술품으로 승화하여 인류의 기원에 대해, 혹은 시간과 생명에 대해 성찰하는 좋은 기회가 된 듯싶다.
전시제목: <최재은 : 루시의 시간>
전시장소: 로댕갤러리
전시기간: 2007. 09 .21.Fri. - 2007. 11. 18. Sun.
문 의 처: 02-2259-7781, 7782
사 이 트: www.rodingallery.org
- 공하린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7-10-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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