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망법 상의 제한적 본인확인제, 즉 인터넷실명제가 헌번재판소로부터 위헌 선고를 받은 이후 포털들의 업무가 바빠졌다. 표현의 자유도 보장해야 하고, 악성 게시물 차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경우 뉴스 댓글 등 모든 게시판에서 본인확인 절차를 없애는 대신 인력을 늘려 모든 게시물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할 계획이다. 포털 스스로 자체적 검열을 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악성 게시물 신고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명예를 훼손하는 글이 방치될 경우 포털 역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게시판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그동안 기사댓글, 커뮤니티 등의 인터넷게시판(internet bulletin board)들은 그동안 메일 교환, 공개 질의와 응답, 프로그램 공유, 게시물 검색 등을 통해 사용자들 간의 정보 공유라는 순기능을 확대해왔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뉴스 게시판과 아고라 등 토론 사이트의 경우 여러 가지 사회쟁점 현안에 대해 폭넓고 다양한 의견들이 게시되면서 한때는 '디지털 민주주의 혁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순기능을 잠재운 것이 ‘악플’ 등의 역기능이다. 최근 '안철수 룸싸롱', '박근혜 콘돔' 같은 실체 없는 키워드들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순위 상단을 차지한 것은 역기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8월23일 헌재 판결문에서 “인터넷실명제를 시행한 이후에도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은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최근의 역기능 추세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일반 사이버 범죄란 명예훼손, 전자상거래 사기, 개인정보 침해, 불법 사이트 개설, 디지털저작권 침해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인터넷 역기능을 말해주고 있는 이런 일반 사이버 범죄 건수는 엄청나다.
경찰청 사이버범죄 현황을 보면 2011년 사이버테러형 범죄건수가 11만3천396건인데 이중 일반 사이버 범죄건수가 10만3천565건에 이른다.
성인들을 닮아가는 어린 학생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인터넷 환경 속에서 초등학생과 같은 어린 학생들이 성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1년 인터넷윤리문화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 악성댓글을 단 후 ‘재미를 느낀다’는 응답이 42.6%에 달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성인들의 경우 40.1%가 ‘속이 후련하다’고 응답했다.
‘악플’을 다는 이유 역시 성인들의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48.6%가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대해 ‘기분이 나빠서’ 악성댓글을 달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생의 45.5%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초등학생이 상대방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경우도 44.6%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악플’과 같은 인터넷 역기능이 인터넷실명제와 같은 강제 수단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악성댓글이 범람하는 이유는 제도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관용적인 풍토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질책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공격적인 문화, 척박한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문화를 힘으로 규제하면 할수록 ‘악플’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사실 이 역기능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이 들어가 있는 나라 대다수가 이 역기능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그러나 미국, EU,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달랐다.(계속)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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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2-09-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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